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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리릭 끓여낸 라면 같은 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by 이소희

서울까지 글쓰기 교실을 다니며 매일같이 글을 썼다. 매일 글을 쓰는 일이 마치 하루의 밥상을 차리는 일처럼 느껴졌다. 글은 참 신기하게도, 무엇이든 꾸준히 쓰다 보면 마음속 깊은 이야기가 자연스레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렇게 써 내려간 글이 ‘철밥통, 안녕’이었다. 안정된 공직을 내려놓던 날의 두려움과 해방감, 변화 앞에서의 망설임을 담은 글이었다. 뜻밖에도 몇몇 사람들이 “내 이야기 같다”라고 공감해 주었고, 진심을 담아 쓴 글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 경험을 계기로 내 글을 모아 책을 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생겼고, 그 바람은 곧 글쓰기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졌다. 하루하루 더 진지하게, 더 몰입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쓰기에 몰입하고 있을 무렵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사실 직장을 다니면서 건강은 뒷전이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운동은 멀리했고 끼니도 대충 때우기 일쑤였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드러난 걸까. 글쓰기에 몰두하면서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몸은 결국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손과 팔 관절에 통증이 생겨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결국 한동안 글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프고 나니, 자연스럽게 생활 전반을 돌아보게 되었다. 건강을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해 왔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몸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었다. 운동이라고는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지만,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식단도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 대신 한식 위주의 식사를 택했다.


아프고 나니 하루 세끼를 챙겨 먹는 일이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일과는 다르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신선한 채소는 아삭하게 손질하고, 제철 생선은 노릇하게 구워냈다. 육즙 가득한 고기도 정성을 담아 준비했다. 특히 재료를 직접 우려내 국물을 끓일 때면, 인공 조미료 없이도 재료 본연의 깊고 개운한 맛을 살리기 위해 애썼다. 식사 준비에는 시간이 꽤 걸렸지만, 가족이 먹을 음식이라 생각하면 그 시간마저 소중했다.


몇 달이 지나 건강이 조금 회복되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프고 나니 글쓰기를 대하는 마음도 달라져 있었다. 매일 공들여 차려낸 한 끼 식사가 몸을 살리는 것처럼, 글도 그렇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내어놓을 문장이라면, 허기를 급히 채우는 라면처럼 대충 끓여낼 것이 아니라, 재료를 고르고, 간을 맞추며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 글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내 글이 얼마나 좋아 보일지’에 마음을 쓰곤 한다. 어떻게 보일지, 누가 읽어줄지를 고민한다. 글을 쓴다는 건 밥상을 차리는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도, 정작 나는 누가 맛있게 먹어줄지에 궁금해하는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멈출 수는 없다. 내 마음 한구석엔 늘 ‘정갈한 문장’을 향한 갈망이 있었으니까. 하루 한 줄이든, 한 달에 한 꼭지든. 그렇게 쌓여가는 글들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내 글이 서점 어디쯤에 꽂히게 될까?’, ‘표지는 어떤 느낌이면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글을 쓰다 말고 표지 시안을 만들어 보거나, 작가 소개란에 들어갈 문장을 적어보기도 했다. 밥상을 차리기도 전에, 누가 먹어줄지를 먼저 궁금해한 셈이다.


사실 지금도 그런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때때로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반응을 기대하고, 준비 시간은 줄인 채 무엇이라도 빨리 보여주고 싶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럼에도 내 글이 휘리릭 끓여낸 라면 같은 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고심의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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