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나루 Jul 15. 2021

내 안의 또 다른 나

해리성 둔주

해리성 둔주-기억상실과 동반되어 일어나는 장애로서, 자신의 고유한 주체성(identity)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 회상하지 못하며 일부 혹은 완전히 새로운 주체성을 갖는 것


어깨 수술의 후유증으로 생긴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의 발병 이후에 욕실에서 발목 부러지는 참사가 있었다. 그로 인해 다리마저 CRPS진단을 받게 됐고 재활을 할 수 없게 된 다리 심한 통증으로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것 갔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2018년 7월)


죽고 싶어 미칠 것 같은 마음인데 누군가 내 온몸을 결박하고 강제로 입을 벌려 입안에 고약한 냄새가 나는 양말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는 기분이었다. 숨을 쉴 수도, 숨이 쉬어지지도 않을 때였다.


여러 가지 외부적인 상황들로 극심한 스트레스와 병에 따른 심한 고통이 이어지며 해리성 기억상실 증세가 뚜렷이 나타나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년의 기억들이 뭉터기로 지워 가는 와중에  다른 해리장애 증세가 나타났다.(2019년 4월 이후)

자율신경 실조증  증상 중 하나이던 기절이 잦았던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 책장 쪽으로 몸을 옮기다 머리를 책장에 부딪히고 잠시 기절했다 깨어난 어느 날의 오후였다.

마지막 기억은 책장 앞이었는데 어느새 거실 소파 한가운데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 (실제론 눈을 떴을 때 몸은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어요.) 있었다. 보통 내기절하면 딸 방안에 있는 바퀴가 달린 책상용 의자를 가져와 벽에 기대어 놓고 기절한 나를 그 위로 끌어올려 걸친 후(?) 침대 옮겨 놓거나 접이식 토퍼를 가져다 기절한 엄마를 통증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히 굴려 대로 바닥에 눕혀 놓는 것이 딸의 방식이었는데 그날따라 바닥도 아니고 침대도 아닌 거실 소파에 앉은 체로 깨어난 것이 이상했었다.

상황도 이상하고 기절했다 깨어난 후의 멍한 상태에서 채 벗어나지 못해 어리 절한 나를 보며 딸이 속삭이듯 얘기하기 시작했다.(큰 소리는 금물 이거든요. 두통 때문에....)

"엄마, 괜찮아? 정신이 들었어? 엄마 발목 괜찮은 거야? 병원 가야 될 거 은데..."


딸의 반이 이상하고 또 병원 가자는 소리에 놀란 나는


"병원? 병원에는 왜? 엄마 보던 책 다 봐서 새로 산 책으로 바꾸려고 잠깐 짚고 일어섰다가 기절한 거야. 아이고. 머리에 혹 났나 보다. 엄마 얼음 좀 갔다 줄래. 넘어지는 소리가 크게 나서 놀랐어? 아님, 바로 안 깨고 오래 기절했어? 왜 놀랐어? 엄마 이제 괜찮아."


딸은 후다닥 일어나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조그만 주머니를 만들어 내게 다가오며 슬슬 내 기색을 살피기 시작했다.

딸의 눈치가 이상해 보이기도 하고 평소와 다르게 킹 부츠를 신지도 않은 채 거실까지 나와 앉혀져 있는 게 이상하기도 했다.

골절시 신고 걸을수 있는 위킹 부츠. 집안에선 이 부츠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엄마, 정말 아무 기억도 안나? 머리만 아파? 혹 난데 멍들겠다.... 다른 기억은 하나도 안나? 발목 많이 아프지 않아?"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며 내 눈치를 보는 딸이 답답하기도 하고 딸의 말대로 발목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부어 당장이라도 심한 통증이 생기기 일보직전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아. 왜 그래? 엄마가 무슨 짓 했어? 불안하니까 말 돌리지 말고 그냥 얘기해. 엄마 왜 소파에 옮겨 놨어? 안방에서 기절했는데. 괜찮으니까 말해. 죽기도 했었는데 뭐가 더 놀랄 게 있겠어?"


