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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Apr 24. 2021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 '상담'

딸의 마음 들여다 보기, 우리의 상처를 꺼내 놓았다.

어머님의 투병과 시아버지와의 여러 가지 일들은 자신의 치부라 여겨 내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치더라도 막상 집안에 일이 생기면 어떤 일이던 한 발, 아니 두세 발은 뒤로 물러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아! 나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뭐라고 얘기하면 는데?'

'나 바쁜데 당신이 대신 전화해 주면 안 돼?' '그냥 여태껏 하던 대로 당신이 하면 안 돼?'

'미안해. 뭐라고 했는지 잘 못 들었어.'

'아차! 깜빡 잊어버렸네....'


조금이라도 자신이 귀찮아질 것 같은 일이 생기면 어떤 이유나 핑계를 대서라도 상황을 회피하고 모면하려고만 하는 남편의 모습은 이미 내게 신뢰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딸에게 까지 내가 느끼는 상실과 사랑 없는 무의미한 삶, 그리고 사람을 잘못 봤다는 자책을 물려주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딸아이의 양육을 핑계 삼고 친정 부모님의 도우심을 방패 삼아 내 삶이 불행한 것을 드러나지 않게 감추고 가족들의 화목함 속으로 숨어 지내며 상처를 잘 다독이며 살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친할머니의  부재를 겪는 것과 동시에 사춘기를 겪게 된 딸은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혼란 속에서 자신의 불쾌함과 분노의 원천이 누구 때문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화를 내야 할 상대가 누구라는 건 확실하게 달은 듯 보였다.


딸을 어릴 때부터 양육하고 돌봐 주셨던 건 친정 쪽이었기 때문에 애착이 더 많은 쪽은 물론 외가였지만 딸을 유독이 아끼고 사랑하신 친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과정 중에 보인 할아버지, 큰아빠, 그리고 엄마를 대하는 아빠의 모습에 어릴 적부터 마음속에 쌓여 있던 여러 가지 속상한 마음들이 화산 폭발하듯이 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외줄 타기 같은 날들을 보내 던 남편과 딸 사이가 크게 벌어지는 일이 생기게 된 건 '갑상선 항진증'의 합병증인 '심장 부정맥' 시술을 앞두고 내가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였다.

다른 병들은 교회를 다니며 어느 정도 완치가 되고 안정을 찾았지만 한 번 생긴 부정맥은 쉽게 낫지 않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해에 시술을 받기로 하고 입원을 하게 됐다.


두 가지 부정맥을 앓고 있었던 내가 병원을 다니며 힘들어해도 검사를 하는 날(생활 심전도 검사가 있어서 항상 하루 이상 시간이 필요했어요.) 외에는 내가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고 사는 듯 보였던 남편도 시술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엔 좀 놀란 듯했다.

하지만 딸은 놀란 정도가 아니라 할머니를 잃은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탓에 아무리 별것 아닌 시술이라고 안심을 시켜도 쉽게 믿지 않는 눈치였.

마침 방학인 데다 걱정이 태산이었던 딸은 자신이 엄마를 간병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고 앞서서 나서는 딸 덕분에 한 발 물러선 남편은 시술 당일을 제외하곤 3박 4일의 입원 기간 동안 단 하룻밤도 딸과 교대를 해주지 않았다.


물론 남편은 매일 면회를 오긴 했지만 몸이 아파지면 냄새에 예민해지고 두통이 심한 엄마를 배려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고 병실로 들어오는 아빠에게 딸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지금 제정신이야? 엄마 아픈 거 안 보여? 할머니 아프실 땐 금연하더니 엄마 아픈 건 아프든지 말든지 상관없다는 말이야?"


소리를 질러댔고 그러면 아픈 나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야 하는 게 맞는가를 생각하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거기에 시술을 위해 목 근처를 뚫었던 부분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계속 피가 배어 나와 기존 입원 날짜보다 병원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분에  마음속을 들여다볼 깊은 얘기를 나눌 시간을 얻게 됐다.




"지니야. 어차피 내일 퇴원 못하게 됐으니까 엄마랑 얘기 좀 할까?. 아빠 오늘 회식 있어서 못 온대. 지니가 답답한 거 많지! 아빠한테도 그렇고 엄마한테도 많을 거 같아. 뭐든 말하고 싶은 거 있음 얘기해 볼래?"

"엄마! 엄만 왜 아빠랑 살아? 왜 이혼 안 했어?

엄마 아빠 안 사랑하잖아. 그리고 아빠가 엄마 사랑하지 않는 건 확실한 거 같아. 그리고 엄마가 아픈 거 다 아빠가 속 썩여서 그런 거잖아. 왜 이혼 안 했어. 이혼하면 내가 싫다고 할까 봐 참은 거야? 그러면 내가 없어지면 이혼할 거야?

나 아빠가 너무 미워. 아빠랑 이혼 안 한 엄마도 미워하고 싶어!!!"


딸의 말을 들은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한 딸은 정확한 이유만 알지 못할 뿐이었지 우리 집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딸의 말이 가슴을 헤집다 못해 찢어 놓고 있었다.

혼자서 저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쳤을 딸을 생각하니 양볼을 타고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지니야. 미안해. 엄마가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지니가 많이 힘들었을 거라는 걸 미처 헤아리지 못했네. 엄마가 정말 미안해. 그런데 이혼이 정답은 아니야. 우리 세 식구 다 같이 잘 지낼 수 있는 방법 꼭 찾을게. 미안해. 아가."

"엄마 속상하라고 한 얘기는 아니야. 아빠가 너무 애들처럼 답답하게 하잖아. 매일 술 마시고 담배도 못 끊고 골프만 치러 다니고 엄마 힘들다는데 듣는 척도 안 하고.

그냥 아빠가 꼴도 보기 싫어. 내가 나쁜 앤가 봐."

 "이리 와. 엄마가 안아 줄게. 많이 힘들었지. 정말 미안해. 엄마가 꼭 방법 찾을게. 엄마도 사과하고 아빠도 지니 마음에 상처 준거에 대해서 사과하라고 얘기할게"


아이를 안고 다독이며 생각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우리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것을.




퇴원한 후에 남편과 긴 얘기를 나눴고 우린 가족 상담을 신청했다.

우리 가족에게 변화가 있을 거라 기대했다.

우리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믿음대로 이뤄지길 바랐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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