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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고치는 달팽이 Mar 30. 2023

나는 어떻게 상담을 받게 되었나?

사실은 상담 가기 싫었다.

 내가 상담을 마음먹은 것은 퇴사 후 1년째 쉬고 있음에도 취업할 엄두가 안 나서였다. 자가면역질환이 생겨 퇴사를 한 후 병원도 다니고, 운동도 하고, 학원도 다니고, 병이 재발해 아프기도 했지만 그건 사실 부수적인 거였다. 도저히 취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자신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 장단점을 써보았는데, 단점은 구체적으로 빠르게 채워나갔으면서 장점은 쓸 수가 없었다. 나를 좋아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다. 면접을 망칠 거라는 두려움, 설사 면접을 통과하더라도 회사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미움받을 거라는 공포가 온몸을 지배했다.


 그렇게 고통스러워도 전에 받았던 상담들이 효과가 없어서 상담을 받을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당시 내가 구경하던 커뮤니티에 우울증 증상과 상담 후기들이 많이 올라왔다. 그 증상에 따르면 나는 심각한 우울증이었고, 상담에서 효과를 봤다는 후기를 보며 점점 '유료 상담은 안 받아봤는데, 마지막으로 시도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에 대한 글을 올리시는 ‘서늘한 여름밤’님과 ‘누다심’님의 글과 책, 이름 모를 상담사, 전공자들의 블로그를 보면서 정보를 모았다. 어떤 상담센터, 상담사를 선택해야 하는지, 피해야 하는 상담은 어떤 건지 알아가면서 제대로 된 상담을 받아보고 싶어졌다.




 결심을 한 후에는 서늘한 여름밤님의 상담기관 추천 목록과 댓글을 꼼꼼히 보고 거리가 가까운 상담센터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 후 후기도 검색해 봤다. 그중 상담 대상, 치료기법, 상담사의 공인 자격, 거리, 검사 종류 등을 비교해 한 곳을 골랐다.


 상담 예약을 하려면 센터에 전화를 해야 하는데 너무 떨려서 몇 날 며칠을 그냥 흘려보냈다. 상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상처받을까 봐 무서웠다. 마침내 전화를 걸기로 마음먹은 날 서성거리면서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잠시 앉아서 딴짓도 하면서 몇 시간을 미루고 미뤘다.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 아는 언니에게 카톡을 했다. 누구한테라도 말해 놓으면 전화하겠지.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언니가 나를 응원해 줬다는 것만은 기억난다. 나는 그 카톡을 받고서야 벽에 등을 기대고 쭈그려 앉아 전화를 걸었다. 상대측에서 전화받기를 기다리는 몇 초 동안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상담을 예약하고 싶다고 한 후 비용을 물었더니 직원분이 9만 원에서 12만 원까지 라고 안내했다. 비싸기로 악명 높은 기구 필라테스 1대 1 강습비보다 비쌌다. 1시간에 최소 9만 원 이라니. 백수에게는 참 거금이었다. 그래도 막다른 골목에 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일을 하기는 해야 했으니까. 9만 원인 선생님으로 예약해 달라고 했다. 다음날 오전으로 약속이 잡혔다.




  상담이 참 가기가 싫었다. 이전에 대학 상담실과 나라에서 운영하는 무료 상담, 대학 상담을 이용해 봤는데, 누군가에겐 도움이 됐겠지만 나한테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부터 불안장애를 이해하기 위해 심리상담 책들을 여럿 읽었던 나는 상담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환상을 품고 있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이해해 주면 스르르 마음의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렇게 믿었던 내 첫 상담은 최악이었다. 고등학교에서 심리검사 후 한 짧은 상담이었는데, 지금 와서는 진짜 상담사가 맞는지 싶은 그 남자는 나에게 왜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냐며 훈계만 했다. 왜 이를 드러내고 웃지 않냐는 태클도 걸었다. 상담하러 가는데 왜 이렇게 좋아하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밝게 상담실에 간 나는 그날 하루 종일 화가 나고 자괴감이 들고 우울했다. 친구가 왜 꼭 이를 드러내며 웃어야 하냐고 해 준 말이 오히려 나를 더 안심시켰다.


 두 번째 상담은 대학 상담실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해주었지만 그게 다였다. 아무 드라마틱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머리가 조금 커진 나는 '이런 말은 친구도 할 수 있지 않나?'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게다가 우리 집에 같이 지내던 삼촌이 퇴근 후 혼자 반찬을 데워 먹은 걸 가지고 엄마에게 혼난 이야기를 하며 내가 억울해할 때 상담 선생님이 "삼촌 밥 해주면 안 되나요?"라고 말하셔서 더 이상 상담 선생님과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긴장한 채 대학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가면 피곤하고 아팠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 밥 차려주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도 너무 화가 나는데 상담 선생님조차 이해를 못 하시니 더 억울했다. 대학 상담은 신청자가 많아 10회가 끝이어서 어영부영 횟수를 채우고 상담이 끝났다.


 세 번째 상담은 가족 상담이었다. 나라에서 하는 상담을 신청해 가기 싫다는 엄마를 몇 번 데리고 갔지만 우리는 상담 선생님 앞에서 싸우기만 했다. 선생님은 친절하시고 좋았지만, 상담을 해도 답답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건 선생님의 문제가 아니라 그 당시 내 가정환경의 문제가 컸다. 짧은 회차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렇게 세 번째 상담도 소득 없이 끝났다.


  네 번째 상담은 첫 번째 상담과 더 비슷했다. 여성이라 차별받았던 엄마에 대해 얘기하자 상담사는 '그런데 왜 엄마를 이해하려 하지 않냐'라고 했다. 엄마가 받은 차별에 대해 말한 거 자체가 엄마를 이해해 보려는 일환이었단 걸 왜 모르는 건지. 엄마가 힘들었다고 해서 내가 엄마의 학대를 이해해줘야 하는 건가? 게다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욕하고 때리면서 키우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나한테 그랬다. 왜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자꾸 이해하라고 하는 건지 그거야 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는 내 학과를 들먹이며 '사회학과는 그러는 거 아니다'라고 부정적인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사실 뒷말은 기억도 안 나고 '사회학과랑 내가 심리적으로 문제를 겪는 거랑 무슨 상관이람?'이라고 생각했던 것만 기억이 난다.


 4번의 상담이 다 실패로 끝난 후 다시는 상담을 찾지 않았다. 그러니 거금이 드는 상담을 신청한 뒤 걱정이 드는 건 너무 당연했다. '또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면 어떡하지? 또 비난만 받으면 어떡하지? 무엇보다 또 안 나으면?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번에도 실패하면 내 인생에 답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거의 패닉 상태였던 것 같다. 그러나 결국 상담 날이 다가왔다. 정말 가기가 싫었다. 그렇지만 가야 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 나를 위해서.



* 중간에 유료 상담에 대한 이야기는 유료 상담이 더 낫다거나 무료 상담이 별로라는 것이 아니라, 당시 저의 생각입니다. 제가 했던 무료 상담에는 회차 제한이 있어서 장기 상담이 필요했던 제가 상담 효과를 보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이니 상담이 필요하신 분들은 꼭 무료상담이든 유료상담이든 재정적 상황에 맞게 신청해보시길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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