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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슬호 Feb 24. 2022

피부색이 달라서

런던

매일 뜨는 해 아래, 매일 다른 우리


우리는 각자가 만든  범주에서 살아간다. 비슷해 보여도 똑같은 하루는 없듯, 조금씩 다른 일상을 채우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문득 정해둔 테두리를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갈망하는 이상한 마음이 싹튼 것이다. 


여행 익숙한 패턴을 깨고 완전히 다른 하루가 끼워지는 일지만, 쉽게 할 수는 없었다돈과 시간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후로 1,095번의 해가 뜨고 졌다.


D-day. 어두운 새벽, 터미널은 한적했다. 불 켜진 몇몇 가게가 이곳은 잠들지 않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묵직한 짐을 가진 사람만이 공간을 띄엄띄엄 채우고 있었다. 인천공항행 버스가 도착하자 짐칸에 배낭을 싣고 자리에 앉았다. 얇은 옷을 여민 부모님이 창 밖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더 이상 대화는 오갈 수 없었다. 오직 눈빛과 몸짓만으로 서로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읽어야만 했다. 세차게 흔들고 있는 손, 살짝 찡그려진 미간, 애써 웃음 짓고 있는 입술. 버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점점 작아졌고 코너를 돌자 내 손의 움직임도 멈췄다.


왜인지 눈물이 찔끔 고였다. 우리만 좋은 곳으로 떠난다는 죄책감일까, 자식 뒷모습 보는 심정이 짐작되어서일까. 정작 부모님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미안한 감정이 엉겨 붙어 고개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여행을 위해 한 푼, 두 푼 모은 지 벌써 3년이 된 해였다. 그간 내 손을 거쳐간 오렌지주스, 맥주, 유기농 아기 음료, 막걸리가 생각났다. 언니와 밤새워 만든 가이드북을 들고 공항에 도착하니, 처음 만난 비행기가 눈앞에 있었다.



피부색이 달라서


런던에 도착하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여름날 한국과 대조되는 날씨였다. 뜨거웠던 살갗에 찬 공기가 닿자, 12시간 만에 한 계절을 건너뛰었음을 실감했다. 급변한 공기는 달궈진 마음을 빠르게 식혀주었다. 분주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환기된 채, 거리를 나섰다.


지하철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 매표소에 도착했다. 여유롭게 각자 다른 직원에게 줄 섰는데, 내 차례가 되자 앞에 앉은 백인 남성 직원의 눈빛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나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조금 이상한 기운을 느꼈지만 목적지를 말하고 그가 말한 금액을 냈다. 표를 받기 위해 기다리던 내게 어디서 왔고, 여기 왜 왔냐고 물었다. 한국과 여행이라는 대답을 들은 그는 갑자기 깔깔대며 혼자 웃기 시작했다.


'이게 웃긴 일인가?' 상황과 맞지 않는 웃음은 의아했다. 뒤이어 그의 입에서 동양인 어린애 주제에 무슨 여행을 왔냐며 차갑게 식은 말을 툭 던졌다. 내가 잘못 들었나? 침착한 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손은 이미 늘게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냉소를 맞닥뜨리는 일은 늘 어렵다. 내게 뾰족한 창을 겨누는 사람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어서다. 갑자기라면 더 그렇다. 창에 찔려 피가 철철 나거나, 뒤늦게 방패로 막아 목숨만은 겨우 건지거나. 처음 겪어보는 인종 차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몸이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굳어진 내 모습을 보며 그는 더욱 크게 비웃었다. 니하오~ 니하오~ 그는 돈만 받고 표는 주지 않은 채로 조롱을 이어갔다.


나 혼자로 버거울 때, 시선이 주변으로 확장되는 것을 느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멀리 표 끊는 언니를 봤다. '이 자식이 인종 차별해!' 엄마에게 고자질하는 아이처럼 외치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처음부터 상황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옆자리 흑인 직원에게 이 사람 왜 이러는 거냐고 묻자, 그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두 번 일이 아니라는 듯 체념한 모습이었다. 모두 차별 앞에서 무방비한 상태였다. 형체가 없는 말은 보이지 않아서, 딱히 증거가 없어서 누구도 쉽게 나설 수 없는 듯했다. 혼자 해결해야 하는 걸 깨닫자, 주먹을 꽉 쥔 채로 단호하고 싸늘하게 말했다. "티켓 줘"


얇은 유리창을 사이에 둔 그는 길쭉한 혀를 쭉 내밀며 웃겨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타인의 감정에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상대가 고통받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공감 없는 이런 부류는 가해자가 되기 쉬워 보였다. 상대방 마음보다 본인 즐거움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있는 그런 사람.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제야 긴장이 눈 녹듯 풀렸다. 내 뒤로 선 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볼 테면 해 봐, 나는 시간이 많거든.' 권력을 남용해 발길 묶 그를 향해 나는 활짝 웃었다. 웃음을 방패 삼기로 한 것이다. 당황한 표정은 사라지고 여유롭기까지 한 나를 보고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티켓을 내 쪽으로 휙 던졌다. 더 이상 즐길 것이 사라진 자 결말이었다.

 나는 던져진 표를 쥐고도 태연한 미소를 유지했다. 결국 표를 손에 넣긴 했지만 씁쓸한 현실을 마주한 날은 분명했다. 차분했던 파란색 마음은 어느새 잿빛으로 바뀌었다.


관광객 많은 영국 런던에서, 공적인 일을 맡 사람이 인종차별과 조롱을 스스럼없이  사실 나는 적잖이 충격받았다. 생각해 보면 그저 피부색이 달라서 겪은 일이었다. 다름을 이유로 누군가 우위에 선다는 것이, 불편하지만 자주 일어나고 있는 현실임을 깨달았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나보다 부족해 보여서 짓밟고 오를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는데 말이다.


400년 전 미국에서 시작된 흑인 노예제도는 사람 아닌 상품으로 취급되어 쇠사슬에 묶인 채 팔리고 경매당했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1860년대, 남북전쟁이 발발해 북부 승리로 노예들은 해방되었지만 흑인에 대한 탄압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극단적인 백인 우월주의 단체들은 흑인에게 잔인한 폭력을 가했고, 시체 앞에서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 일이 그 시절 그들에겐 당연했던 것이다.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한 참담한 결과였다.


지금까지도 차별과 혐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과거에 당연한 인식이 지금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정 피부색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는과거에는 옳다고 믿었던 신념이 지금은 잘못된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인간의 사고가 확장되었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뿌리 박힌 도 언제나 바뀔 수 있다는 전제를 항상 염두해 놓는다. 뇌가 새로운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누군가의 피부 색깔에 대해서, 누군가의 사랑에 대해서, 누군가의 장애에 대해서. 어쩌면 내겐 너무 불편한 것이 사실은 불편한 게 아님을 깨달을 때 비로소 차별이 깨지는 게 아닌가 싶다.


다름과 틀림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들 틈에 섞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기쁜 이유는 그만큼 사회가 이리저리 기울어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울어진 사회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옳고 그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보는 사람들일 것이다. 똑바로 선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회가 평평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위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어깨동무하고 발맞춰 걸어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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