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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배언니 Feb 20. 2024

스페인 여행기- 그라나다 (5)

역시 알함브라궁전이다

놀라움 그 자체인 메스키타의 코르도바를 뒤로 하고 그라나다로 출발.


이번 여행을 기획한 남편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알함브라궁전, 특히 나사리 궁전을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라나다 일정을 넉넉히 잡았다. 무려 3박 일정이다. 남들은 1박으로도 끝나던데.


알함브라 궁전은 당연히 미리 예약하는 것이 필수이다. 특히 나사리궁전은 시간까지 예약해야 한다. 나머지 부분들인 알카사바 (군사요새), 헤네랄리페 정원, 카를로스 5세 궁전(현재는 박물관)은 시간예약 없이 관람할 수 있다.

오전 일찍 알함브라로 출발해 하루종일 관람하고 무려 오후 5시 넘어 귀가했다.


이슬람왕조의  마지막 왕이 이사벨여왕에게 쫓겨나며 아름다운 성을 파괴하지 말 것을 요청하며 눈물로 열쇠를 건넸다는 나사리 궁전. 이것을 묘사한 그림은 유명하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보시기를.


어떤 자료에선가 지금의 나사리 궁전은 당시의 5%밖에는 보전되지 않았다는 설명이 있다.

에고! 5%가 이 정도라니! 나사리 궁전의 벽과 천장을 이루고 있는 대리석 양각과 무늬들에 입이 떡 벌어진다. 유럽 왕가의 궁전들과는 또 다른 화려함이다. 아라베스크 문양이 종유석처럼 겹쳐지는 장식은 비록 화려한 청금색이 벗겨졌지만 가히 몽환적이다.


가톨릭국가의 궁전과 성당이 온갖 입체적인 조각과 그림을 그려 성경 이야기를 가득 채우는 화려함의 극치라면 아랍의 그것은 다르다. 사람과 동물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을 우상숭배라 여기고 금지한 이슬람종교는 대신 같은 패턴의 정교한 조각과 문양을 반복하고 중간정도에 코란을 적어 넣은 것이다.

오히려 단순함의 반복이  화려의 극치를 표현할 수도 있음을 본다. 일생에 한번은 볼 만한 곳이다.


거의 파괴된 이슬람왕조의 군인들 숙소. 병영, 무기창고 등의 지역인 알 카사바를  둘러보고 16세기 가톨릭 왕권 이후 세워진 궁전, 그리고 짬뽕이 된 정원등을 둘러보았다. 후에 자료를 보니 이 건축물 역시 고대로마 시대 고지대에 세워진 군사목적의 요새를 토대로 무어인이 왕궁으로 세운 것이다. 이후 1492년 이슬람이 완전히 이베리아를 떠날 때 마지막으로 쫓겨난 왕조가 나사리다. 이곳을 점령한 가톨릭 세력은 이슬람 잔재를 없애고 기독교 건축물을 붙이고 덧대면서 원형이 크게 손상되었고, 이후 방치와 파괴,지진피해가 거듭되었다. 그러다가 이곳에 부임한 미국인 외교관 워싱턴 어빙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어 보수공사가 시작되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것이 대략적인 설명이다. 이슬람 왕조가 남긴 잔재로  그라나다가 먹고 산다.


알함브라 궁전을 건너편에서 조망할 수 있는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해질녘 궁전의 불빛이 켜지는 것을 보며 와인 한잔 한 것이 최고의 기억 중 하나이다.


이슬람 거주지였던 알바이신 지역의 꼭대기에 있어 그라나다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산 크리스토발 전망대. 이곳을 걸어 올라가면서 쓸데없는  상념이 스친다.  쫒겨나간 이슬람 왕조를 뒤따라 나선 것은 역시 귀족층, 가진 자들이었겟지. 지켜야 될 재산이 있으니 싸들고 나갔을 것이고.  그나마 가진 것이 없이 생계를 이어가던 평민 중 다수가 남을 수 밖에 없었을테고. 왜냐하면 여기서나 저기서나 생활은 큰 차이 없으니까.  이들이 계속 이 땅에 살면서 때론 카톨릭인과 섞이기도 했겠지만 결국 언덕지구로 밀려나고 사회의 밑바닥층을 이루며 하급의 일로 생활하고 있지 않을까?  예상대로 거리의 곳곳에서 도로 수리하는, 청소차를 끄는, 식당에서 음식과 주방일을 하는 대다수의 얼굴들이 아랍의 얼굴이다. 


스페인 역사에서 세종대왕 이상 추앙받는 통일을 이룬 이사벨 여왕과 남편  페르난도왕이 누워있는 왕실 예배당은 그라나다 대성당 옆에 있다.


그라나다 대성당 관람료 6유로는 아깝지 않았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배경음악까지 넣어 자세한 설명을 들려준다. 천주교 신자라면 큰 감명을 받을 것이다.


왕실예배당의 입장료도 6유로였으나 아쉽게도 한국어 가이드는 없고 이사벨과 남편 페르난도왕의 화려한 무덤석상과 그들이 사용한 용품과 입던 옷, 검과 왕관이 있다. 