근하는 내 말에 딸이 차근차근 사건의 전말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책장에 부딪혀 기절한 후에 콩이(강아지)가 부리나케 누나에게 달려가 누나를 데려왔고 엄마를 일으켜 침대 위로 옮기자 엄마가 바로 깨어났답니다.
그런데 엄마가 평소와는 다른 모습으로 화가 난 사람처럼(전 crps의 초기 1년을 제외하곤 화와 짜증을 내지 않으려 다짐하고 살았어요.) 눈빛과 얼굴, 말투가 변해서는 지난 2년 정도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답니다.
발목이 부러진 것도, 걸을 수 없다는 것도 더해진 고통과 여러 가지 상처들로 큰 사건을 겪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화를 내고 호통을 치며 채 아물지 않은 발목으로 멀쩡히 돌아다니다 소파에 앉아 다시 기절했다가 깨어난 거였답니다.


처음엔 딸이 하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뒤이어 발목부터 불붙듯 퍼지는 crps통증에 딸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리고 무엇보다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다른 모습(과거의 저인 것으로 추정합니다.) 더 잦은 빈도로 나타나 나와 식구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내가 믿지 않는 눈치를 보이자 딸은 휴대폰으로 음성을 녹음하고 영상을 촬영하여 내게 보여 주기까지 하였지만 내 눈으로 그것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은 마음이었다.


나인데 내가 아닌 모습의 나였다.

10~15분 내외로 모습을 드러내는 그녀는 화가 많고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내고 2년  정도를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발목이 부러졌다고 인정하지 않으며 지금 사는 집이 자신의 집이 아니라고 우겨 댔다. 우린 그녀를 '벼락 성질 김 씨'라고 불렀다. 믿으실진 모르 겠지만 '벼락  성질 김씨'는 얼굴 모양도 바뀌었다. 새초롬하니 턱도 뾰족, 눈도 뽀족, 코도 뾰족! 그 후에 '새드 엔딩 ㅇㅇ씨, ' 호호 헤헤 H 씨' 이렇게 대략 3인이 1년 반 정도 활약했다.


게다가 딸이 녹음한 음성, 영상 파일 이외에도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촬영 시에 내 다른 자적인 인격이 녹화되었고 촬영하신 조감독님에게 부탁해 그 부분의  편집본을 받아 신경 정신과와 상을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올리려고 파일을 찾아보니 재생이 안되네요.ㅠ)

제작진이 보내준 메일을 찾았어요.


신경 정신과 담당 교수님은 내게


"해리 현상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해리성 둔주라고도 하는데 트라우마가 생길만한 큰 일을 겪거나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해 있을 때 스스로 본인을 보호하려 보이는 행동입니다.

해리 현상도 본인이 어떻게든 이겨내 보려고 노력하는 중에 생기는 현상이니까 지나갈 겁니다. 몇 년간 급작스럽게 힘든 일을 많이 겪으셔서 마음이 방어기제로 일정기간의 일을 잊고 싶어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해리 현상에는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습니다발목이 낫지 않은 상태에서 2차 부상이 염려가 되네요.... 지금은 몸을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잠시 안정제를 쓰겠습니다.

많이 힘드신 거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시간이 지나가면 해리 현상도 줄어들 겁니다. 지금도 너무 잘하고 계세요. "


라고 말해 주었고 그 이후로 난 브런치에 글을 쓰려고 준비했고  앞서 말한 대로 나의 다른 나들은 1년 반을 활발하게 활동하고서는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내가 가장 힘들던 당시에 나와 함께 했던 다른 내 모습 중에 제일 먼저 자신을 드러내고 제일 오래 머물다 갔으며 식구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큰 스트레스가 됐던 identity는 '벼락 성질 씨'였다.

그 모습은 평생토록 내가 감추고 참으며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던 나의 한 부분이었다.

그 모습은 결국엔 내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된 상태가 되어서야 나를 누르고 자신을 드러냈다.

정신과 교수님의 말대로 내 다른 모습들은 나를 스쳐 지나가며 내 안에 고여 있던 많은 감정과 마음들을 털어내 주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지내고 나서야 내가 누구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는 온전한 나 그대로 사랑받아 마땅했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더 이상 다른 모습의 나는 없다.




이전 19화 나를 지워 버리는 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