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졸한 복수
무엇 때문에 시아버지가 어머니의 49재를 굳이 밀어붙이셨는지 당일까지도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시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셨든 그날이 시아버지의 계산적인 행동이 깔린 의도적인 날이었다는 것은 그날이 지난 후엔 확신할 수 있었다.
49재 2~3일 전부터 시아버지의 재촉이 심했다.
우리가 기독교라 하더라도 처음부터 시아버지 뜻에 맞춰 드리려 작정했었기 때문에 간단한 음식 준비는 물론이고 어머니를 모셔놓은 납골당으로 가기로 한 시간과 장소까지 미리 정해놓은 상태인데도 여러 번 전화를 하셔서는 이것저것 재차 확인하고 당부를 하셨다. 몇 번을 당부하시고 확인을 하시던, 시아버지 맘에 차실 때까지 설명을 드렸고 사실 그때 아버님에게 다른 여자가 있건 없건 간에 어머니와 오랜 세월 함께 사신 정이 있을 실 테니 아버님 마음도 많이 허전하고 힘드실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살아온 방식이나 자신의 가치관대로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는 어리석은 경우를 경험하기 마련이다.
그때의 내가 딱 그랬다.
세상엔 상식을 벗어나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그날 다시 한번 뼛속 깊이 아로새겼다.
그때까지 아버님이 살고 계셨던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을 팔고, 막내 이모님네와 매각한 금액을 나누시곤 이모님네는 구리에 당첨된 아파트로 이주를 하신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하지만 아버님께선 어떻게 하신다는 얘기를 따로 전하지 않으셨기에 그 얘기만 듣고 어머님의 유품을 정리해야 하는 일도 남아 있었기 때문에 49재가 아니었어도 시아버지와의 만남이 꼭 필요하긴 했었다.
그렇다고 남편이나 나나 시아버지를 크게 걱정한 건 아니었다. 어머님의 병원비를 아끼면서 까지 당신의 노후자금을 챙기려고 하셨던 이유도 있었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오래전부터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남편도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길을 나선 덕분에 시가 쪽 에서 조성해 놓은 납골당에 도착하는 것은 늦지 않게 당도할 수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양반이냐, 상놈이냐 따지는 것이 우습기만 하지만 시가 쪽은 옛날부터 장사를 주로 하던 중인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다들 장사에 수완이 좋으셔서 큰돈을 버신 분들이 많았고 종가에서 보유하던 별 볼 일 없던 땅이 도로가 뚫리게 되는 기회가 생겨 종친회에 큰 목돈이 생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돈이 커다란 납골당이 되었죠.
아버님의 윗대부터 우리 밑으로 한참 밑까지 총 500기가 여유 있게 들어갈 수 있는 큰 납골당을 대리석 건물로 지어 놓았어요.
그리고 그 옆엔 제사를 지낼 수 있는 큰 사당까지 지어 놓았고요.
어머니께서 너무 경황없이 갑자기 아프셔서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찾아가 보곤 그 규모에 깜짝 놀란 적이 있었고 마침 다행히도 그 무렵 완공이 되어 어머니를 모실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가깝고 좋은 곳에 모실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장례를 다 치르고 난 후 저는 남편과 딸을 불러 앉혀 놓은 후에 얘기했습니다.
"지니야. 나중에 아빠가 돌아가시면 거기에 모시고 엄마가 죽으면 절대 거기에 넣지 말아 줘. 평생 아빠한테 해줄 수 있는 모든 건 다 해주고 있으니까 죽은 다음에라도 옆에 붙어 있기 싫고 어차피 육신은 상관없이 엄만 하나님 만나러 갈 테지만 살아있는 동안 이 몸에 갇혀 하루도 편한 날 없이 아팠으니까 죽어서 어디든 가둬 놓지도 담아 놓지도 마. 뿌려 주면 고맙고 안된다면 차라리 변기 물에 쓸려 내려 보내줘. 알겠지?!!"
딸과 남편은 질색을 했지만 제가 CRPS가 되고 걷는 것까지 불편하게 된 후에는 딸이 약속을 해 주었어요.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요.
"엄마는 천국으로 가겠지만 혹시라도 하나님이 다시 태어나고 싶냐 물으시면 바람이 되고 싶다고 말해"라고요.
납골당에 도착해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음식을 차려놓고 준비한 간단한 예배를 드리는 동안 아버님은 절을 하시는 것도, 예배를 함께 드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납골당 주변을 어슬렁 거리시며 둘러보고 계셨다.
예배를 마치고 준비해 간 음식을 조금씩 나눠먹은 후에 우리는 우리가 준비해 갔던 어머니와 같이 찍은 사진을 담은 액자와 작은 하얀색 십자가, 그리고 밤새 셋이서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었던 얘기를 적은 카드를 유골함 옆에 예쁘게 장식을 해서 휑하니 유골함만 놓여 있어 쓸쓸하게 보였던 어머니의 납골함을 장식했다.
그리고 곧 다시 찾아오겠노라고 눈물로 인사를 드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돌아오던 길에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하고 근방에서 맛있다는 갈비탕 집을 찾아들어갔다.
며칠 전부터 준비 같지도 않은 준비를 하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해 힘들었던 나는 따뜻한 국물을 한 모금 떠 마신 후 조심스레 시아버지께 물었다.
"아버님, 이모님한테 얘기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는데 이사할 곳은 정하셨어요?
어디로 이사하기로 하셨어요? 지금 사시는 곳에서 너무 멀지 않아야 제가 가끔 들여다볼 텐데... 그리고 힘드시겠지만 이제 천천히 어머니 유품도 정리해야 될 거 같아요. 제가 아범하고 같이 가서 막내 이모님 도움받아서 나눠놓고 아버님 드릴 거랑 태울 거랑 구분해서 정리할게요.
