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겠다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좀처럼 집중되지 않았다. 뉴스레터 제목 몇 줄을 흘긋 읽다가 어느새 손가락은 습관처럼 스크롤을 올리고 내리고 있었다. 더운 날씨 탓인지 아침부터 갈증이 나 수박을 한입 베어 물었다. 평소엔 잘 보이지 않던 집안일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청소, 세탁, 현관에 쌓인 택배 정리까지, 글을 써야 할 오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점심을 먹고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좋아하는 작가들의 인스타그램을 탐색했다. 요즘 독자들이 어떤 글을 읽는지, 새로 나온 책은 무엇인지 기웃거리다가, 결국 커피를 정성껏 내려 책상에 앉았지만 이번엔 도서관에서 빌려온 소설책만 읽고 있다.
글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들도 원고 앞에서 절망하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시작은 어렵고, 완성은 더 어렵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는 마감 기한을 지키기 위해 아예 옷을 벗고 하인에게 맡긴 뒤 방에 틀어박혀 외출을 차단한 채 『노트르담 드 파리』를 완성했다고 한다. 고립은 그의 마지막 수단이었다. 문장을 짜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나는 위고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진 않는다. 대신, 회피조차 글쓰기 루틴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하는 '쓸데없는 짓'들은 대개 진지하고 생산적인 형태의 포장을 하고 있다. 사실은 글이라는 부담 앞에서 나 자신을 감추기 위한 방어라는 걸 스스로 잘 안다.
이런 심리를 ‘생산적 미루기’라고 한다. 당장 글을 쓰진 않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정리와 청소 같은 사소한 일로 성취감을 얻으며 불안을 달랜다. 완벽하게 쓰고 싶은 욕심과 두려움—이런 감정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이다.
나는 내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쪽이 더 잘 맞는다. 회피와 방황을 잘라낼 수 없다면, 그것조차 글을 위한 예열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매일 완벽한 몰입은 불가능하니 서서히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나는 멈추지 않기 위해, 내 방식대로 조금씩 움직인다. 뭘 써야 할지 모를 땐 노트를 펼쳐 낙서처럼 끄적인다. 단어 하나를 적고, 연상되는 단어를 이어 문장을 만들어 본다. 가끔은 삼행시를 짓기도 한다. 이렇게 부담 없이 손을 움직이다 보면 글을 쓰게 된다.
막히는 부분은 과감히 건너뛴다. 도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중간부터 쓴다. 쓰기 쉬운 부분부터 써 내려가고, 다음 날 다시 보면 막혔던 부분이 의외로 쉽게 써질 때도 있다.
환경을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이 도무지 써지지 않을 때면 잠시 걷거나, 글쓰기 시간대를 바꿔본다. 많은 이들이 카페를 찾지만, 나는 오히려 ‘내가 글을 쓰고 싶어지는 방’을 직접 만들었다.
두 개의 테이블을 나란히 붙여 넉넉한 책상 공간을 확보했고, 듀얼 모니터 옆에는 프린터가, 그 아래에는 얇은 스탠드 조명이 잔잔한 빛을 드리운다. 벽에는 좋아하는 일러스트와 엽서들을 붙였고, 창가에는 허브가 담긴 화분과 작은 스피커, 아로마 오일 디퓨저가 자리한다.
계절에 따라 커튼을 바꾸고, 책상 위에는 항상 메모지와 만년필을 정돈해 둔다. 복잡하지 않되 단정한,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 자꾸 들어가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도록 만든 이 방은, 내 글쓰기의 가장 조용한 협력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이 써지지 않는 순간은 찾아온다. 억지로 짜내려 하지 않고, 답답한 마음을 받아들이며 기다린다. 마치 누에가 고치를 짓듯이.
그 시간이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공허한 정지처럼 보인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진 파울러(Gene Fowler)는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는 쉽다. 빈 종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마에 피가 맺힐 때까지 버티면 된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수많은 대본을 쓰며 격렬한 마감과 싸워야 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말은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이들이 겪는 내면의 고통을 극단적으로,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나는 아직 피가 맺힐 정도로 바라보진 못했지만, 커서를 따라 눈이 멍해질 때까지 앉아 있던 날은 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듬는 시간들이 쌓이고, 그 끝에 마침내 한 마리 아름다운 글이라는 나비가 고치를 뚫고 세상으로 날아오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