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떠나는 날, 여유롭게 공항에 도착했다. 프라하로 가는 비행기가 30분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적은 오후 비행기라 초조해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40분 후, 비행기는 예상보다 늦게 하늘길에 올랐다.
프라하 공항에 도착하자 손목시계는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체크인 마감 시간이 11시라 서둘러야 했다. 그때 들려온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 "잠깐만!"
큰 소리에 놀란 내가 말했다.
"아 왜, 무섭게"
언니는 경직된 얼굴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는 그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쫒았다. 시선 끝에는 공항의 시계가 있었다. "저게 뭐.."
공항의 시계는 10시가 아니었다. 정확히 11:00라고 쓰여있었다. 우리가 한 가지 놓친 사실은 런던과 프라하의 시차였다. 런던보다 한 시간 느린 프라하. 이곳은 밤 11시였던 것이다.
공항에서 호스텔까지 1시간이 걸렸다. 밤 12시, 호스텔 주소가 적힌문 앞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여러 번 눌러봐도 굳게 닫힌 철문은 열릴 줄 몰랐다. 체크인 마감은 벌써 1시간이나 지난 상태였고 거리는 한적했다.
숙소는 와이파이가 되고 구글 맵은 휴대폰에 저장해뒀으니 굳이 유심을 안 사도 된다는 언니 말에 동의한 나였기에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었다. "하나 살 걸 그랬나?" 길바닥에서 첫날밤을 보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체코 커플이 보이자 한참을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언니가 벌떡 일어섰다. "저분들께 부탁해보자!" 소통되는 정도의 취기였던 그들은 흔쾌히 전화를 걸어주었다. 그들에게서 풍기는 맥주 냄새가 향수처럼 달큰하게 느껴졌다.
호스텔 주인이 도착하자 우리는 연신 사과했고 그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들어선 그곳에는 침대 6개가 놓여있었다.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뚱이를 1인용 침대에 풀썩 던졌다.
위로가 되는 하루
더위가 한풀 꺾인 9월의 프라하는 걷기 딱 좋은 날씨였다. 쭉 뻗은 강둑을 따라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하늘 한 번 올려다본 적 없이 살았구나, 깨달았다. 뭐가 그리 바빴을까.
레스토랑 주방에서 접시와 포크를 닦던 일, 눈 내리던 날 냄비 속 딱딱하게 굳은 밥을 떠먹던 일, 5천 원 짜리 메뉴 골라서 사장님께 혼이 난 일, 언니가 싸준 샌드위치를 구석에서 홀로 먹던 장면들. 유독 먹을 때 서러운 적이 많았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에서 잘 챙겨 먹지 못할 때 쉽게 비참해졌다.
언니는 새벽에 신문 배달을 갔다. 크리스마스에 처음 하게 된 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니는 매일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2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문을 돌렸던 언니는 프라하의 작은 벤치에 앉아 그때 일어난 일들을 말해 주었다. 나는 가만히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놀라거나 화를 냈다. 마음이 뭉클하다가 저릿한 순간에도 섣부른 위로나 쉬운 공감은 할 수 없었다. 다른 종류의 슬픔을 훼손하지 않은 채로 집중해서 들었다. 순간 시원한 바람이 휙- 불었다. 바람은 뜨겁게 달궈져 있던 것을 차분하게 해 주었고, 이런저런 고민으로 꽉 찼던 마음의 용량도 전보다 가벼워졌다.
우리는 노동과 맞바꾼 돈으로 프라하에 있었고, 서로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작은 순간조차 허투루 보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일을 하면서 겪었던 많은 감정들을 프라하 강변에 훌훌 흘려보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하루였다.
같은 주머니 다른 느낌
길을 걷다 발견한 시장에서 그리 비싸지 않은 과일을 몇 개 사다가 먹었다. 마음에 드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먹고 싶은 메뉴를 편하게 골랐다.
부담 없는 물가가 주는 심리적 여유는 꽤나 커서 마음 한 편에 있던 고민이 스르륵 녹는 기분이 들었다. 달달한 케이크를 먹을 때처럼 생크림이 스르륵 녹는 기분. 그러면 나는 프라하가 더 좋아지기도 했다가 또 오고 싶은 곳이 되었다가 떠나기 싫은 곳이 되기도 했다. 이곳이 참 좋다며 얼굴에서 미소가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