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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배언니 Mar 03. 2024

스페인 남부-
미하스, 론다, 세테닐(7)

지중해를 옆에 끼고 스페인남부 소도시 한 바퀴

미하스의 지중해 근처 콘도에서 짐을 풀고 론다와 세티넬을 다녀오기로 했다.

 

미하스에서 론도 가는 길은 1시간 30분.  아찔한 시에라 드 론도 산맥을 넘어 도착.  운전하는 남편이 낭떠러지를 달리느라 내내 긴장한다.


론도는 해발 7백 미터가 넘는 협곡 위에 세워진 마을이다. 절벽 위의 두 마을을 연결하기 위해 세워진 누에보 다리는 다리 위보다는  다리 아래에서 아찔한 절벽 위의 다리를 고개 쳐들고 바라보는 게 압권이다.

다리 아래는 헤밍웨이가 산책했다는  소로가  있다.


깊은 낭떠러지 같은 계곡으로 이고 지고 내려가 거의 90미터  높이의 다리를 세운 수고로움에 감탄보단 민초들의 노동에 한숨이 나온다.


이 다리를 건설한 건축가는 자살을 했다나? 더 이상 완벽한 다리를 만들 수 없어서 자살을 했다는 썰이 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나의 근거 없는 추측으로는 다리건설 중 한번 무너지고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는데  그 괴로움 때문에 우울증 등 마음의 병이 생긴 건 아닐까? 죽은 자만 알겠다.


론다의 중심가는 1월임에는 유럽 위쪽나라와 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론다가 유명한 것은 누에보 다리보다 투우의 역사인 듯하다.  스페인 투우의 5개 도시중 가장 큰 투우장이 누에보 다리 바로 옆에 있다.

11유로 내고 입장권과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신청했다.  18세기 후반에 지어진 론다 투우장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투우장이란다. 

근데 이 꼭대기에 웬 투우장? 이곳까지 투우경기를 보러 남쪽에서는 론다 산맥을  넘어온다고?


스페인에게 투우란 무슨 의미였을까? 처음에는 귀족 기사단의 말 탄 투우에서 시작하여 전문 투우사가 생기고 오늘과 같이 붉은 천을 휘두르며 소와 대결하는 투우로 변천되었단다.


지금도 9월에 세 번의 투우경기가 열린다는 이 곳.


4년 동안 풀만 먹고 평화롭게 자란 혈통 좋은 숫소를 데려와 어리둥절한 이 놈들을 흥분시키기 위해 먼저 투우사가 칼로 가슴을 찌른단다. 그리고 다시 세 군데를 찔러 한 번도 싸워본 경험이 없는 소가 피를 보고 슬슬 열받고,  피와 소의 씩씩거림을 본 4천 명의 사람들이 흥분의 함성을 지르고 이것이 또 소를 자극하여 뿔을 앞세워 투우사를 향해 돌진하게 만들고 그러다 지친 소를 마지막에 투우사가 심장을 찔러 숨을 끊는다는데...


죽을 때까지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주는 순하고 착한 소를 데려다 이 무슨 짓인고? 알폰소 10세인가 하는 왕은 이러 저런 사유로 투우를 한때 금지했다고 한다. 잘했다. 투우의 프로세스를 알고 나니 투우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안티투우로 바뀐다. 인간의 DNA에 새겨진 싸움본능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인간끼리의 싸움이 없을 때는 닭이나 소, 심지어는 뭐 곤충까지 붙들어 놓고 대리싸움을 즐기니 말이다. 


투우가 한창일 때는 스페인에 투우명가도 있었고,  5천 마리의 소를 상대하면서도 한 번도 다치지 않았다는 한 투우사가 영웅으로 추앙받아 투우장 입구에 동상도 세워져 있다. 뭔 짓을 했기에 한 번도 다치지 않았을까 싶다.


관람 후 인근 레스토랑에서 드디어 소꼬리찜 요리를 맛보았다. 우리나라 갈비찜과 비슷하나 좀 더 느끼하다. 

코스요리가 15.98유로. 가격이 착하다. 여기 식당은 보통 요리 하나당 13~ 25유로다. 거기에 식전 와인, 맥주에 빵, 후식까지 시키면 인당 20~35유로다. 


론다가 또 유명한 것은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 때 종군기자로 왔다가 이곳에서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를 집필했고 영화도 이곳 누에보 다리에서 찍었다는 것 때문이다. 


그가 머무른 호텔은 투우장옆의 파라도르(스페인의 옛 성을 개조한 국영 호텔) 였던 것 같다. 그가 자주 가던 카페가 있다던데 짐작만 하고 세테닐로 향했다.


론다에서 20분 거리의 세테닐은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PD아저씨가 소개했던 곳이다.


세테닐은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다. 여기가 관광지로 된 것은 집의 건축형태 때문이다.  특이한 것이  머리 위의 암벽이 있고 그것을 지붕 삼아 집들이 들어선 것이다. 지금은 관광객들로 인해 집들이 샵과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레스토랑 안쪽벽은 그래서 암벽이다.


크게 신기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암벽을 들어내지 않고 건축의 일부로 활용해 집안으로 들었다는 것이 창의적이다. 스페인을 차로 달리다 보면 대지가 우리네처럼 흙이 아니라 거친 바위로 된 것을 볼 수 있다. 고속도로도 바위덩어리의 중간을 바리깡을 밀듯이 건설된 곳이 많다. 한마디로 척박하다. 올리브나무가 척박한 곳에서 잘 자라나 보다. 기후는 연중 좋으니까.


이러다 보니 집도 돌 언덕을 깎아서 만들 수밖에 없고, 전체를 깎아 평탄화 작업을 해서 만들기보다는 한쪽 벽면과 지붕을 살리면서 집을 만들어 나간 것 같다. 자연에 적응하기 위한 궁여지책이 이렇게 관광명소가 되기도 한다.


두 군데 마을을 도니 하루가 다 갔고 다시 한 시간 반 걸려 미하스 콘도로 컴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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