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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 Oct 26. 2022

이혼 결심까지 6개월이 걸렸던 이유

※다소 폭력적인 묘사가 있으니 감상에 주의하세요※

 전남편은 무척 이상한 사람이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부분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지만 그의 이상함은 남달랐다. 그는 결벽적으로 정리 정돈을 하거나 사소한 것들에 강하게 집착했고, 나를 좌지우지하고 싶어 했다. 그와의 대화는 늘 미궁 속으로 끌려 들어가서 길을 잃은 채 방황하다 끝나곤 했는데, 모든 건 그의 치밀한 계획하에 이뤄졌다.

 전남편이 아이에게 처음 손찌검을 했던 날, 나는 울다 지쳐 잠든 아이를 조심히 방에 눕혀두고 거실로 나가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숨기지도 않고 자신이 아이를 때린 과정을 소상히 설명해 주는 게 아니겠는가! 설명을 다 들은 나는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승오 얼굴이 저렇게 된 게, 오빠가 애를 때려서라는 거야?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아?"

 "여보야. 잠시만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아니, 하... 뭔데 말해봐."

 "나는 어릴 때 되게 가난한 동네에서 살았어.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착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더 못되고 질 나쁜 경우가 훨씬 많아, 여보는 알고 있어?"

 "......."

 "그래서 나는 결심했지, 집이 가난하다고 마음까지 가난해지지는 말자... 그래서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살았어. 지금도 그건 나한테 무척 중요한 문제야. 여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전남편은 대화할 때 엉뚱한 이야기(주로 자신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를 꺼내놓으며 집중력을 흐트러트렸다. 이때,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새로운 주제에 휩쓸려서, 처음 주제가 뭐였는지 잊어버리게 된다. 그는 너무도 상식적인 얘기를 하며 공감을 이끌어 낸 뒤에, 나를 지적하며 문제 삼는 식으로 논점을 흐렸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예의 바른 게 중요하지 않냐구 여보야."

 "중요하지. 중요한데... 지금 그 얘길 왜 해?"

 "그러면 부모로서 아이가 잘못된 길을 간다면 당연히 바로잡아줘야 하지 않을까? 여보는 승오가 나쁜 아이로 성장하길 바래?"

 "아니, 아니지."

 "그렇지? 여보도 승오가 예의 바르고 착한 아이로 자라길 바라잖아."

 "...맞아."

 "그런데 여보가 육아하는 걸 보면 너무 걱정이 돼."

 "왜?"

 "승오를 너무 오냐오냐해서 애가 너무 예의도 없고 버릇도 없어서."

 "......."

 "여보야, 부모로서 아이를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잘못된 길로 갈 땐 바로잡아줘야 하는 거 아닐까? 여보는 어떻게 생각해?"

 "...그래, 바로 잡아 줘야지."

 "부모의 역할이란 그런 거라고 생각해 여보야. 지나친 사랑은 독이 된다고들 하잖아."

 "아니 무슨...."

 "내가 보기에 여보는 좀 지나쳐. 승오를 위해서라면 너무 사랑만 주기보다...."

 잔뜩 열받아 상기된 내 얼굴은 보이지도 않는지, 그는 계속해서 나를 탓하는 말을 주절댔다. 30분이 지나도록, 대화의 주제는 엄마로서 나의 무능력과 아이의 버릇없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참다못한 나는 분노로 떨리는 손을 말아 쥐고 소파에 앉아 헛소리를 하는 그를 향해 일침을 날렸다.

 "그래서? 그게 승오를 때린 이유야?"

 "....그건 승오를 위한 거였어, 여보야."

 "폭력이 어떻게 아이를 위한 거니! 쟤가 지금 몇 살인지 알아?! 세상에 태어난 지 38개월밖에 안 된 애기야! 오빠는 서른둘이고! 서른둘 먹은 어른이, 38개월 난 아가야를 때렸다고! 애기가 죽을 뻔했다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오빠 헛소리를 언제까지 들어줘야 해!?"

 분명 나는 그의 폭력 사실을 콕 찝어 말했는데, 그는 당황하긴커녕 평온한 목소리로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하... 여보야, 너무 감정적으로 그러지 말고, 다시 차분하게 대화를 해 보자."

 "내가 지금 흥분 안 하게 생겼어?!"

 "지금 여보 때문에 대화가 잘 안 되잖아, 여보야. 내 말을 잘 들어봐. 자녀를 예의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오빤 지금 38개월짜리 아기 얼굴을 후드려 팼어! 키즈카페에서 더 놀고 싶다고 조금 칭얼거렸다는 그 이유로! 다른 사람이 볼까 봐 지하 주차장까지 애를 질질 끌고 가서 팼다며! CCTV 있을까 봐 주변을 살피면서 팼다며! 다른 차 블랙박스에 찍힐까 봐 구석에서 팼다며!! 니가 사람새끼야?!"

 "하... 여보 너무 흥분했다, 나중에 진정하면 다시 얘기하자."

 "어디 가! 애가 죽을 뻔했어! 예의!? 예의 같은 소리 하네! 아직 말도 똑바로 못하는 아가가 조금 칭얼거렸다고 구석에 끌고 가서 팬 이유가 고작 그거야!?"

 "여보가 이러니까 내가 승오를 예뻐할 수가 없는 거야."

 "아니... 왜 또 내 탓이야!?"

 "나름대로 아이를 잘 키우려고 애쓰는데, 여보는 자꾸 내 탓만 하잖아. 그래, 나도 초보니까 잘하지 못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어. 그런데 노력은 인정해주지 않고, 이렇게 화만 내면 내 기분이 어떻겠어? 입장바꿔 생각해 봐. 여보같으면 어떻겠어?"