8세기부터 들어와 6백 년 넘게 스페인 남부를 지배하던 무어인들을 몰아내고 스페인을 한 나라로 통일시킨 이사벨 1세는 이 나라에서 으뜸으로 추앙받는 존재다. 남편인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왕보다 중요한 위치에 서 있고 남편보다 석상도 크게 세워져 있다.


여기서 스페인의 역사에 이사벨 1세 여왕을 이해하지 못하면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의 삶을 전체적으로 공부하면 이 나라의 최고 전성기를 이해할 수 있다. 왕인 의붓오빠에게 쫓겨나 가난에 시달리며 고된 노동으로 보낸 10대. 같이 쫓겨나서 결국 미쳐버린 어머니와 병약한 동생까지 돌봐야 했던 고난의 시절. 가까스로 왕궁에 재입성했으나 살아남기 위해 정치적으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던 어려움. 그 속에서 배운 정치감각, 용기, 결단력. 그리고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한 비밀결혼. 이후의 왕위계승과 스페인왕국 통일과정 등등. 특히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키워나간 가톨릭에 대한 굳은 신앙심. 


영국 엘리자베스 1세의 고난과 영광의 역사가 떠오른다. 영화의 소재가 된 엘리자베스 1세처럼 이사벨여왕의 영화는 없으려나?  한번 뒤져봐야겠다. 


더불어 나의 또 한 번의 턱없는 추론이 고개를 든다

13세기 무렵까지 유대인과 기독교인, 가톨릭인과 이슬람이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며 무리 없이 공존하고 있었는데 이사벨여왕의 독실한 가톨릭신앙 때문에  타 종교는 박해받고 추방되고 개종을 강제받고 피의 역사를 만들고.  비록 스페인을  하나로 통일시켰지만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핍박하는 그 시대의 행태가 오늘의 뿌리 깊은 종교 증오와 고통에 일조를 하진 않았을까?  물론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영웅이기에 그들의 생각을 물을 수는 없었다.


그라나다 구시가는 의외로 소박하고 아담했다. 모든 유적지는 걸어서 다닐 수 있다. 

1월 말인데도 날씨는 아침 7도에서 한낮 17도이다. 쾌적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작년 5월 이상적인 고온으로 여행객들이 고생했다는 후기들을 읽었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이제 유럽 남부여행도 한 겨울이 여행제철인가 보다.


그라나다 마지막 날 저녁은 고대하던 플라멩코 춤을 맨 앞자리에서 관람했다. 예약 후 빨리 가서 기다리면 제일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다. 관광객 상대의 동굴공연은 30유로가 넘지만 현지인이 가는 공연은 18유로다. 스페인 남부에 흘러들어 온 집시의 애환, 슬픔과 기쁨을 표현한다는 플라멩코 춤.


플라멩코 춤의 기원도 한번 살펴보면 좋다. (결론은 정확한 기원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때론 단호하고 때론 감정을 토해내는 일그러지는 얼굴 표정과 가슴을 격하게 두드리는 동작 등에서 그들 삶의 스토리가 연상된다. 여성의 춤사위에서는 우리의 공옥진여사가 겹쳐진다.

 

순서는 이렇다. 빠르고 애절하게 연주하는 기타 연주, 스페인 언어가 아닌 알 수 없는 언어(고대 인도어 또는 아라비아어에서 발생한 집시 언어라는 스페인 사람의 설명)의 노래, 곧이어 반주와 노래에 맞춘 남녀 댄서의 춤, 그리고 남녀 각각의 솔로 춤, 다시 기타 연주

땀에 흠뻑 젖은 댄서들을 보고 갑자기 그들의 무릎건강이 걱정되었다. 

 

그라나다에서 한 것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일몰과 동시에 건너편 알함브라 궁전의 조명이 켜지는 것을 보며 와인 한잔.

알함브라 궁전을 하루종일 관광. 식사는 궁전 내 호텔인 파라도르에서 햄버거와 닭튀김 맥주-34유로


그라나다 대성당을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로 꼼꼼히 관람 후 바로 옆의 왕실가족 예배당에서 이사벨여왕과 남편 페르난도 왕, 딸의 무덤구경-12유로


걸어서 아랍거주지인 알바이신 언덕 올라 산 크리스토발 전망대에서 시가지 조망, 내려오며 아랍지구의 조잡하고 다양한 상가 음식점 구경(여기서 한국음식점도 발견)


누에바광장에서 여유 있게 차 한잔과 츄로스

츄로스의 크기는 우리나라 것의 5배가 넘고 기름에 쩔어 나온다. (우리의 꽈배기가 더 맛있다)

인근 이사벨광장에 있는 이사벨여왕과 콜럼버스의 계약 동상 구경(산타페 조약인 듯하다)


누에바 광장 근처의 플라멩코  공연관람-18유로 1시간 공연  첫 공연 오후 7시 강추! 

타파스맛집에서 맥주와 타파스 먹기

맥주는 알함브라 맥주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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