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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May 03. 2024

좋은 글을 쓰면 좋은 사람이 된다

나무 향기 나는 도서관


학교 졸업하고 공무원이란 직업을 선택해 엿가락처럼 가늘고 긴 직장생활을 30년 넘게 해 왔다. 주어진 일을 하며 큰 고민 없이 살고 보니 퇴직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가치 기준까지 무너뜨리는 비도덕적인 일을 하지 않으려고 내렸던 결단이지만 준비된 퇴직이 아니었다. 퇴직하고 한동안 집에만 있었다. 혼자 있고 싶어서가 아니라 근무시간에 일 말고 뭔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 왜 이 시간에 이러고 있냐고 물어볼지 괜한 걱정도 했다. 인생의 반도 넘는 세월을 출퇴근 시간에 맞춰 살다 갑자기 주어진 24시간에 아무런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길들여진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이다.


아침을 느지막이 먹고 조심스럽게 집을 나왔다. 찬 바람이 매섭게 불며 눈발까지 정신없이 날리는 날씨였다. 하필 온 세상이 꽝꽝 얼어붙은 날 집을 나왔는데, 갈 곳이 없었다. 집에서 길을 건너 눈에 보이는 도서관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서성이다 문을 열었다. 평일 오전 도서관에는 학생보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꽤 많았다. 큰 창으로 햇살이 들어와 도서관 안에 온기가 가득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서고를 보면서 책상 한편에 앉으니 조용하고 안온했다. 수많은 저자들의 책이 빼곡하게 들어선 열람실에는 오래된 나무 향기가 났다. 마치 포도주가 숙성되어 나는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 같았다.


공직에 근무하면서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사서직이 아니라 기회가 없었다. 퇴직하고 도서관에 와보니 시민들에게 이만큼 필요한 공간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주는 기운이라는 게 참 좋았다. 살다 보면 내 뜻대로 되는 것보다 어긋나 힘들 때가 많다. 그때 처음으로 간 공간이 도서관이었다. 재수가 없어 퇴직했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의 전환점이 된 시간이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직위나 월급은 잃어버렸지만, 귀한 시간을 얻었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책을 만나게 되었다.



좋은 생각으로 글을 쓰면 좋은 사람이 된다


도서관에 비치된 수많은 책을 보며 이곳에 원하는 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에 잡히는 책 한 권을 들고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고 읽었다. 마음에 한 줄기 바람이 불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햇살이 비치는 책상 위에 앉아 오랫동안 책을 보며 행복하다는 생각 했다. 책을 읽다 마음에 가는 글귀를 만나면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퇴직 후 처음으로 행복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장소가 도서관이었고 그곳에서 책을 만났다. 책 속에 수많은 저자들처럼 글이 쓰고 싶어졌다. 집에 와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고 가끔 글을 올렸다. 브런치 작가가 된 것도 기뻤는데 지난달에는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까지 선정되는 기쁨을 맛봤다.


처음에는 생각을 글로 적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글이 내 생각을 바꿔주었다.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으로 화가 난 마음을 고요한 마음으로 상처 난 마음을 조용히 다독여 줬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지난날 글을 쓰면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생각으로 글을 쓰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쓰는 대로 생각의 흐름이 흘러간다. 운동하겠다고 선언하는 글을 썼더니 운동하게 되는 실행력까지 얻게 된다. 

힘들고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 책을 만나고 글을 쓴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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