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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Sep 04. 2021

치료와 중독의 경계

여러 가지 병을 앓고 많은 약과 독한 약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

딸을 낳고 복직한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남편이 내 근간을 흔드는 큰 상처를 주는 사건이 생긴 후 난 한동안 술에 의존했던 시기가 있었다.


누구보다 사랑한다 믿었던 남편의 배신에 깊은 상처를 받았지만 어디 한 군데, 어느 한 사람에게도 털어놓을 곳 없던 나는 일하며 아이를 돌봐야 하는 낮에는 초인적인 의지로 이를 악물며 괜찮은 듯 가면을 쓰고 살았고  딸을 씻기고 재운 후 집안일을 마친 늦은 밤이 되면 낮에 썼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하루의 피로와 마음의 상처를 부둥켜안고 매일 새벽 시간까지 주(酒)종을 불문하고 두병씩은 마셔야 쪽잠이라도 이룰 수 있었다.

알코올에 의존증이 생겼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2년 여가 지나갈 무렵이었다. 술을 마셔야만 잠이 들 수 있었고 마시는 술의 양이 늘기 시작하며 그나마 조금씩 먹던 식사가 점점 줄어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직장 일에도 아이를 돌보는 일에도 지장을 주기 시작했을 때였다.

비록 남편과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내가 지키고자 결심한 가정이었다.

이를 악물어야 했다. 지켜야 할 가정이고 아이이고 내 자신이었다.

2년이 넘도록 하루도 빠지지 않게 마시던 술을 단번에 끊어 버렸다.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던 술병을 다 내다 버렸다. 베란다에 박스째 쌓여 있던 술을 경비실에 내려다 놓으며

"아저씨, 필요하시면 파시던지 그냥 알아서 처분하시고 담뱃값에 보태 쓰세요."


그리곤 두 번 다시 혼술은 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할 수 없게 지만.




내게 찾아온 두 번째 중독은 담배였다.


처음 담배를 입에 댄 건? 대학생 때 학교 앞 카페에서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여서 지금껏 싸움 한번 안 하고 의지가지 하며 지내는 절친이 학교 앞으로 놀러 와 함께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가게 내부를 증축한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홀로 앉아 있던 여학생이 담배를 정말 맛있게? 피우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 모습을 본 친구와 난 호기심이 발동해 의기투합하여 담배를 피워 보기로 했고 처음 담배를 피워보는 우리는 담배에 불을 붙인 후 한 모금을 빨아드리는 순간 목구멍을 활짝 열었고...! 카페 천정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기침과 웃음을 쏟아 냈었다. 담배를 흡입할 때 입과 목구멍을 활짝 열면 사레가 들린다는 것을 몰랐던 우리는 호기심 한 번에 호된 대가를 치렀었다.


그렇게 25년 가까이 잊고 살던 담배를 다시 찾는 계기가 있었다.

CRPS(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 진단받고 통증을 겪기 시작하고부터 였다.

그전에도 여러 가지 많은 병을 앓았었지만 생전 겪어 보지 못한 지독한 통증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 과연 내가 버티고 살아 낼 수는 있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 시기였었다.

지금은 호흡이 가빠지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으며 심장 박동수가 급격히 빨라진다던가 아니면 오히려 아주 느려지며 맥박수가 떨어지고 혈압이 급속으로 떨어지고 어지러움을 느끼고 두통이 생기고 눈이 안 보인다고 느끼면 '아! 내가 불안하다고 느끼는구나 '라고 알아채고 바로 불안장애에 처방된 자낙스를 삼킬 수 있다.

하지만 그땐 모든 게 불확실하던 때였다.

베체트와 두세 가지 병 외에는 다른 병들도 발병하기 전이었고 CRPS 자체에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매뉴얼도 없이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었다. 모든 것이 두렵고 답답했었다.

집에 만 갇혀 난을 받아들이는 5단계 중에서 이미 부정 단계를 거쳐 분노의 단계에 접어들어 있을 때였다. 대상이 없는 분노를 조절할 수 없어 미칠 것 같은 때였다.


*고난을 받아들이는 5단계
부정-분노-협상-우울-순응

심한 통증이 하루 동안 몇 번을 왔다 갔는지도 모르겠던 저녁 식구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얘기를 꺼냈다.


"싫겠지만 나 담배 좀 사다 줘. 숨이 안 쉬어져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술은 다시 손대면 이번엔 절대 못 끊을 텐데 마약 진통제랑 술을 같이 먹을 순 없잖아. 이것도 못하게 하면 나 못살아. 제정신 아니니까 나 원하는 대로 해줘. 적당히 스트레스 풀다 그만하고 싶을 때 끊을 거야."


내 말을 듣고 있던 남편과 딸은 의외로 아무 말도 없이 내 부탁을 들어줬다. 대신 의존성이 낮다고 말하는(확실친 않지만) 전자 담배를 사다줬다.

매일 통증과 전쟁을 치르는 나를 보기도 했거니와 작정하면 뭐든 맘먹은 대로 끊어내는 날 믿은 이유도 있었고 우선은 숨이라도 쉬게 해 줘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고 나중에 말을 해주었다.


