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하면 척'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다.

by 이소희

왜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취미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요즘 작가들의 글쓰기 책자나 영상을 찾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작가의 책을 보고 유튜브에서 몇 편의 영상을 찾아봤다.

강원국 작가는 인터뷰에서 좋은 연설문은 메시지가 명확해야 한다. 많은 질문을 통해 쓰려고 하는 내용과 생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해 글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가가 연설비서관으로 근무할 때 질문을 거의 안 하고 연설문을 써서 대통령께 좋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고백 영상을 봤다.


그가 왜 질문도 하지 않고 대통령의 글을 썼을지 알 것 같은 느낌이다.

경직된 공직분위기에서 질문하기가 어려웠을 터이고 청와대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팀장으로 근무했을 때 조선시대 경연을 본떠서 한 달에 한 번씩 간부들이 모여서 좋은 강연을 듣고 필요한 업무를 소통하자고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당초 취지와는 달리 강연과 회의가 끝나도 참석한 간부들은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질의할 사람을 지목해 질문하는 해프닝도 벌어지긴 했지만, 분위기는 늘 경직되어 있었다.

미동도 없이 검은색 정장을 입은 수십 명의 공무원들 앞에서 혼자 말하는 강사도 이 상황에서 빨리 끝나기를 내심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공무원들 영혼이 없다. 수동적이다. 열정이 없다.' 일부 맞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사석에서 유머도 있고 아이디어도 넘치고 머리 좋은 사람도 꽤 많다.

그들은 왜 말을 아끼는 걸까?


바쁜 리더는 모호하게 지시해도 '척하면 척척' 해다 주길 원한다.

말 한마디만 해도 눈치 빠른 직원이 행간의 의미까지 알고 척척 해내는 직원이 얼마나 사랑스럽겠는가?

눈치 없는 직원이 윗분 의중도 모르고 자꾸 물어보면 능력도 없고 하기 싫어서 반발한다고 여기니 중간이라도 가려면 가만있는 게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조직 최고의 예스맨을 경계하라.


유호현 작가의 "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라는 책을 보면 “No assumptions'란 말이 나온다. 아무것도 짐작하지 말고 하나하나 다 물어보면서 하는 실리콘밸리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을 말한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사람’은 유능한 직원이 아니라 위험한 사람이다.

소통하지 않고 짐작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사람’이란 대목에서 몇 해 전 만났던 상사가 생각난다.

타지에서 와 잘 나가는 나름 유명한 인물이 우리 과장으로 왔다.

무엇이든 예스라고 말하고 윗분께서 시키는 일은 반드시 오늘 안에 처리하길 원하는 사람이었다.

보고서를 만드느라 팀원 전체가 야근 근무를 해도 그는 쿨하게 퇴근해 버렸다.

두어 시간 지나고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로 왁자지껄한 말소리와 잔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발음이 뭉개진 목소리로 보고서 다 됐느냐고 묻는다.

전화했으면 '밥은 먹고 하느냐? 미안하다. 약속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혼자 나왔다.'

뭐, 이런 정도의 말이 기본이 아닌가? 앞뒤 다 자르고 보고서만 챙기는 그가 얄미워 아직 멀었다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늦어도 좋으니 자료를 톡으로 보내고 가라'고 지시한다.

그는 자정 무렵, 완성된 자료를 받으면 검토도 없이 윗분께 쏜살같이 재전송하는 신속함을 보인다.


문제는 다음날이다. 아침부터 윗분께 불려 가고 나서야 보고서가 엉뚱한 방향으로 작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장이 잘못 지시해 지난밤 자정까지 일했던 일을 오늘 밤에 다시 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매일 밤 젊은 청춘들의 시간을 빼앗은 건 물론이고

밤새 남의 땅을 판 것도 모자라 오늘은 다른 신대륙을 파야하는 삽질녀가 되어 있었다.

그는 늘 말귀를 잘못 알아들었는데도 윗분께 '네. 물론이지요. 가능합니다.'라고 답한다.

어느 날인가부터 지시를 내린 윗분도 눈치를 챘는지 팀장이랑 같이 오라고 하기 시작했다.


우리 눈에는 그가 늘 위태위태해 쫓겨날 거라 예상했지만

예스맨 그는 영혼 따위는 진작에 팔고 다닌 대가로 용케 승진하고 끝까지 잘 나갔다.

직장생활에 행복한 결말 같은 것은 없다는 교훈을 일찍이 알았지만 그래도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자괴감과 무력감이 들었다.

우리들은 최선을 다해 그를 빈정거리는 걸로 소심한 복수를 했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물어야 길을 알지.


나도 요즘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되어 남편에게 타박당하는 일을 자주 겪는다.

남편이 베란다 창문 닫았어?라고 했는데, 집 안 청소 안 했다고 뭐라 하는 줄 알고 언짢은 표정으로 '청소했거든, 어깨 빠지는 줄 알았다고.' 남편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웃는다. '힘들다는데 왜 웃어?'

가는 귀가 먹었는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지 남편에게 엉뚱한 말을 늘어놓는다.


게다가 심각한 길치이기도 하다. 혼자 서울 나들이라도 가려면 두렵고 무섭기까지 하다.

어릴 때 길을 묻는 것을 창피하게 여겨 버스를 잘못 타고 반대 방향에서 내리기도 하고 복잡한 골목길에서 같은 길을 몇 번씩 돌며 시간과 체력 모두를 낭비한 경험이 많았다.


모르는 사람의 성급한 행동은 가장 위험한 결과를 불러온다.

이제 공직사회도 질문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의견도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를 포용할 줄 아는 좋은 리더가 있어 밤새워 헛발질하는 문화는 부디 사라졌기를 바란다.


말이 통해야 일도 통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