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작은, 늘 그렇듯 예상을 빗나가는 법이었다.
피로했지만,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있다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천직이라 믿었던 일이 어느 순간 밥벌이로 전락해 버렸다.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이었나? 불합리한 결정이 당연한 듯 흘러가는 조직, 앞뒤 다 계산하며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점점 내가 작아지고, 무력해졌다. 나는 조직 안에서만 존재하는 삶을 매일을 견뎌내야 했다. 억울하고 화나는 감정들이 쌓여만 갔다.
감정은 눌러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대로 두면 결국 불안이나 우울로 터져 나온다. 때로는 몸까지 아프게 만든다. 말로 꺼내지 못한 감정들이 마음속에 뜨거운 덩어리처럼 맺혀 있었다. 겉으론 멀쩡했지만, 속은 무너지고 있었다.
하기 싫은 일을 영혼 없이 반복했고, 박카스 한 병으론 해결되지 않는 피로가 온몸을 눌렀다. 혀끝은 씁쓸했고,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다.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고, 자꾸 얼굴을 만지거나 머리를 넘기는 불안한 습관이 늘어났다. “이건 아니다”라는 마음의 목소리를 계속 눌러가며 버티고 있었다.
늘 ‘순응하는 사람’처럼 살아왔던 내가, 퇴직이라는 선택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퇴직 이후 잠을 잘 수 없었다. 낮에는 외면했던 감정들이 밤이 되면 또렷하게 밀려왔다. 잠은 얕았고 자주 깼다. 결국 병원을 찾았고, 의사는 수면제를 처방해 주며 이렇게 말했다.
“퇴직은 말 그대로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한 거예요. 익숙했던 곳을 떠나서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니까요. 이사할 땐 정신없고 바쁘죠. 짐 싸고 옮기느라 긴장도 되고 기대도 생기지만, 막상 다 끝나고 나면 낯설고 피곤하잖아요. 몸살도 나고요. 지금 선생님이 겪고 계신 게 바로 그 몸살이에요. 그동안 너무 오래 참아온 거예요.”
그 말이 위로가 됐다. 전문가들 말처럼, 불면은 단순히 수면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 뇌가 계속 깨어 있으려 하기 때문일 수 있다. 감정노동이 반복된 사람일수록 이 상태는 더 오래간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시작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밤마다 마음속에서 떠도는 생각을 하나씩 글로 썼다. 감정을 배제한 보고서만 써오던 내게, 감정을 담는 글쓰기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어쩌면 그때, 불면의 끝에서 작가라는 새로운 열망이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
억울했던 일들, 불편했던 기억들, 스쳐간 감정들을 꺼내 적고 나면 마음이 편해졌다. 글을 쓰고 운동을 하면서, 수면제 없이도 잠들 수 있게 되었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감정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며, 나 자신을 조금은 다르게 볼 수 있게 됐다. 정확히 무엇이 나를 회복시킨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말로는 꺼낼 수 없던 감정을 글이 대신해 줬다. 마치 극심한 가난과 우울 속에서도 글쓰기를 통해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운 해리 포터의 작가 J.K. 롤링처럼 말이다.
어렸을 땐, 어른이 되면 불안도 슬픔도 알아서 잦아들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자연스럽게 단단해지고, 감정도 덜 요동칠 줄 알았다. 하지만 삶은 여전히 출렁였고, 성장에는 늘 통증이 따랐다. 그래도 이제는 그 진통마저 나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쓰며, 다시 나답게 서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