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이야기
2014년 7월에 국내 완성차 업계 중 한 곳에 취업을 하였다. 전자공학을 졸업하며 엔지니어 외에는 다른 분야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수많은 지원서 중에 유일하게 구매로 지원한 곳에만 합격을 했다. 그때는 직무보다는 취업이 더 중요했기에 크게 개의치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에 첫 발을 내디뎠다. 살던 곳을 떠나 자취방을 얻어 짐을 정리하고 7월 1일 아침에 통근버스를 타고 회사에 도착하니 나와 같은 신입사원들이 여러 명 보였다.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거친 후 각 부서로 향했다. 나는 구매부서 전장팀에 배치가 되었다.
자동차는 수많은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품별로 전문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하는 기업들이 있다. 작게는 볼트, 너트부터 시작해서 하이 테크놀로지 분야인 자율주행, 전기 배터리와 같은 부품까지 영역이 다양하다. 완성차 업계는 어떠한 컨셉의 차량을 준비할지 고민함과 동시에 어느 협력사를 통해 부품을 개발하고 납품을 받을지 결정한다. 구매부서는 Commercial 적으로 (설계부서에선 Technical 적으로) 이러한 협력사를 선정하는 소싱 (Sourcing)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구매부서에 속해있는 직원들을 가리켜 바이어 (Buyer) 즉,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바이어의 역할은 이 외에도 협력사가 결정된 이후에 물류, 설계, 품질 부서와의 협업을 통해 안정적인 품질의 파트가 늦지 않게 납품이 되도록 관리를 하며 재무상태, 비즈니스적 방향 등 협력사의 상황을 체크하는 일도 한다. 회사의 특성에 따라 도면을 체크하며 설계적인 지식을 갖추기도 하지만 바이어는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보다는 다양한 지식을 가진 협상가에 가깝다.
협력사를 선정하는 일을 하기에 바이어는 (구매부서는) 세일즈맨 (영업부서)과 많은 컨택이 이루어진다. 이곳에선 기술영업으로 지칭하는데, 구매와 비슷한 역할을 가지고 있지만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 점을 빼면 두 부서 간에 역할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구매부서에서 근무하시던 분들이 다른 회사의 영업부서로 이직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자동차 부품은 일회성이 아닌 장기 계약으로 진행된다. 보통 3년에서 6년 정도로 계약이 맺어지며, 타 프로젝트에 호환이 가능한 부품이 있을 시 캐리 오버 (Carryover, 동일한 사양의 부품을 확대 적용)도 이루어진다. 5천 원 단가의 제품이라도 하더라도 수량이 백만 개, 2백만 개 이렇게 많아지기 때문에 구매 총액은 크며, 장기 계약이기 때문에 몇 달에 걸쳐 신중하게 소싱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여도 가끔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일례로 여름휴가 중, 거래하고 있는 협력사에서 담합한 사실이 뉴스에 보도되는 것을 본 경험이 있다.)
입사한 후 처음 담당한 파트는 스위치류 및 ADAS (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s, 운전자 지원 시스템) 부품류였다. 창을 열고 닫는 윈도우 스위치, 핸들에 부착되어 방향지시등, 와이퍼 등을 작동하는 콤비 스위치 그리고 거리를 측정하는 센서, 차량의 통신을 제어하는 모듈 및 레이더 등이 해당되었다. (지금은 터치 디스플레이의 개발로 많은 스위치가 대체되고 있고, 자율주행을 위해서 더 많은 하이 테크놀로지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나니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가 된 것 같았다. 엑셀 파일을 여는 것이 너무 낯설었고, 메일을 쓰는 방법도 잘 몰랐다. (동명이인의 수신인을 잘못 지정하기도 하고, 메일 제목을 잘 못 쓰기도 했다.) 사수가 배정되어 메일을 받아 읽지만, 흰 건 스크린이요 까만 건 글씨요... 그때는 이해되는 정도가 1~5% 되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회사에 참 미안하며... 준비가 잘 안 되어 있었는데 취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 감사하다.
물론 처음엔 업무를 수행하기보다는 어떻게 일들이 이루어지는지 흐름을 보고,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5시 반쯤에 퇴근을 해서 동기들과 함께 술을 한잔 하러 갔다. 서로 얘기를 나누며 조금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졌고, 밤늦게 자취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나의 첫 회사 생활의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눈을 감으며 내일은 어떤 일이 있을지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그때 모습을 떠올려보면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지 못해 학교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자격증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돌아보니 낯선 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스스로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늘부터 시작할 이야기에는 완성차 구매부서에서 일하며 배운 지식과 업무 관련 내용들을 정리해 담아보고 (공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회사 생활을 하며 어려웠던 일들 그리고 힘들었던 시간들도 같이 나누어 보려 합니다. 너무 못난 모습이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낼 수도 있겠습니다. 누군가에는 공감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지식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비 오는 날에 차 한잔 하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보는 걸 생각하며 편안하게 글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