내가 보기엔 너무나 작은 것인데도 크게 감사하거나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행동이 사람을 쉬워 보이게 만들 수 있는 건가.
사람은 참 간사하지 쉽게 준다고 가벼운 건 아닌데
어릴 때 반에서 돌려 쓰는 롤링페이퍼를 적게 되면 내 종이에는 하나같이 '잘 웃는다'가 꼭 빠지질 않았다. 당시엔 그만큼 내가 잘 웃어서 좋은 이미지구나 라고만 생각했었다. 나중에 다시 돌이켜보니 웃는 표정 말곤 나를 설명하지 못하겠다는 의미 같았다. 쟤? 모르겠고 그냥 잘 웃는 아이. 잘 웃어댔으니까 내 입꼬리는 내려갈 생각을 않고 늘 들떠 있었고 그게 사람을 가벼워 보이게 했던 걸지도 모른다. 조금은 의식적으로 웃기만 하면 다 좋아질 거야 라는 생각으로 웃었던 적도 많았다. 한참 뒤 나중에 내 입꼬리가 원랜 이렇게 내려가 있구나 하고 알아차렸다.
언젠가부터 웃어 보였는데, 무시당한 경험이 생기고 나서 웃음만능주의는 허물어지고, 웃음이 나를 쉬워 보이게 할까 봐 의식적으로 더 시니컬해 보이려고 노력했었다.
귀를 막고 눈을 막고 혼자가 편하다며 살았는데 쉬워 보이지 않는 건 둘째치고 아무것도 없이 너무 고독해졌었다.
그래서 다시금 조금이라도 순수하게 웃었던 때로 감정에 솔직할 수 있도록 돌아 가보기로 했다.
순수히 감정에 솔직한 사람을 보면 마치 개미에게 커다란 각설탕을 준 뒤의 반응을 보는 듯하다.
얼마나 감수성의 역치가 낮으면, 얼마나 순수하면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게 단점이 될 수 있을까. 단점보단 약점이 되긴 쉬울 테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이 부럽다.
난 살아가면서 점점 무뎌지기만 하는 것 같다.
무뎌지는 방법만 알아서 어떻게 날을 세워야 할지 모르겠다.
단지 새로운 경험, 새로운 칼날로 매번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인가 순수함이라는 바닥 위에서는 이어갈 수 없는 건가 싶어서 순수함이라는 게 너무 어렵다.
꼭 쥐고 놓고 싶지 않은데 그걸 쥐려는 욕심조차 순수하지 못한 것 같아서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