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과 센스를 넘어, 데이터라는 가능성
고등학교는 이과를 졸업했고, 대학에서는 사회과학을 전공했다.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경로였다. 내가 생각하던 디자이너란, 감과 센스로 무언가를 멋지고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그런 나에게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게 되었다. 아주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감과 센스라는 영역을 직접 배워보고 싶었고, 그런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넓혀보고 싶다는 생각 정도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디자인 대학원은 내가 데이터를 처음으로 ‘믿게 된’ 출발점이 되었다.
사람의 시선을 추적하는 기술이 있다. 아이트래킹(Eye Tracking)이라 불리는 이 기술은, 전용 안경이나 특수 카메라를 통해 사용자가 화면의 어느 지점을 얼마나 오래 바라보는지를 기록한다.
석사 진학 당시 만난 지도 교수님은 학부부터 디자인을 전공했고,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마케터로 일한 경험도 있었다. 다양한 기업에서 광고와 콘텐츠 작업을 해왔을 분이었지만, 대학원에서 교수님이 집중하고 있던 연구 주제는 아이트래킹이었다.
교수님이 이 연구를 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디자인은 주관적이라고 말하지만, 시선과 같은 데이터를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면, 왜 이 디자인이 필요한지 설명하는 일은 훨씬 쉬워진다.”
감과 센스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해 왔던 디자인조차 데이터로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다니. 대학원에 진학하며 내가 처음 느낀 데이터에 대한 인상은, 무엇이든 가능하게 해줄 것 같은 도구라는 것이었다.
대학원에서의 첫 학기는 강렬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곧 현업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 학기가 끝날 즈음, 나는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회사에서 서비스하던 애플리케이션과 웹사이트에는 데이터가 가득했다. 사용자의 접속 이력, 어떤 화면을 보았는지, 스크롤을 얼마나 내렸는지, 어디에서 머물렀고 어떤 버튼을 눌렀는지.
대학원에서 접했던 시선 데이터가 흥미로웠다면, 산업 현장에서 만난 데이터는 또 다른 종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용자는 얼마나 자주 로그인할까?
어떤 성별과 연령대가 많을까?
어느 지역에서 주로 접속할까?
데이터를 조회하고 분석할 수 있는 나의 역할은, 내가 궁금한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권리이자 즐거움처럼 느껴졌다.
회사에서는 내가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그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디자인을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비교적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영역인 '데이터 시각화와 대시보드 개발'에 특히 집중하기 시작했다.
라인 차트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매출과 사용자 수를 보여주고, 지표들이 한 화면에 정리된 대시보드를 만들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우와.”
그 반응이 좋았다. 나는 내가 느꼈던 데이터의 놀라움과 즐거움, 가능성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이 나의 역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데이터가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