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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 Jun 10. 2022

너에게도 빛나는 이별이길

  

 나는 손바닥에 배어 나온 땀을 슥슥 닦아내고는, 아직 오월인데 벌써 이렇게 더우면 여름엔 어떻게 하나... 중얼거렸다.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잘 익은 계란말이를 접시에 담아 식탁에 앉았다. 몇 가지 반찬이 차려진 단출한 식탁 앞에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난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옆 자리에 앉은 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올해 여덟 살이 된 아들이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학습만화책을 읽고 있다. 습관적으로 나오려는 잔소리를 목구멍에서 부여잡아 밥알과 함께 꿀꺽 삼킨다. 잔소리 안 하는 엄마가 되어야지, 결심한 지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차려진 밥상 앞에서 만화책에 빠져 혼났던 시절이...


 이해하는 건 이해하는 거고, 지금 식사를 끝내지 않으면 설거지가 늦춰진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지금 밥 먹는 시간인데."


 "응? 응..."      


 다행히 아이는 서둘러 식사를 시작했다. 간간히 식기류 부딪히는 소리와 씹는 소리가 나는 조용한 일요일 점심이었다.      


 "내일 월요일이야. 학교 가기 싫어..."      


 밥 먹다 말고 아들이 칭얼거린다.      


 "학교 가면 좋지. 뭐가 싫어."


 "싫지. 집이 좋은데, 난."      


 집에서 엄마와 둘이 노는 걸 가장 좋아하는 아들은,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 같은 성격의 엄마가 아이와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 모르니까 하는 소리겠지. 나는 한숨을 내쉬다 말고 스마트폰 알람을 확인했다.      


 "알림장 어플에 숙제 떠있네?"


 "무슨 숙제?"      


 나의 학창 시절엔 알림장 공책에다 선생님이 불러주신 내용을 열심히 받아 적곤 했었는데,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바로 알람이 전달된다. 새삼 기술 발전의 편리함을 느끼면서 찬찬히 내용을 읽어보았다.      


 "가족사진 가져오래... 음, 그리고 가족 활동 사전조사서 적어오라는데?"


 "아, 나 그거 가방에 있어!"      


 밥 먹다 말고 제 방으로 쪼르르 달려간 아들이 이내 팔랑거리며 종이 한 장을 가지고 온다.      


 "가족 소개... 카드 만들기 조사? 이걸 왜 지금 주니?"


 "헤헤... 까먹고 있었어."      


 아들은 눈치를 보다가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종이를 식탁 구석에 내려놓았다. 아들이 우물거리며 말했다.      


 "가족 관련해서 무슨 활동 같은 거 하려나 봐."


 "그러네."      


 영영 오지 않았으면 싶었던 날이 왔다. 이혼하면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던 부분이다. 아이가 이것 때문에 학교에서 차별당하거나 눈치 보며 살게 되는 건 아닐까? 엄마는 왜 이혼을 해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드냐며 서러워하는 십 대 청소년의 모습이 스물스물 떠오른다.


 나에 대한 평판이야 성인인 내가 알아서 하면 될 문제지만, 아이는 어떨까. 아이도 내 마음과 같을까.      


 식사를 마치고 간단하게 치운 다음, 아이와 함께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갔다. 자, 어떤 사진을 골라야 할까.     

 

 "우리 같이 찍은 사진이 이것밖에 없네. 이거라도 프린트할까?"


 "응, 좋아."      


 컴퓨터 속 어떤 폴더엔 전남편이 생후 100일쯤 된 아들을 안고서 찍은 사진도 있겠지만, 짧은 고민 끝에 나와 아들 둘이서 찍은 사진만 챙겼다. 식탁에 턱을 괴고 앉아 숙제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계속 고민했다.


 아빠 얘길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엄마, 여기 할아버지도 적어?"


 "으응? 어, 그래.. 적으면 좋지. 할아버지 성함 알아?"


 "당연하지."      