그래야 이사할 때 고생을 덜 하시기도 할 거고요."
내 말을 들은 아버님은 정신없이 드시던 갈비탕을 그릇째 들어 국물을 들이켜시곤 내게 말을 던지셨다.
"일산에서 조금 더 들어간 데에다 지금 너네 사는 평수 만한 걸로 집 샀다. 그걸로 역모기지 받아서 아껴 쓰면 죽을 때까지 쓰겠지 뭐. 그리고 엄마 유품 신경 쓸 거 없다. 내가 다 정리해서 줄 거 주고 팔 거 팔고 싹 다 비웠다. 너넨 일절 신경 쓸 거 없어.
그냥 나 이사한 데로 한 달에 한 번씩 쌀 20kg짜리 경기미로 하나씩만 보내라.
반찬도 많이 필요 없어. 요즘 반찬 가게 맛있으니까 사 먹으면 돼. 국이나 고기 같은 거 한 번씩 무쳐 보내라."
어머니 생각에 슬픔을 떨치지 못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고 있던 남편의 머리가 확 추켜올려지더니 눈을 똥그랗게 뜨고 화들짝 놀라 큰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뭐라고요? 아버지!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엄마 유품을 다 정리했다고요!!!
아니, 세상에.... 엄마 사진은요? 엄마 물건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는데 왜 아무 말씀도 안 하고 혼자 그렇게 하셨어요? 자식은 돈 필요할 때만 있으면 돼요?
지니가 할머니 반지라도 하나 목걸이로 만들어서 걸고 싶다고 하기도 했고... 아니 어째 사진도 한 장 안 남기시고 그렇게 마음대로 다 없애버리시면 어떻게 해요!
아버지한텐 그냥 아픈 마누라였을지 모르지만 저한텐 엄만데..."
순식간에 식사 자리의 분위기는 살얼음 판이되고 말아 버렸다.
"아니, 이사 날짜가 촉박하기도 하고... 그리고 내 맘대로 못할게 뭐가 있냐..."
아버님이 다 말을 마치시기도 전에 아버님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기를 잠시 내려다보시던 시아버지께서 그냥 전화를 끊으시고 다시 말씀을 이으시려고 하시는데 연이어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님이 마지못해 전화를 받는 듯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통화볼륨을 어찌나 크게 해 놓았는지 상대방의 목소리가 전화기 바깥으로 쩌렁쩌렁 울렸다.
"아유~지금 어디세요? 오전에 다 끝내고 오신다면서요? 지금 2시가 다 돼가는데~~"
여자 목소리였다.
순간 아버님도 우리도 모두 다 전화기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어 잠시 당황하고 있었는데 아버님께서 천천히 일어 나시며
"나 통화 좀 하고 올 테니 밥 먹고 있어라."
라고 말씀하시고 식당 바깥으로 걸어 나가셨다.
고개를 살짝 들어 남편을 쳐다보니 남편의 얼굴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
옆에는 딸도 앉아 있었고 여기서 더 큰소리를 내봤자 변하는 사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편의 마음만 더 아플 거란 걸 나도, 남편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남편에게 얘기했다.
"여보, 나중에 집에 가서 얘기하자. 막내 이모한테도 전화해 보고.
오늘은 그냥 마무리 잘하고 가고. 큰소리 내봐야 우리 맘만 아프고 달라질 사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몰랐던 일도 아니잖아. 일부러 그러시는 것 같아. 진정하고 밥 마저 먹어. 지니도 있잖아.
우선 집에 가서 나하고 얘기하고 나서 다시 아버지랑 얘기해. 화내지 마.
마무리 잘해야지. 어머니 속상하시겠다. 알았지?"
내 속에서도 천불이 났지만 우선은 남편을 진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같은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네 통의 전화가 시아버지에게 더 걸려왔다.
피할 곳이 없는 차 안이라 통화내용을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하는 괴로움에 이른 봄 날씨에도 차 안의 공기는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통화 내용도 거의 엇비슷한 빨리 돌아오라는? 듯한 내용의 전화였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은 막내 이모님께 전화를 드렸고 여러 가지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됐다.
어머니가 병원에 계시는 동안 그 여자가 집으로 이미 들어와 생활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어머니가 그것을 알고 계셨다는 것, 이사 가는 집에도 그 여자와 함께 동거하기로 했다는 것, 아버님 형제들에겐 벌써 인사를 하고 다녔다는 것, 어머니의 유품들은 진작에 정리되고 고가의 옷들과 패물, 귀금속, 장신구들은 이미 그 여자에게 건너갔다는 것!.... 그 외에 여러 가지 많은 이야기들, 이야기들, 이야기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암이 간 전체를 덮다 못해 장기 구석구석까지 퍼지고 골수와 임파선을 타고 뼈까지 부러지는 끔찍한 고통에도 아프다는 소리 한 번 내시지 않고 6개월을 우리들을 위해 모든 걸 참고 당신이 다 안고 가시려 하신 어머니였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에게 상처 입힌 시아버지가 죽도록 미웠다.
장례비를 당신에게 주지 않고 병원비에 보탰다고 우리에게 어머니 사진 한 장, 어머니 손 때 묻은 물건 하나 아들, 손녀에게 남기지 못하게 한 그 심술이 미웠다.
당신에게 여자가 있음을 어머니의 49재를 통해 드러낸 그 치졸한 복수심에 치가 떨렸다.
하지만 넌지시 알리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으신 시아버지는 또 한 번 치졸하고 고약한 심보를 드러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