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 Jul 03. 2022

아들은 아직도 머리를 기르고 있습니다

적절한 '남자아이 머리 길이'는 어디까지일까


 승오가 처음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건 작년 이맘때부터였다. 일곱 살 승오는 유치원에서 이미 '독특한 애'로 통하고 있었기에, 나는 특별히 말리거나 하지 않았다. 한 여름에 긴 한복을 입고 등원하거나, 겨울왕국 엘사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남자아이인데, 머리 좀 기른다고 대수랴.


 시간이 흘러, 여덟 살이 된 지금도 아이는 여전히 머리를 기르고 있다.


 머리를 질끈 묶고도 삐져나온 잔머리들 때문에 삔을 일곱 개쯤 더 꽂아야 학교에 갈 수 있다. 머리를 풀고서는 갈 수 없다. 친한 친구들이 모두 태권도 학원에 다닌다며, 몇 달을 떼쓰던 태권도 학원에 지난달부터 다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교 직후 태권도를 배우러 가야 해서, 머리는 필수적으로 묶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승오는 얼굴이나 목 언저리에 머리카락이 들러붙는 느낌을 무척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머리를 짧게 자르지는 않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귀가 후 샤워 시간이 두 배로 늘었다. 다 씻은 후 드라이어로 말리는 것도 한참이다.


 "아, 너무 귀찮아!"


 "엄마가 다 해주는데 뭐가 귀찮아."


 "시간도 오래 걸리고..."


 "머리를 짧게 자르면 고민이 해결되겠는데?"


 "그건 절대 싫어!"


 넌지시 커트머리를 제안해 봐도 돌아오는 건 야멸찬 거절의 말이다. 아이는 도대체 왜 머리카락을 기르겠다고 결심한 걸까.


 "머리가 짧으면 씻는 시간이 훨씬 줄어들어."


 "그래도 기를 거야."


 "왜 머리를 기르겠다고 하는 거야?"


 "왜 머리를 기르면 안 된다고 하는 거야?"


 아이는 내 말투를 따라 하며 역으로 질문을 해 온다. 요즘에 와서는 이런 대화도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운동할 때 머리카락이 길면 방해되잖아."


 "누나들은 머리 묶고서 잘 다녀."


 태권도나 축구 등 운동 핑계를 대 봐도, 머리 긴 다른 여자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다닌다며 거절한다.


 "등교 전 준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앞으로 아침밥을 더 빨리 먹을게."


 "책 읽을 때 불편할걸?"


 "머리 묶으면 안 불편한데?"


 "씻을 때도 힘들다니까."


 "그건! 아까! 다 말한 거잖아~!"


 늘상 이런 식으로 대화가 마무리되곤 한다. 아들이 머리를 기르든 자르든 제 자유라고 말하면서도, 아마 내 마음 한편엔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안 그러는 척하면서 계속해서 커트머리를 권하는 거겠지.


 육아에 정답은 없다고들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의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아이를 양육하고 있다. 주위에 피해 끼치지 않을 것, 자기 자신이 위험해지지 않도록 할 것, 정해진 시간이 먹고, 자고, 놀 것 등이다. 남자아이가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은 내 육아관에 반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적극적으로 반대하질 못하고 있다.


 가만 놔두면 저 혼자 자꾸 길어 나는 게 머리카락인데, 거 좀 길어나게 둘 수도 있지, 자꾸 간섭하려 드는 나 스스로가 너무 엄격한 엄마인가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있었던 일 덕분에 내가 정말로 걱정하는 건 아들이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걱정하는 듯 간섭하는 시선과 말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난 토요일, 여느 때와 같이 아들을 축구센터에 바래다주고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아이들 출석체크를 도와주는 스텝분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 스텝은 늘 아이들에게 밝게 인사해주는 명랑한 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친근하게 인사하고서 정말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승오 엄마, 애 머리는 엄마가 기르라고 한 거예요?"


 나는 조금 당황해서 황급히 대답했다.


 "네? 아, 아니요. 자기가 기르고 싶다고 고집을 부리네요."


 "아들 아니에요?"


 "맞아요."


 "아들인데 머리를 기르고 싶어 해요? 자기가 스스로?"


 "네... 그러네요."


 대뜸 던지는 무례한 질문들에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대화를 더 이상 이어가지 않고 주차된 차로 돌아왔다. 방금 전의 대화를 곱씹을수록 가슴속에 분노가 들어찼다.


 '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남의 아들 머리카락 가지고 시비람?!'


