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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May 06. 2021

딸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한 가지(상담 1)

어떤 선택이 정답인진 알 수 없었다.

남편과 나는 성숙지 못했던 남편의 결혼 초의 잘못으로 많은 시간들을 치열하게 싸우고 화해하고 또다시 미워하고 용서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딸 앞에서 구체적인 사유를 알만한 얘기를 들먹인다거나 싸우는 이유를  눈치챌만한  어떠한 단서도 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딸이 생각하기에 그저 엄마와 아빠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부부 중 하나일 것이라고만 알고 자랐었다.(적어도 상담 전까지 는 그렇게 믿고 있었어요)




다행히 우리는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우리가 원하는 조건과 마음에 맞는 상담처를 찾을 수 있었다.

가능하면 집 근처 가까운 곳으로, 하지만 혹여라도 딸의 친구들이나 지인들, 친정 가족들의 눈에 뜨이지 않을 만한 적당한 장소에 위치하고, 어느 정도 명성이나 경력이 있어 안심하고 상담을 맡길 수 있을 만한 곳을 찾느라 적잖은 시간을 보낸 끝에 두 곳을 찾을 수 있었고 두 군데를 다 방문해서 상담 선생님을 만나 본 후에 아이와 우리가 함께 상담을 받을 곳을 결정했다.(상담을 받는데 동의는 했지만 사춘기 때 아이들은 남의눈을 많이 의식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다른 사람이 몰랐으면 했던 그때 아이의 의견을 반영하느라 그랬었어요.)

무엇보다 아이가 지금 견디고 있는 스트레스 이상의 어떤 부담도 더는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최선을 다한 선택을 하려 애를 썼다.

이 상담을 위해 마음을 맞추고 서로 어긋난 마음을 다독여 가며 모든 일을 추진했던 것도 오직 나 혼자 미친 듯이 알아보고 애태우고 혹시나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고 말면 어쩔까 하는 마음에 발을 동동 거렸던 것도 오직 '나!!!' 나뿐이었다.

아이의 사춘기의 이유가 모두 남편이 원인 일수는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가 힘들어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인 남편이 상담을 동의했다는 것 만으로 의무를 다한 것 마냥 여전히 저녁의 술 약속, 그리고 평일과 주일에 골프 모임, 골프 연습을 핑계? 삼은 연이은 부재 등으로 점점 상황을 악화시켜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중재해 보려는 내 노력은 언제나 공허한 메아리가 되거나 말다툼, 심하게는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먼저 상담을 시작한 건 딸이었다.


딸이 처음부터 상담사를 전적으로 신뢰한 건 물론 아니었다. 그리고 이 상담 선생은 영리하게도 우리 모두에게 상대에게 어떤 얘기를 들었는지 다 얘기해 주지 않았다. 그 사실이 오히려 상담 선생을 신뢰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어느 정도 상담 횟수가 지난 후에야 나에게 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와 남편의 관계 개선에 대한 이야기, 공동으로 그리고 주변 가족들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들에 대해서 듣고 조언을 구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상담을 통해 내가 남편에게 받은 심한 마음의 상처가 몸의 병으로 변하게 되면서 간혹 부부간의 트러블이 생기는 모습이 보여 지기라도 하면 (아이 앞에서는 가급적이면 대화로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큰 소리를 내며 싸우는 것을 목격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혼자 생각에 '아빠가 또 아픈 엄마를 힘들게 하는구나.'라고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생각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딸이 사춘기와 동시에 할머니를 여의고 할아버지의 외도(?)를 알게 되는, 그리고 엄마까지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모습들을 아무런 준비 없이 감당하게 두진 않았을 거란 마음에 애틋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여러 번의 상담과정을 통해 상담 선생님이 내게 전해준 딸에 관한 얘기는 여러 가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들은 제가 베체트와 crps를 얻고 투병생활을 하며 정신적으로 힘든 순간들을 겪으며 많은 기억들을 잃게 됐습니다. 사실 어릴 적 기억이나 예전 일들은 또렷이 기억이 나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아이가 사춘기를 겪게 된 이후부터 지금 현재까지 기억 중에 어느 시긴가 몇 년씩 통으로 없어지거나 어느 시기는 자세한 내용이 기억이 안 나거나 가까운 시기일수록 뒤죽박죽으로 엉켜버린 기억 때문에 당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제가 다니는 신경 정신과에 문의하니 너무 심한 통증과 고통으로 힘든 때에 나 스스로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기억을 지우는 해리성 장애의 일종인 '해리성 기억상실'이라고 진단받았습니다. 한때 '해리 현상'이 있었던 것도 그런 경우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다고 했었고요. 글이 자세하지 못한 부분 이해 부탁 드립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했어도 딸은 부모의 부족한 면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고 그런 부분을 충족시켜주지 못한 내 부족함에 가슴 아팠다.

그리고 딸이 남편과 나의 잘못으로 '올바른 부부상'을 가지지 못 것이 못내 두렵고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딸에게 가장 미안한 한 가지,

남편이 잘못을 저질렀던 그 순간에도 그리고 시간이 지나 상담을 받는 그 순간에도 이혼을 했어야 했던 게 정답인지, 이혼을 안 하고 살았던 게 정답인지 나도 잘 알지 못했다.

딸의 말대로 이혼을 했더라면 사춘기에 이런 일들을 겪지 않고 살았을까?

그때마다 최선의 선택을 하려 애쓰고 살아왔지만 어떤 게 정답인지 알지 못했다.


나도 어렸고 누구에게도 의논할 곳 없었으며 짊어진 것은 너무 많은 젊고 서툰 엄마였다.

그래서 딸에게 미안했고 지금도 미안하다.


"지니야. 엄마가 네 엄마여서 미안해. 더 열심히 노력했어야 했는데. 상처 줘서 미안해...."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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