 늘 이런 식이었다. 그는 상식적인 말을 가져와서 비상식적인 상황에 붙인다. 


 키즈카페에서 더 놀고 싶다고 칭얼거린 38개월 아이를 지하 주차장까지 차분하게 끌고 와서 카메라나 시선이 없는 구석진 곳에서 폭행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예의 없는 자녀에게 바른길을 알려주고자 애쓴 초보 아빠의 실수' 정도로 포장하려 애썼다.

 거기에 내 탓도 빼놓지 않았다. 내가 지나치게 아이를 감싼다던가, 노력하는 초보 아빠를 과하게 비난한다는 식으로 몰고 갔다. 최초의 폭력 이후 이런 식의 대화가 무척 잦아졌다. 처음에는 거세게 저항하던 나도, 가끔은 '내가 정말 착한 남편을 쥐 잡듯 잡고 있나?' 하는 자학적 생각에 빠져들게 되었다.

 돌이켜보자면 선행된 폭력과 폭언이 있어서 재발하지 않도록 조심한 것인데, 남자는 내가 자꾸 예민하게 굴어서 그가 폭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몰고 갔다.

 전남편은 대단한 언변의 소유자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시종일관 차분한 태도로 대꾸하는 모습이 정체 모를 신뢰를 키웠다.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당당하고 에너지 넘치던 내가, 조금씩 소심해지고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개념조차 몰랐던 시절이라 뭐가 뭔지도 모르고 속절없이 그에게 끌려다녔다.

 남자의 태도는 날로 과격해져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새끼 저 새끼 하며 노려보는 것은 예삿일이고, TV 보는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아이 목을 잡아 들어 올려서 피멍이 든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경고음을 거세게 보내는데, 머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여보야, 나는 애 목을 잡은 적이 없어. 잘못 본 거 아니야?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그는 코앞에서 목격한 폭력조차 차분하게 부인했다. 내가 잘못 봤나 싶을 정도로 여상한 태도였다.

 "어른들 TV 보는 데 방해하면 안 된다는 걸 부모로서 가르쳐주려고 옆으로 살짝 밀친 것뿐이야. 난 목을 잡은 적이 없어. 그러게 처음부터 저 새끼가 이쪽으로 못 오게 막지 그랬어. 안 그래, 여보야?"

 그놈의 '여보' 소리도 강박적으로 빼놓지 않고 하는 그였다. 목을 부여잡고 대성통곡하며 부들부들 떠는 아이를 안아서 달래는데도 그의 주둥아리는 쉬지 않고 나불댔다.

 "여보가 너무 오냐오냐하니까 별거 아닌데도 저렇게 시끄럽게 울잖아. 어? 야! 너는 좋겠네, 너네 엄마가 맨날 안아줘서, 응? 저 새끼 저거 정신교육을 한번 제대로 해야 하는데, 그치 여보야."

 그때 마주쳤던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곱게 돌아버린 눈동자에는 안광이 형형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아니라는 게 뭔지 나는 잘 안다. 그는 늘 그런 얼굴로 나를, 내 아이를 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위협적으로 목소리를 키웠다가 또 순식간에 다정한 가면을 뒤집어썼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판단력은 나날이 흐려져갔다.

 그는 차분한 얼굴로 생활비를 끊겠다고 협박하거나, 우는 아이를 달래주지 못하게 막았다. '너만 잘하면 된다, 모든 게 너의 문제다'는 말을 아침저녁으로 했다. 동시에 그는 여전히 칼퇴근 후 저녁 식사를 만들어주었고, 청소, 설거지를 미루지 않았다. 내가 나서려고 하면 "여보는 좀 쉬어"라며 미소 짓다가 "저 xx 새끼가 또 우유 쏟았네"라며 베일 듯 차가운 눈으로 아이를 노려보았다.

 설상가상으로 친정엄마도 거세게 이혼을 반대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전남편이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이상한 친구들과 어울리더니 갑자기 이혼 구실을 찾는다며 고민 상담을 했단다. 친구들과 만나지 못하도록 방해하면서, 가족들에게까지 손을 뻗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고립되어갔다.

 최초의 폭력 이후 이혼 결정까지 6개월이 걸린 것은 이런 이유다. 웃으며 다정히 대하는 남편에게 기대했다가, 곧이어 날아오는 욕설과 폭력에 실망하기를 자그마치 여섯 달이나 반복한것이다. 모든 걸 끝내야겠다고 결심한 후엔 철저하게 숨겨가며 이혼 증거를 모았다. 그는 나에게 집착하며 격렬하게 이혼을 반대하고 있었으므로 몰래 그 집을 나가면 끝까지 쫓아와 나와 아이를 해칠 것만 같았다. 차분한 태도로 날 죽일지 모른다는 망상에 시달려 정신과 약이 없이는 잠들지도 못했다. 남자가 나에게 질리도록, 그러나 때리고 싶지는 않도록 아슬아슬하게 노력한 끝에, 마침내 안전 이혼에 성공했다.

 이혼 초엔 그가 쫓아와 무슨 짓을 벌일까 벌벌 떨었고, 실제로 그가 내 거처에 와서 큰소리가 난 적도 있었다. 나는 몇 번의 이사를 감행했고, 다행히 큰 일 없이 아이는 쑥쑥 자랐다. 이후로는 무슨 일이 닥쳐도 그다지 큰 감흥이 일지 않았다. 뭐가 되었든 죽을지 몰라 벌벌 떨던 그 6개월보다는 덜 힘들기 때문이다.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의 삶이 퍽 만족스럽다. 선택지가 하나뿐이라 고른 것 치고 이만하면 꽤 해피 엔딩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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