 고작 머리카락 좀 기르는 일이, 여자아이에겐 평범한 일일지 몰라도 남자아이에겐 눈총 받고, 변명해야 하는 특별한 일이 되어버린다. TV 방송에서 남성 로커들이 긴 머리를 찰랑이며 노래를 열창하는 모습이 그다지 낯설지 않은데, 머리를 곱게 묶고 그림을 그리거나 요리를 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은데도 그렇다. 승오가 머리카락을 기르겠다고 고집 피우지 않았다면 좀 전의 기분 나빴던 그 대화도 없었을 텐데 싶어, 순간적으로 아이의 머리를 빡빡 미는 상상을 했다.


 그러고 보면, 승오는 일곱 살 때 빡빡 민 적이 있다. 친구 머리처럼 빡빡 밀어보고 싶다고 고집을 피워서였다. 난 그때도 군말 없이 그러라 했다. 아이는 이후 파마도 해본 적 있고, 머리 끝부분만 무지개색으로 염색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 머리를 기르게 된 거다. 잘못한 건 편견을 가지고 아이를 판단하는 사람들이지, 내 아이가 아니다. 나는 아이에게 화살을 돌릴 뻔한 걸 반성하기로 했다.


 묶은 아들의 머리를 풀면 어깨에 닿을락 말락 한 길이가 된다. 요즘엔 다들 마스크까지 쓰고 다니니 더더욱 성별을 구별하기가 어렵다. 뒷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여자 아이다. 성별로 차별하고 싶진 않은데, 보통 주변의 모습들이 그러하다. 머리가 긴 여자아이들, 머리가 짧은 남자아이들. 그 속에 유독 튀는, 긴 머리칼의 내 아들.


 조금 전의 그 중년 남성 스텝이 나쁜 의도로 말한 게 아니란 걸 안다. 오히려 그런 질문세례가 보통이라는 것도. 곱씹어보자면 이상할 정도로 평화로운 나날들이었다. 거기엔 학교나 학원에 가서 선생님들을 따로 뵙고, '남자아인데 왜 머리가 길지' 같은 질문을 하지 말아 달라 간곡히 부탁드린 영향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모두가 좋은 분들이셔서 누구도 아이에게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지'같은 소릴 하지 않으셨다.


 축구 수업이 끝난 아들을 태우고 집으로 가면서 물었다.


 "승오야, 남잔데 왜 머리 기르냐고 물어보는 사람, 많아?"


 "예전엔 맨날 있었는데, 요즘엔 없어."


 "누가 그렇게 물어보면 넌 뭐라고 대답해?"


 "내가 기르고 싶어서 기르는 건데, 뭐 문제라도 있어? 이렇게 말하는데. 내가 머리를 기르든 말든."


 "그렇게 일일이 대답해야 되는 거 귀찮지 않아?"


 "엄청 귀찮지! 근데 그렇다고 머리를 자르진 않을 거야."


 승오가 눈썹을 휙 들어 올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가 하고 싶은걸 할 거야. 만약에 내가 머리 자르고 싶어지면 그때 자를 거야."

 

  웃음이 날 것 같이 입꼬리가 간질거렸다.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아들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계속 나를 보다 보면 적응하겠지. 그러면 다음번에 어떤 남자애가 머리를 기른다고 해도 귀찮게 안 할거 아니야. 맞지?"


 사회 속에서 평범하게 묻어가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과,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모두 공존한다. 아마 나는 계속해서 아들이 커트머리를 하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하며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하겠지만, 아이는 아이대로 자기 길을 자기가 선택해서 나아갔으면 싶다. 엄마로서 아이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으니까.


 지금의 남자 친구는 육아를 제외하더라도 내 의견을 절대적으로 존중하는 사람이라서 단 한 번도 감 놔라 배 놔라 입을 댄 적이 없다. 내가 가자! 하면 가고, 멈추자! 하면 멈추는 사람이라 그렇다. 나는 이혼한 내 처지에 감사했다. 전 남편은 무척 보수적인 사람이라 승오는 결코 머리카락을 기를 수 없었을 테니까. 자유를 추구하는 아들과, 그런 아이를 제압하려는 남편 사이에서, 내가 받아야 할 스트레스의 크기 또한,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늦지 않게 이혼해서 정말 다행이고, 내가 아이의 스타일을 존중하는 엄마라 또 다행이고, 이런 우리 모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남자 친구를 만난 것까지 완벽하게 다행이다. 앞으로도 이런저런 힘든 일들이 있겠지만 지금처럼 서로를 존중하며 잘 헤쳐나가길.

이전 05화 이혼하고서 누리는 추석의 여유로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