 아이에겐 친가 친척이 없으니 자연스레 친가, 외가 구분 없이 부르게 되었다. 내가 어릴 적엔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로 나눠서 불렀던 것 같은데, 요즘엔 보통 그렇게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들었다. 천만다행이다.      


 "엄마, 할아버지 옆에 김 이모도 적을까?"


 "그... 으럴까?"      


 십오 년 전 이혼하신 아버지가 새로 만난 '김 이모'는 혼인신고도 마친, 나의 서류상 모친이다. 뭐라고 부르면 좋겠냐는 아이의 질문에 "그냥 이모라고 불러"라고 한 이후로, 김 이모는 나에게도 이모고, 내 아들에게도 이모가 되었다. 서류상 가족이 맞긴 한데, 조금 애매한 편이다. 생각이 복잡하게 뒤엉킨다.


 내가 넋을 놓고 있는 동안에도 아들은 숙제를 척척 해나갔다.      


 "엄마, 엄마! 김 이모 밑에 다은이 이모도 적어?"      


 김 이모가 첫 번째 남편분과 사별하시고, 혼자 키운 딸이 다은씨다. 나보다 두 살인가 어린데 계절마다 아들의 옷을 새로 사서 보내준다. 아버지, 김 이모, 다은씨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가족'이라는 이름의 단톡방에서 소통한다. 맞아, 다은씨도 가족이지.      


 "그래. 적자..."      


 텅 빈 종이가 아들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종이에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가 거실을 채운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곧장 스마트폰을 들어 남자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답장은 바로 왔다.      


 "승오야, 이것 봐봐. 삼촌도 적어달라는데?"      


 이혼 후 4년간 나와 함께 아이를 키운 건 다름 아닌 남자 친구였다. 서류상으로 완벽한 남남이지만, 아들의 유년기는 거의 이 친구가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아들이 가끔 남자 친구를 보고 '엄마'라고 하거나, 나를 보고 '삼촌'이라 부르는 말실수를 하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카테고리로 묶는다고 하면, 정서적으로는 이쪽이 훨씬 가족에 가깝지 않을까.      


 "삼촌은 벌써 적었어."


 "어디 봐."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게 이런 걸까. 내가 남자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 '가족 활동 사전조사서에 널 적어도 되겠니?'를 묻고 동의를 받을 때, 아들은 이미 삼촌의 이름을 적어버렸다.      


 "가만, 이건 뭐야... 닮은 동물? 엄마와 승오는 원숭이를 닮았어?"      


 아들이 킬킬 웃으며 종이를 빼앗아간다.      


 "나 아직 다 못 읽었어. 삼촌은 무슨 동물 닮았다고 적었어?"


 "안 보여줘. 비밀이야!"      


 한참을 간질이고, 설득한 끝에, '고릴라'라고 적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삼촌은 왜 고릴라야?"


 "음... 엄마랑 승오 보다 더 힘이 세잖아."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깔깔 웃고 씨름하고, 열심히 뭔가 적어 넣었다. 숙제를 다 한 뒤에 보드게임도 몇 번 하고, 책 읽고 놀다 보니 오후가 금방 지나갔다. 하도 집중해서 놀아주는 바람에, 나는 그만 저녁 먹고, 아이를 재울 때까지 전남편에 관한 걸 깜빡 잊어버렸다.


 양치 후 침대에 누워 꼬물거리는 장난을 치는 아들을 바라보다 착잡한 심정으로 말을 꺼냈다.      


 "혹시 아빠는 안 궁금해?"      


 아이가 아빠를 그리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보고 싶어 한다고 해서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 아

니기에 더 그랬다.      


 "궁금하지!"      


 아들의 목소리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보고 싶지 않다고, 궁금하지도 않다고 말해주길 바랬나 보다.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어떤 게 궁금한데?"


 "전에 엄마가 그랬잖아. 아빠는 아파서 치료받고 있어서 못 만난다고."


 "그, 그랬지..."


