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빈자리

어머니가 막아주신 모든 것들

by 강나루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한동안은 각자의 마음과 후회, 미련, 슬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생각들을 돌보느라 집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남편이나 나, 딸아이 셋 모두 만들어진 평화를 깨지 않으려 조심하고 또 배려하며 서로의 마음을 살펴주었고 각자가 온전히 어머님을 보내드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몸이 아프고 슬프다 해도 어머니를 여읜 남편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가능하면 함께 새벽 예배도 드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같이 기도하고 찬양을 듣고 말씀을 보며 남편을 위로하려 애썼다.


그리고 시아버지가 원하시는 49재 준비도 고 있던 참에 시아버지로부터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나다. 아버지. 너희는 도대체 돈 얘기는 언제 와서 하려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 다물고 그냥 가만히 있는 거냐? 내가 말 안 하면 그 돈 니들이 다 꿀꺽하려고 그러냐! 당장 저녁에 돈이랑 영수증 가지고 와!!!"

"돈이요? 무슨 돈이요? 무슨 돈을 저희가 꿀꺽하는데요? 아버님. 말씀을 앞뒤 없이 다 자르고 저한테 화부터 내지 마시고 알아듣게 말씀해 주세요."

"무슨 돈은 무슨 돈이겠어! 장례 부조금 말이야. 그거 어째 한 푼도 안 내놓고 다 가져가고 안 가져오냐고. 너희 엄마 놓고 장사했냐?"

"아버님.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영수증 정리한 거 아범이 가지고 있으니까 저녁에 가지고 갈게요. 그리고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아범한테 직접 전화하시지 저한테 왜 이러세요? 어쨌든 아범 오면 바로 갈게요."

전화 통화를 하면서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장례식 내내 부조금 접수받을 사람도 없어(시가 쪽엔 아버님 친척들이 아주 많고 그 친척들의 아들들도 많아 남편의 사촌 형제들이 많았어요. 1년에 적어도 2번의 명절 차례 3번 이상의 기제사까지 해서 못해도 5번의 큰제사가 있어서 별 다른-출산, 장례 같은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시가 쪽 친척 수십 명이 큰댁에 모여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가 몸이 아파지기 전까진 매번 음식 장만을 도우러 갔었고요. 그 많은 사촌 중에 누구 한 사람도 장례를 돕겠다고 먼저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상황이 어렵게 된 것을 보고 나중에 접수만 받아 주었죠.) 친정 여동생이 휴가를 3일 내어 장지까지 따라와 주고 형부를 도와 모든 일을 해결해 주었는데 그것이 눈엣 가시였나 보다.

안 도와줘도 지랄 도와줘도 지랄이다.


장례를 겪어 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알게 되는 일이지만 손님이 적게 오시면 오시는 대로 많이 오시면 오시는 대로 필요한 만큼의 금액 정도가 채워지는 게 부조금과 장례 대금의 결산과정이고 결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때 그나마 조금 남았던 금액은 6개월간의 어머님 병원비에 조금 충당했지만 그건 한참 모자란 적은 금액에 지나지 않아 우리가 감당해야 했던 병원비는 훗날까지 갚아야 했었다.


신혼 초가 아니고선 아버님과 직접적으로 부딪힐만한 일이 없어 불편한 마음을 내내 갖고 있었어도 큰 트러블 없이 지나갈 수 있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어머니의 빈자리가 크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아버님의 전화 내용을 그대로 전하고 남편과 함께 시댁으로 당장 달려갔다.

방명록에 아버님 친구분들이 오신 곳을 따로 표기해 복사를 하고 들어온 금액과 영수증들을 챙겨 아버님과 남편이 마주 앉았다.

아버님은 남편을 보자마자 큰 소리를 내시기 시작했다.

"그 돈이 엄마 죽고 장례 치르면서 다들 엄마 잘 보내라고, 장례 잘 치르라고 가져온 돈이고 다 내가 갚아야 하는 돈이지 네가 처가 식구 내세워서 돈통 차고앉아서 그 돈 빼 돌리면 나는 어쩌라는 거냐?"

뒤에서 듣고 있던 내가 기가 차고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계셨다.

나도 당장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뭐라고 하는지 우선 지켜보려고 한 발 물러서 있었다.

"아버지. 내가 지니 에미랑 같이 왔지만 여기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어요. 아버지 도대체 왜 그러세요? 그 영수증 보세요. 아버지 평생 장사하셔서 벌은 돈 엄마 죽는다고 날 받아 놨는데도 엄마 아픈 내내 병원비 낼 생각도 안 하시고, 미국으로 도망간 큰아들 놈은 어쩔 수 없다 하고, 월급쟁이인 나한테만 몇천만 원 드는 병원비 다 감당하게 하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못한다 했어요? 다 했잖아요. 아버지 간병비라고 꼴랑 6백만 원, 형도 병원비 보태라고 6백만 원. 난 맨날 처갓집 도움받고 사는데 이제 엄마 병원비 빚까지 갚게 생겼어요.

