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써보기로 했다.
무언가를 잘하려는 마음보다, 그저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2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겉으론 멀쩡했지만 속은 텅 비었고, 뭔가를 새로 시작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햇빛 없는 창가에 놓인 화분처럼, 서서히 말라가는 기분이었다.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무너질 것만 같았다.
딱히 뭘 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다만, 가만히 있자니 숨이 막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속에서도, 어렴풋이 '그래도 잘하고 싶다'라는 모순된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어디라도, 무엇이라도 숨 쉴 틈이 필요했다. 사회생활로 바닥난 에너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을 글로 쏟아냈다. 그렇게 터져 나온 마음은 봇물 같았다.
처음으로, 나조차 몰랐던 내 마음과 마주했다. 잘해보고 싶은 바람, 아직 남아 있는 무언가를 향한 기대 같은 감정들. 그것은 내가 나에게 건네는 조용한 고백이자, 위로였다. 그렇게 글은 무너진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작은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실제로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마음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James W. Pennebaker)는 감정적 경험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면역 기능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다고 했다. 글쓰기가 단지 기분을 가라앉히는 걸 넘어서, 건강까지 도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공허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글을 쓴 것은 돌이켜 보면 잘한 일이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은 분명 있었지만, 그 욕심이 앞섰다면 글쓰기를 시작조차 못 했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완벽해지길 바라면, 글은 자꾸 막힌다. 문장이 어색하고 뒤죽박죽이었지만 누구에게 보여줄 글이 아니었기에 계속 쓸 수 있었다. 감정을 눌러두지 않고 해소하는 데 집중했다.
처음엔 마음을 정리하려는 시도였는데 하루의 루틴이 되었다. 많은 작가가 글쓰기를 일상의 루틴으로 삼는다. 나도 매주 정한 요일에 인터넷에 글을 게시하면서 스스로와 약속을 지켜나갔다. ‘뭘 써야 하지?’ 막막했던 초반이 지나면서, 조금씩 글쓰기 근육이 생겼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책도 읽게 되었고, 주변을 관찰하고 마음에 드는 문장은 필사 연습을 했다.
글쓰기 루틴에는 음악도 한몫했다. 소문난 음악 애호가 하루키처럼, 나도 글 쓸 때 음악을 듣는 작가들의 습관을 따라 해 봤다. 처음엔 그냥 분위기나 좀 내보지 싶어서 틀었는데, 뜻밖에도 효과가 좋았다. 기분이 가라앉고, 막혀 있던 문장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글에 잘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고, 마음이 맑아지는 곡들은 따로 모아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이제는 음악만 틀어도 자연스레 글을 쓸 준비가 된다. 요즘은 아키라 코세무라(Akira Kosemura)와 얀 티에르센(Yann Tiersen)의 곡들을 자주 듣는다. 창문 너머 오후 햇살이 서재로 차분히 번지면 이 시간은 나에게는 작은 안식 같다.
지금은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어딘가 헛헛하다. 매일 글을 쓰는 작은 습관이, 생각보다 깊고 단단하게 삶을 지탱해 주고 있다. 글을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면서, 나는 나를 돌보는 법을 조금씩 익혀가고 있다.
그런 나에게도 여전히 불안은 있다. 지금도 누군가 내 글을 보고 비웃진 않을까, ‘괜히 유난스럽게 보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글쓰기가 내 삶에 가져다준 변화를 알기에, 나는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누군가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글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의 편에 선다. 잘 쓰려고 애쓰기보단, 진심을 놓치지 않는 쪽이 더 어렵고 더 용기 있다. 계속 쓴다는 건, 무너진 마음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쓰면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