 "무슨 병인지가 궁금해."      


 이혼이라는 단어를 알려줬을 때, 아이가 생각 없이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다가, 또래들에게 '쟤는 부모가 이혼한 애'라는 부정적 시선을 받게 될까 봐 그랬다. 그래서 그냥 아빠는 아프다고, 많이 아파서 만날 수 없다고만 알려줬었다.


 짧은 고민 끝에 '이혼'이라는 단어만 빼고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어쩔 수 없이 따로 살게 되었고, 당분간은 만나기 힘들다는 말, 하지만 네가 더 자랐을 때 원한다면 만날 수도 있다는 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왔다.      


 "뭐야, 그럼 병난 게 아니야?"


 "응. 사람들이 물었을 때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냥 병에 걸려서 치료 중이라고 했어."


 "그렇구나. 그럼 나도 그렇게 말해야겠다."      


 이불을 코밑까지 끌어당긴 아이가 눈가를 길게 늘리며 웃었다.      


 "보고 싶진 않아?"


 "잘 모르겠는데. 사실 아빠 얼굴도 기억이 안 나."      


 나도 모르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어 해도 만날 수 없으니, 차라리 그리워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으니까.      


 "근데 삼촌은 보고 싶어!"


 "응?"      


 아이는 모로 누워 베개를 베고 하품을 하며 말했다.      


 "삼촌이랑 주말에 뭐하고 놀까, 그런 생각을 하면, 보고 싶어져. 그리고 할아버지도 보고 싶어. 할아버지는 내가 뭘 해도 오냐오냐 해서 좋아. 김 이모도 보고 싶어. 맨날 용돈 줘서 좋아."      


 키득키득 웃으며 기지개를 켠 아이가 웅얼거린다.      


 "근데 아빠는 잘 모르겠어. 기억이 안 나서, 보고 싶은지 안 보고 싶은지도 모르겠어. 그냥 아, 아빠가 아픈 게 아니구나. 그런 느낌이야."


 "보고 싶어지면 엄마한테 얘기해 줘. 알겠지?"


 "웅 알겠어... 엄마, 잘 자라고 뽀뽀해주고 가..."      


 사랑의 색깔이 다양한 만큼이나 헤어짐의 빛깔도 모든 이들에게서 다르게 반짝인다. 개인이 가진 마음의 모양이 달라서, 뿜어져 나와 반사되는 형태는 수천 갈래로 갈라진다. 사랑이 빛이라면 이별은 무엇일까? 빛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 생긴 또 다른 색의 빛이다. 어떤 사람들은 헤어짐을 어둠으로 받아들이지만 그 또한 그가 가진 특유의 어두운 빛은 아니었을까. 나의 경우엔 사랑보다 이별이 더욱 밝은 빛이었다.      


 나의 이별은 사랑스런 존재로 인해 더욱 빛이 났다. 그건 바로 보석보다 빛나는 어린 아들이었다. 아들 덕분에 나는 짧지만 강렬했던 결혼생활을 맛보았고, 사랑보다 빛나는 이별을 맞이할 수 있었다. 현재의 이 만족스러운 생활을 달리 뭐라고 더 표현할 수 있을까? 그저 빛이라고밖에...      


 언젠가 아이가 친부를 대면하기 원하는 날도 올 거다. 그게 당장이 아니라서 다행스럽다는 마음과, 가능하면 그날이 늦게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공존한다. 나의 이별은 그저 빛이었지만, 아이의 이별은 무슨 색일까? 나와는 다른 빛깔이라 하더라도 그게 반짝임으로 가득 차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삼촌과 엄마, 다른 가족과 친구, 재미난 일들이 아이의 삶을 다채롭게 가득 채우고 있기를...      


눈을 비비며 잠에 막 빠져들려는 아이의 이마와 볼, 입술에 차례차례 입 맞추고 조용히 거실로 나왔다.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아 아이를 위한 기도를 마치고, 이렇게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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