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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Apr 17. 2021

사춘기 딸과 사추기(思秋期) 남편의 격돌

딸을 지키려는 내 마음

"아!!! 어쩌라고!!! 말 시키지 마. 내가 말하기 싫다고 했잖아. 필요 없다고!!!


지니가 남편에게  마구 리를 지르고 있었다.

남편이 뭐라고 얘기하는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아빠에게 어른에게 하는 말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차갑고 독기 어린 말투로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오전의 잠깐의 외출과 저녁 준비로 녹초가 됐던 내가 두 사람만 식사자리에 남겨놓고 방으로 잠시 들어와 쉬고 있었던 게 불찰이었다.




딸아이는 중학교 1학년  입학식을 마치고 한 달이 조금 지난 후에 친할머니를 여위게 됐다. 

사실 지니이나 모든 생활 반경이 친정과 가까운 이곳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떠난 빈자리에 대한 슬픔과 사춘기로 변해가는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수시로 터지기 일보 직전의 불붙은 폭탄처럼 행동했다.

그나마 내가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우거나 눈을 돌리면 만만한 아빠에게 여지없이 성질을 폭파시켜 대고 있었다.

또 남편은 남편대로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폭풍과 평생 어머니의 등 뒤에 숨어 온갖 추태를 저지르셨던 시아버지의 민낯을 마주 대한 충격에 자신을 추스르기에도 벅차 나나 아이의 마음까지 보듬을 여력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딸은 그때 이미 한창 사춘기로 예민해질 데로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우선 아이 먼저 돌아봐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한 아이의 부모이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짧은 투병기간을 옆에서 지켜보던 딸은 어머니의 병이 점점 더 깊어질수록 아빠와 할아버지에게 냉담하게 굴었고 내가 아픈 것에 많이 힘들어했다.

어린 딸이 보기에도 시아버지의 행동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너무 많았고 그 모습에 겹쳐 엄마가 아픈 것이 아빠와의 갈등 때문이라는 생각을 굳혀 가는 듯했다.

내가 아무리 아닌 척 감추고 어떤 이유인지 얘기해 주지 않아도 함께 사는 아이는 느낄 수 있었던 가보다.




아빠에게 냉담하게 굴며 소리 질러 대는 딸을 조용히 불러 얘기를 시도했다.


"지니야. 이유를 불문하고 어디서 감히 아빠한테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거? 엄마가 네 앞에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단 한 번이라도 소리 지르고 짜증 내는 거 본 적 있어? 엄마가 보여 준 적도 가르쳐 준 적도 없는 그런 나쁜 버르장머린 어디서 배운 거야? 당장 아빠한테 가서 잘못했다고 용서 구하고 와. 그러고 나서 엄마가 네 얘기 들어줄게."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던 딸은


"정말 짜증 나고 싫지만 내가 잘못 한건 맞으니까 사과하고 올게요. 그런데 정말 하기 싫어."


하고 싶은 말이 수십 마디도 넘었지만 꾹 참고 딸에게 말했다.


"알겠어. 얼른 얘기하고 와. 엄마 기다리고 있을게"




사실 아무리 남편이 잘못이 있어도 아이가 잘못한 부분에 있어서는 항상 아빠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고 그 후에 둘 사이의 얘기를 들어본 후에 중재를 해주는 것이 맞다 여기고 항 그렇게 행동했었다. (도대체 여기서 중재를 해야 했던 게 맞는 건가요? 우리 집 같은 경우엔 딸이 너무 화가 나면 아빠하고 몇 날 며칠 얘기를 안 해서 남편이 미쳐요. 그래서 저를 들들 볶았습니다. 제발 지니 좀 풀어 달라고요. 어쩔 수 없이 중재에 나서지만 그러길래 맨날 놀러 다니지만 말고 신경 좀 쓰랬더니... 우리 딸은 2할은 친정 가족들이 8할은 제가 키웠습니다. 아빠요? 술 마시고 골프 치고, 바람도 타고. 이제 와서 후회한들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나요)


그리고 우리 세 식구만 사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가까운 곳에 오빠네, 동생네가 함께 모여 살았고 친정 부모님 댁도 가까웠다.

