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직장에서 주어진 수식어 말고 진짜 나를 찾아서

by 이소희

내 이름 석 자


퇴직 1년, 이꼬르 백수 생활도 1년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퇴직하고 다음 날, 그날의 기분을 지울 수 없다.

그날도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 창밖으로 줄지어 나가는 자동차 행렬을 지켜봤다. 운전대를 잡지 않고 잠옷 차림으로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는 중년의 아줌마, 분주해야 할 시간에 넋을 놓고 창밖 풍경을 쳐다보는 나는 퇴직자였다. 나조차 생경한 백수의 하루가 낯설게 시작되었다.


매일 오던 전화와 문자는 핸드폰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고요했고 가지고 있던 명함을 정리하면서 들었던 그 복잡한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퇴직과 맞닥뜨리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오는 이 순간이 내게는 오지 않을 것처럼, 나는 아닌 것처럼 외면하며 살았다. 손에 움켜쥐고 있던 모든 것이 모래알 빠져나가듯 사라지고 이름 석 자만 남는 순간, 그 순간이 퇴직이었다.


인생의 여정을 좌표 없이 그저 열심히 살아온 민낯의 나와 그날 처음 마주하게 된 날. 그 헛헛하고 외로운 이 기분은 무엇이었을까?



왕년의 스타 같은 건 없어


내가 과거 누구였는데 하면서 아직 현직의 삶을 아쉬워하거나, 퇴직하고 의기소침하거나, 일자리를 찾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현직에 있을 때 일하면서 타인에게 인정받았던 그때만이 쓸모 있는 사람이고 그것이 보람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퇴직 이후 이런 혼란과 직면하게 된다.


개인이 처한 환경과 삶의 지향점이 다르니 감히 뭐라 말할 순 없지만 나는 과거를 추억하며 나머지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꼭 남을 위해 쓸모 있는 사람이 될 필요도 없지 않나 싶다.


잘 나가던 과거를 잊지 못하는 왕년의 스타가 무슨 소용인가? 퇴직으로 모두가 평등해지는 시간, 얼마나 공평한 순간이 찾아왔는가? 과거만 붙잡고 있는 삶처럼 꼴 보기 싫은 게 없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때만 추억하며 시간을 보낸단 말인가?


살면서 늘 나중에 하겠다고 미루어 논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은퇴 이후의 삶은 자신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자기 성찰의 시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올 1년 동안 다양한 시도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 직장과 직위로 더 이상 나를 소개하지 않고 이제는 글 쓰는 이소희, 그림을 좋아하는 이소희라고 말한다.


가장 아름답게 사는 것은 진짜 내 이름으로 사는 거다. 직장에서 파준 명함에 붙은 수식어가 아닌 이제 진짜 내 이름, 진짜 내 인생을 찾아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나는 시간만 흘려보내는 노인으로 늙지 않기로 했다. 어른으로 계속 성장하는 공부를 하며 살아갈 거다. 드디어 좋아하는 공부를 향해 나아가는 거다. 이젠 허깨비 같은 남보다는 가족, 이웃, 친구, 자기 자신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진짜 나로 살아가는 일에 집중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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