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나루 Jul 28. 2021

자살

자살 옹호론자 아닙니다.

이 글은 읽는 분들께 제가 그냥 말을 건네듯 편하게 쓰겠습니다.


요 근래마음 때문 인가... 제 맘속 깊이 눌러왔던 아직도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얘기를 해보려 하거든요. 아마 발행하고 난 후에 이불 킥을 날리며 "미쳤군. 술을 박스째로 마시고 꽐라가 돼서 쓴 거 마냥 감성 폭발해서. 이게 무슨...!!" 이라며 후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번은 꼭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말씀드리지만 부제에 쓴  대로 전 자살 옹호론자도, 예찬론자도 아닙니다.

다만, 브런치에 보이는 몇몇 글을 쓰시는 의사 선생님들의 표현에 대 자살 경험자(?)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뿐입니다.

읽기 싫으신 분들은 여기서 go back 하셔야겠네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죽인다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당연한 이야기 일 겁니다. 통의 상식으론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하고 무서운 이죠.

자살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이는 대상 나로 바뀐다고 해서 사람을 죽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끔찍하고 무서운 일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힘든 일과 나를 어떻게 죽여야 하는가'라는   가지 생각에 훨씬 어둡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얘기를 하기 위해 먼저 돌아가신 두 분을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잘 알지 못하지만 수이자 연기자였던 설리 씨는 도 넘 악플과 비난을 견디 못해 스스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겠죠.

"그까지 것 무시하고 말면 그만이지." "안 보면 되지 왜 보고선 죽고 난리야"


하지만 브런치를 쓰는 작가분들 중에 자신의 글에 달린 악플 하나에 초연하실 수 있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요?

'내 글에 어디에 그런 뜻이 있었지? 그런 의도로 쓴 글이 아닌데. 뭐라고 설명해야 되지? 이 사람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이렇게 반응하지 않으실 분이 얼마나 되실까요.


"그까짓 악플 개나 물어가라!"

하고 삭제 빡! 차단 빡! 하고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이 있기는 있을까요?


그리고 전 남자 친구의 폭행과 성관계 동영상 유포 협박으로 법정까지 섰다가 결국엔 생을 달리 한 구 하라 씨의 경우를 보아도 마찬 가지입니다.

한참 사랑을 알아가고 행복해야 할 꽃다운 20대에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전 남자 친구의 폭행과 협박을 견뎌야 했고 자신의 성관계 동영상이 법정에서 상영되는 극강의 모욕과 치욕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리고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온라인상에서 말할 수도 없는 심한 악플 시달리다 결국엔 죽음으로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제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제게 그 일이 일어난 건 2019년 2월 13일입니다. 아직 2월이 되면 한 달 정도씩 아픈 몸이 더 아픕니다.

해리성 기억상실로 많은 기억을 잃었지만 너무 지독한 고통의 기억은 골수에 사무쳐 지워지지도 잊히지도 잃어지지도 습니다.


그때 저는 여전히 가족들과 척을 지고 있었습니다.(제 의도가 아닌 가족들의 의도였어요. 이유를 모르고 이제는 이유에 대한 의문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도 그렇지만요. 

부모님과는 백만 년 만에 한번 통화할까 말까? 했었고요. (그것도 제가 한 발 물러서 부모님이 더 나이 드시기 전에 용서하고 싶었습니다)

저희  지니의 희귀 난치병 발병 사실을 안 지 2년이 안 됐었고 전 매일 기절을 8~13회 정도 하며 두통과 마약 진통제 때문에 하루도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때어요.

이미 어깨 수술 후의 후유증으로 생겨있던 CRPS 외에 발목까지 부러지며 추가로 CRPS진단을 받고 평생 걸을 수 없을 거란 얘기를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고 망할 CRPS통증은 잇몸을 녹이고 이에 금이 가게 만들 만큼 맹위를 떨치던 때였습니다.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저의 다른 정체성들이 딸과 남편을 혼란스럽게 하고 극에 달한 우울증으로 하루도 눈물 없인 말을 이어갈 수도 없을 만큼 처참한 상태였습니다.

심한 불면증으로 며칠씩 잠을 못 자 신경은 가느다란 거미줄이 팽팽히 당겨진 것 마냥 건드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정말 죽을힘을 다해 하루를 견디고 버텼습니다.

하루를 견디면 일주일을 버틸 수 있었고 일주일을 버티면 한 달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죽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의사분들이 소위 말하는 '고귀한 생명을 쉽게 헌신짝 버리듯 함부로 내버리는 선택' 하는 한심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어느 밤 너무 심한 통증에 교회 담임 목사님께 전화로 안수기도를 받고 문득, 정말로 '문득' 평생 처음으로 친정엄마에게 전화해 마약 진통제와 고통에 잔뜩 취한 채 울면서 아프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평생 처음으로요.

전 항상 괜찮다고만 말하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다음 날 가족 중 한 사람이 제게 아프면 방문  닫고 들어가 혼자 참으라고 전화했습니다. 통증이 생겼을 때 엄마에게 전화하지 말라고, 엄마도 많이 힘들다 면서요.

참기 힘들면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제 거미줄 같은 신경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저를 당신의 딸처럼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셨던, 당신이 걸린 암보다 제 병의 고통이 더 심한 걸 아신다며 위로해 주시던 사랑하는 권사님 2년여의 암투병끝으로 흘 후에 중환자실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에 소천하셨습니다.


운명은 잔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삶과 죽음 중에 선택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진정 제 고귀한 생명을 헌신짝 버리듯 쉽게 내 팽개쳐 버리는 선택을 했다고 믿으십니까?

그때의 제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전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게 아니었습니다.

넌 죽어야 한다는 운명에 내몰려 무섭고 두렵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이상 견디고 참아낼 수 있는 정신도, 마음도 제겐 없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제게 너는 죽어야 돼. 알지?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운명은 끊임없이 제게 속삭였습니다. 

"너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 살 수도 없고."

"두렵고 무섭겠지만 가야 할 길은 그것밖에는 없다고! "

"이렇게 까지 는데 더 견뎌 보겠다고?"

제게 있었던 그날의 일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제 몸과 마음은 죽음으로 내몰려졌을 뿐입니다.


설리 씨, 구 하라 씨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아픈 저를 자신을 돌보듯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돌봐주시는 제 진료과의 교수님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몇몇 의사분들.

당신들은 신이 아닙니다.

조금 좋은 머리로 신의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다만, 당신들의 오함이 대범함이 될 수 없고 당신들의 월권이 담대함이 될 수 없음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내 몸이고 내 목숨이니 이른바 헌신짝 버리듯 가볍게 아무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쉽게, 어떤 이 들은 비싼 돈과 피나는 노력과 간절한 염원으로 살고자 하는 고귀한 생명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진심으로?



이전 21화 다른 분들과 손 잡고 싶은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