그래서 기 때부터 예의범절이나  공중도덕 같은 것은 유별 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심하다 싶게 가르쳤고 그건 다른 조카들도 당연한 듯 그렇게 가르치고 길러졌다.


딸이 사춘기가 되면서 생전 하지 않던 행동을 하는 모습에 나도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아이가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에 백번을 참고, 천 번을 참고... 바깥으로 돌지 않고 내게 얘기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남편은 지금 자신이 힘들다는 이유로 또 모든 것을 신경 쓰지 않기 시작했던 거였다.

오로지 자기 마음 달래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술, 아니면 골프, 아니면 친구, 모임, 주일엔 종일 교회(그나마 제일 나은 것이었어요. 눈앞에 보이기는 하니까요. 그리고 뭘 하고 있는지 원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얘기해 주는 사람이 있었어요)에 있어 얼굴 한번 마주 대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딸에겐 이런 아빠의 모습들이 불성실하게 비쳤던 것이다.

게다가 남편과 내가 아무리 조심하고 감춘다 해도 삼촌, 이모네 와는 달리 다정해 보이지 않는 부모의 모습에 딸은 아픈 나를 불쌍하고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를 보며 슬퍼했다.

하지만 남편과 나의 갈등의 원인을 알지 못했던 딸은 어느 때는 내게 철없는 아빠를 더 참아주기를 부탁하기도 했었다.

'사춘기'가 되어 자신의 마음만 돌보기에도 벅차야 할 나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딸에게 압박을 주고 있었다.


남편이 아무리

'아니야!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라고 말해도 이미 오래전에 다친 마음에 돌아서버린 나를 대하는 남편에 행동에 애정이 없다는 건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도 알 정도였다.(남편이 술을 마시고 온 날 제 아픈 곳을 만지려고 하면 콩이가 으르렁 거립니다^^.

그리고 제가 두통 때문에 냄새에 무척 예민한데 아빠가 술 마시고 오는 날은 제 근처에도 못 오게 하고요. 강아지 아들이 효잡니다♡.)

거기에 시어머니가 아프시기 전부터 엄마 때문에 은연중에 아빠에게 생겼던 불만과 미움이 어머님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아빠를 포함함 시가 남자들은 다 '가해자' 엄마는 '피해자'라는 인식이 박혀 버리게 되어 사춘기 때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와 겹쳐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제 평생 가장 가슴 아프고 딸에게 미안한 일이 올바른 부부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에요. 부모로서는 조금 부족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 내가 받았으면 했던 사랑을 모두 주었다고 확신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서 수도 없이 얘기를 나눴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부모로서 보여줄 수 있는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게 가장 미안하고 가슴 아플 뿐이고 그걸 되돌리기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할 용의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이스방이 비 협조적으로 나와서 저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었지만 지금은 잠시 봐주고 있는 단계였습니다. 맨날 봐주다 볼일 다 보고 있는 거죠....


그렇게 아빠와 줄타기를 하듯 함께 모여 사는 가족들도 다들 딸의 사춘기에 마음을 졸이며 더 큰 일(예를 들자면 머리를 탈색해 다시 빨갛고 노랗게 들이고 얼굴엔 파란색 미러 선글라스 쓰고 초록색 뒷 안장 없는 오돌헬멧 없이 타고

 바라~~ )

이 생기지 않은 것 만도 다행이라며 여기서 다독, 저기서 다독, 하던 와중에 예상치 못한 일로

남편과 딸이 간신히 유지하던 습자지 같은 평화가 깨지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장 부정맥 시술

이 시술로 인해 남편과 딸의 갈등이 극에 달 폭발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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