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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호 Jun 09. 2022

계속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검은 마음에 뜬 은하수의 이름은

나에게는 혼자서 보낸 아주 오랜 밤들이 있다너무 길고 착한 밤들이었다설명하기조차 버거워 계속 묻어둘 수밖에 없는 처치곤란의 감정들이 많았다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들에 대답을 하다 보면 계절이 지났고 새해가 돌아왔다의문점들이 명쾌해진 적은 아직  번도 없다나는 물음표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무채색 삶이 계속되었다. 따끔한 주삿바늘 같은 발칙함이 없음을 아쉽게 여겼다. 순간의 결심들로 내일은 괜찮을 법하다가도 금세 힘이 풀렸다. 가끔 서울로 걸음하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좋아하는 계절을 여름이라고 말해보기도 한다. 길어진 손톱을 정리한다. 종종 웃는다. 새로운 이상형을 정해 본다. 이내 모래사장에 쓴 글씨처럼 흔적도 없이 지워진다.


 계속 생각해왔다. 무언가 모자라다는 느낌으로 살아가는 나는, 도대체 무엇이 모자랐을까. 어떤 감정이 마음에 자리 잡았길래 이리도 슬프고 외로운 것일까. 욕심일까? 내가 가진 것들은 평생 있었으면 하고 없는 것들은 가지고 싶은 마음이 진정, 욕심일까?


내가 써온 글을 따라가 본다. 이런 마음들은 어디서부터 온 걸까. 문단 속에서 나는 포카리스웨트 보이를 지나 열정소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자주 지워질 뿐이지 어디론가 가고는 있었으며, 방향감은 없었지만 마음에 떠밀리기는 자주 했다. 나는 무언가에 의해 움직이고는 있었다.


 질문의 답은 우울의 밤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일과 같았다. 매일 내 다짐을 쓰다듬고 미래를 그리는 일. 멀어지는 이상이 안타까워 애써 마음을 달래가면서라도 꼭 살아가야 하는 이유. 깊은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만들어낸 한 방울의 이온. 검은 마음에 뜬 은하수의 이름은, 이름은...


 먼지 쌓인 일기장을 열어본다. 스스로 화이팅을 외친 흔적이 수 페이지를 걸쳐 펼쳐진다. 그 속에서 나는 오늘이 괜찮았던 이유를 애써 만들어도 본다. 누군가 나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말들을 나에게 직접 한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너는 잘하고 있어. 어라?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끼지 않았던 말을 나에게 하고 있었다, 이제야.


 아마도 나는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했나 보다. 내가 내 삶에 거는 나를 향한 최소한의 희망, 마지막 기대. 무너지는 나를 몇 번이고 다시 쌓아 올리는 끈질긴 반복까지도. 사랑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만둘 수 없었던 바다로의 잠수와 모든 발길질들이 나를 사랑하기 위한 시도였음을, 이제야 알았다.


오랜 기간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지나간 인연들을 추억한다. 한때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을 생각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잘 지냈냐고 물어보면, 나는 꼭 이렇게 답하려고 한다. 잘 지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이토록 힘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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