그렇게 뜨문뜨문 피우 담배는 햇수로 4년이 되던 해 늦 봄에 남편에 전자 담배를 반납으로 안녕을 고했다.

그 후로 난 단 한 번도 담배를 찾지 않았다.(어쩔 수 없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제가 나다닐 수 없으니 누군가 사다 줘야 하는데 끊는다고 한 마당에 다시 부탁할 순 없죠. 그래서 어찌어찌 금연하게 됐다는....^^.)




내가 가진 병 14가지에 처방되어 있는 약들 중에 대부분은 의존성이 생기거나 중독성이 있는 약들이다.


CRPS를 진정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아이알 코돈 외에도 아침, 저녁으로 다른 마약성 진통제를 (타진,뉴신타) 복용하고 있고 통에 복용하는 나라믹도 의존성이 있으며 함께 먹고 있는 신경 안정제 종류도 내성과 의존성이 있어 함부로 끊거나 마음대로 줄일 수 없다.

그리고 대표적인 부작용 사례가 있고 실제로 부작용을 겪고 있으면서도 복용을 멈출 수 없는 약 졸피뎀도 있다.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어나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음식을 먹거나 만들거나 집안을 돌아 다닙니다. 평소엔 음식을 만들 정도로 오래 서있지 못해요. 그리고 새벽에 음식을 먹은 걸 기억하지 못합니다. 졸피뎀의 용량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내가 먹고 있는 많은 약들을 이미 너무 오래, 너무 많이 복용했고 복용해야만 한다.

게다가 먹는 약의 양이 많기도 하거니와 (하루에 복용하는 약의 개수가 평균 40~50알 사이) 그 약으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이나 다른 증상들도 무시할 수가 없다.

하루에 복용하는 약의  일반적인 갯수.통증 정도에 따라 변동이 있습니다.
지금은 여섯 군데의 과를 보고 있습니다.추적 관찰만 하게 된 곳도 있고 새로 진료를 보게된 곳도 있어요.


만 약의 의존성, 중독, 부작용 같은 것들을 모두 떠나서 내가 잘 알고 있는 사실 한 가지!


내가 중독될 수 있는 모든 것에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처음 통증을 느끼고 약을 먹기 시작했을 때 어떤 방법으로 몇 번을 먹어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병원에서도 하루에 얼마큼 복용하라고만 얘기했을 뿐 통증 시에 어떻게 복용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었다.

그리고 통증은 교과서처럼, 약이 처방된 것처럼 하루에 한 번만 생기지 않았다. 한번 생긴 통증이 십 분 만에 가라앉지도 않았다.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매일 소리 지르고 몸부림치고 이를 악물었다.

잇몸이 녹고 이가 깨져 나갔다.

약을 잘못 먹어 통증은 지속되고 약기운에 취해 손이 바위 만해 지고 귀가 내 얼굴을 덮어버리는 것 같은 환각에 빠져 들었다. 신경이 예해 질대로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졌다. 많은 약과 독한 약을 잘못 사용하며 통증을 잠재우려 무리하게 복용했던 탓에 화장실에 들어가면 환풍기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린다고 착각할 만큼 쇠약해졌고 환풍기에서 불경 소리가 들리고 노랫소리가 들린다며 식구들을 기함하게 만들었다. 통증을 빨리 가라앉히려고 용량보다 많이 먹은 마약 진통제는 기어코 통증 중에 환각을 보게 만들었다. 통증이 극심하던 어느 날 남편과 딸이 옆에서 지키고 있는데도 가지 말라며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는 일이 생겼다.

(통증이 가라앉은 후에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대론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이런 식으론 병을 치료하는 것은 고사하고 다 함께 죽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로 병원으로 연락을 하고 입원을 하기로 한 후에 Wash out을 통해 몸에 있는 약물을 씻어내고 약을 먹는 방법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매달 진료를 보는 뇌신경과에서 심한 두통으로 인해 항상 입원장을 내주셔서 내가 언제나 입원을 원할 때 외래 간호사실을 통하면 입원이 가능하도록 해주셨고 약을 먹는 것은 하루에 먹는 약에 대해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식후에 먹는 약은 30분을 넘기지 않도록 노력하고 마약 진통제나 두통 진통제는 가능한 4시간의 간격을 두도록 신경을 쓰고 유 근육 통증으로 인한 몸의 통증이 심해지거나 미열이 있는 경우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일반 통증 약을 먹는 것도 모두 '약 일기장'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마약성 진통제도 통증이 시작되면 10분에 1알씩 통증이 끝날 때까지 복용하면서 환각을 보거나 환청을 듣는 증세가 완전히 없어졌다.

그리고 약 일기장을 쓰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약을 절제할 수 있게 되어 Wash out 해야 하는 기간도 늘릴 수 있게 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게 됐다.

처음엔 메모장에 약 일기장을 썼어요.지금은 딸의 톡으로 먹은 약을 적어 보냅니다.


사실 심한 통증을 겪는 환자분들이 계시다면 방법만 주어 진다면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리란 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그 마음은 누구보다 내가 제일 강하다 말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중독은 무엇이 됐든 자신을 망치는 가장 슬픈 자기 위안이다.


끊고자 할 때 끊을 수 없다면 시작을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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