영수증 보면 다 쓰여있어요. 장례비 내고 300만 원 남아서 그걸로 병원비 때문에 받은 대출 조금 갚고 아직도 한참 값아야 돼요. 그런데 수고했다. 고생했다. 다독여 주진 못할 망정 처가에서 다 가져갔다니!

처갓집 아니었음 저 강남에서 이만큼 살지도 못했어요.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죠.

교회에서 애써주신 거 감사하다고 떡 돌린 것도 지니 에미가 없는 돈에서 알아서 했어요.

뭘 더 어쩌라고 나한테 이래요? 네!!!"

아버지가 뭐라 하시면 잔소리 듣는 게 싫어 '알겠다'라고 대충 얘기하고 자리를 피해 버리던 남편의 보지 못한 놀라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장지 내려가서 거기 마을 어른들이 주시는 봉투는 아버지가 다 챙겨 왔잖아요. 그럼 됐지 뭘 더 어째요. 1 원 한 푼 허투루 쓴 거 없으니까 천천히 확인하세요. 그리고 엄마 돌아가신 거 마음도 다 가라앉지 않았는데 돈 얘기 이제 그만하세요. 그리고 지니 에미 많이 아프니까 하실 말씀 있으시면 앞으론 저한테 전화하시고요."

그리고는 더 이상 나눌 말도 없이 집으로 돌아와 나를 집에 내려 주고는 한강에 바람을 쐬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가 12시가 넘는 시간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알게 됐다.

그동안 우리가 시가와 큰 트러블 없이 조용하게 지낼 수 있었던 건 어머니의 노력 때문이었다는 걸.

시아버지가 필터 없이 마구 내뱉으시는 말씀에 안 그래도 어머님을 잃고 상처받아 어쩔 줄 모르던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마음에까지 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닌 병으로 누워 계시는 중에도 아버님의 문제로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고 당신이 다 안고 가시려 작정하신 듯했지만 일은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남편의 어깨가 그때만큼 처지고 슬퍼 보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내내 누워만 있느라 미뤄 놓았던 빨래를 분류하던 중에 어머니가 임종하시던 날, 학교에 있던 딸을 불러 아이를 할머니와 작별 인사를 시키고 나도 어머니에게 특별한 다짐을 했던 날, 만약 집으로 돌아왔더라면 밀린 통장 정리와 자금 이체 등을 생각하며 검은색 낮은 단화를 산 가게 옆에서 샀던 로또 복권이 재킷 주머니에서 구겨진 채로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몸살을 앓는 한 달여 동안 세탁소에 맡겨야 할 빨래는 건드리지도 못할 만큼 심신이 지쳐 있기도 했었지만 사실 그 복권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기도 했었다.

무심결에 주머니에서 꺼내 구겨서 휴지통에 버렸다가 생각해 보니 은행을 다니던 시절에도 잘 사지 않던 복권인 데다가 또 거금 만원이나 들여 사기도 한 것이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샀다는 마음에 다시 휴지통에서 꺼내 들어 구겨진 주름을 손바닥으로 애써 눌러 펴면서 생각했다.

'휴... 속상한 일 천진데... 복권이라도 한번 당첨되면 좋겠다. 엄마가 선물 한번 안 주시려나?'

혼자 속으로 생각하다 '픽'하고 콧웃음을 쳤다.

내 복에 무슨.... 복권은 식탁 한편에 올려놓고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누워 한참을 쉬고 있을 때 학교 갔던 딸이 돌아와 식탁에 놓인 복권에 대해 묻기 시작했고 난 간략하게 그 복권의 사연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그런데 채 1분도 지내지 않아 딸이 마구 소리 지르며 내 방으로 뛰어들어오는 것이었다.

"엄마! 엄마!! 이 복권 당첨됐어!!!

이거 3등 당첨됐어. 160만 원이래. 엄마 아깝다. 번호 하나만 더 맞으면 1등인데. 그래도 어쨌든 당첨됐어. 대박! 할머니가 선물 주시고 가신 거 같아. 우와. 진짜 신기해. 대박!!! 나 이거 친구들한테 얘기해도 돼?"

누워있던 나는 딸이 소리 지르며 하는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로또가 당첨됐다고? 정말?'

흥분한 딸을 진정시키고 확인해 보니 정말 복권은 3등에 당첨이 돼 있었다.


저녁에 모여 앉은 우리 세 식구는 비록 그 복권이 어머니가 당첨되게 해 주신 게 아닐지라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은 우리에게 잠시 잠깐의 위로를 주는 이벤트가 된 것에 감사했다. 끝까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감사와 사랑으로 기억할 수 있게 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기로 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항상 당뇨와 고혈압으로 식이 조절하시느라 애쓰시던 어머니가 입원기간 동안 간간히 찾으시던 치킨을 주문해 먹으며 다시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 농협에서 받은 당첨금 131만 원은 우리를 도와주시느라 애쓰신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남은 금액은 몇 달 치의 관리비로 요긴하게 쓰였다.


그리고 시아버지가 요구하셨던 어머니의 49재만 무사히 치르면 더 이상 마음 아플 일은 없을 거라 믿으며 남은 몇 주를 경건한 마음으로 보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그러길 바랐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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