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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Aug 25. 2021

누나! 엄마 또 기절했어!!!!

자율신경 실조증

조금 느려진 맥박수에 얕은 숨소리를 내  마치 가면을 쓴 것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직임이 없는 엄마를 딸은 혼신의 힘을 다해 침대로 옮겨다 눕혀 놓는다. 그리고 바로 엄지 손가락엔 대용 핑거팁을 채워 심박수를 체크하고 가정용 혈압 측정계로 혈압을 체크한다. 이때 대부분 혈압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머리카락을 들어 올려 이마나 얼굴에 상처가 난 곳이 없는지를 살피고 양 손으로 머리를 조심스레 만지며 혹이 난 곳을 확인하여 얼음찜질을 해주고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린다.

(딸이 자세히 전해준..... 제가 기절했을 때의 통상적인 모습이라고 합니다.)

휴대용 심박계(핑거팁) 입니다. 정확도는부족해도 대략의 산소 포화도,심박수등을 알수 있습니다.

그나마 요즘은 전조 증상을 느껴 미리 앉거나 누워서 갑자기 쓰러지면서 생기는 2차 부상을 많이 예방할 수 있지만 자율신경 실조증이 생긴 초기에는 전조 증상이 없거나 있어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하고 꼬리뼈에 금이 기도 하고 온 몸의 타박상과 가벼운 뇌진탕까지 항상 2차 부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자율신경 실조증

자율신경계는 내분비계와 더불어 심혈관, 호흡, 소화, 비뇨기 및 생식기관, 체온 조절계, 동공 조절 등의 기능을 조절해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말초신경 수준에서 말초의 자율신경계는 서로 대항 작용을 하는 교감 신경계와 부교감 신경계로 구성된다. 이러한 자율신경계의 조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자율신경 실조증이라고 한다.
심혈관, 호흡, 소화, 비뇨기 및 생식기관의 기능이 모두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땀이 나오지 않는 무한증, 누웠다 일어날 때 혈압이 과도하게 떨어지면서 어지러운 증상을 동반하게 되는 기립성 저혈압, 발기부전 , 배변 기능의 이상, 모발 운동과 혈관 운동 반응의 소실, 실신, 동공 이상 등의 증상이 발생하게 된다.
- 출처:서울 대학교 병원 의과 정보.




처음 자율신경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건 두 번째 희귀 난치 질환인 CRPS를 진단받은 후 1년 정도가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어느 날 심한 통증이 지나가고 간신히 숨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한 시간 반이 넘는 심한 통증으로 지칠 대로 지친 나를 보살피며 조금이라도 쉴 수 있도록 챙겨 주고 있던 딸이 내게 말을 건넸다.


"엄마. 엄마 다리가 좀 심하게 부은 것 같아. 지금 많이 지친 거 아는데 발목 좀 움직여 볼 수 있겠어?"


내 다린 발가락부터 종아리 위쪽으로 구분도 되지 않을 만큼 수북하게 부어 올라 칼국수 반죽을 미는 홍두깨 방망이 모양으로 통가 되어 있었다.

너무 많이 부어 올라 발이 들어가는 신발이 없어 남편 슬리퍼를 신고 입원 했었어요ㅠㅠ.엄지 발가락이 왕사탕 만하네요. ㅎ ㅎ.

발가락과 발목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너무 심하게 부어 오른 피부 때문에 피가 통하지 않아 계속해서 발과 다리에 쥐가 나고 저리는 느낌에 잠시도 편 틈이 없었고 덩달아 생긴 다른 증상들로 인해 입원을 서둘러야 했다.


일주일간의 입원으로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자율신경 실조증을 진단받게 되었고 이 병 역시 확실한 치료약이나 치료 방법이 명시된 것 없이 내가 가진 병의 전체적인 상태나 내 몸의 컨디션에 따라, 스트레스의 많고 적음에 따라 나빠지기도 좋아지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낮의 더위가 36~37°C를  넘나 들었던 올여름의 유난한 더위에도 난 차갑거나 시원한 물로 샤워할 순 없다.

물론 찬물만 살짝 스쳐도 통증이 생기는 CRPS 탓에 꿈도 꿀 수 없는 얘기인 건 알지만 그렇더라도 평상시보다 조금이라도 시원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나올라치면 물기를 다 닦기도 전부터 땀이 물 흐르듯 흐른다.

말초신경계를 조절하는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가 망가져 땀을 식히고 바람을 쐬었을 때 오히려 더 많은 땀을 배출하며 체온을 심하게 낮추거나 높이게 만든다.

겨울 같은 경우엔 조금이라도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나올 경우 마찬 가지로 땀이 물 흐르듯 흘러 옷을 입기도 곤란할 지경에 이르는데 이걸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오히려 땀을 뻘뻘 흘리며 옷을 잔뜩 껴입고 이불을 목 까지 끌어올려 덮고 얼굴만 선풍기 바람을 쐬면 언제 냐는 듯 땀이 멈춘다.


아픈 몸도 미칠 지경인데 단 한 가지도, 어디 한 군데도 편한 구석이 없었다.


이렇게 사소하겐 땀이 심하게 흐르고 체온을 제대로 조절할 수 없게 된 것부터 구 건조,

구강 건조 (이 것 때문에 충치가 급속하게 진행돼 250만 원 가까운 돈을 들여 치과 치료를 병행하게 됐습니다.ㅠㅠ), 그리고 하루에 많게는 열 번이 넘도록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던 기절까지... 많은 증상들로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 했고 지금도 겪어내고 있는 중이다.


발목이 부러지며 다리가 CRPS가 되어 걸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얘기를 듣기 전부터 어쩔 수 없이 휠체어를 타야 했던 이유도 이 병의 증상 중 하나인 때를 알 수 없는 잦은 기절 때문이었다.


자율신경 실조증은 내게 가장 가슴 쓰린 병이다. 많은 병들을 이 악물고 고집스럽게 버티고 참아내던 날 순간에 바닥으로 끌어내린 자율신경 실조증이었다.

CRPS(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를 앓기 전까지는 내가 아무리 아프고 힘이 들어도 밖에선 가능한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었고 다행히 환자처럼 보이지 않는 모습에 병세가 심해질 때를 제외하고선 내가 아프다는 걸 잘 숨기고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실생활에서도 힘들어 누워있는 날이 많았지만 항상 머릿속으론 '난 그냥 잠시 쉬고 있는 것뿐이야. 평생 동동 거리며 살았는데 게으름 좀 피운다고 누가 뭐라 하겠어?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깟 병들 당장 떨치고 일어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내 바람일 뿐이었다.


잦은 기절은 날 겉으로 보기에도 진짜 환자인 것처럼 만들어 버렸다.

CRPS를 진단받고 신변에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생기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내가 환자라는 것을 항상 deep 하게 인지하고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공공연하게 드러내 놓고 다니며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을 받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내겐 그 어떤 일보다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한 번도, 어느 누구에게도 내 속내를 쉽게 드러내며 살아오지 않았던 나는 가장 내밀한 마음 깊은 곳 온 세상에 까발려진 듯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의 눈길은 항상 호기심을 넘어서 무례했다.

아무런 외상없이 여름에도 긴팔의 카디건을 걸쳐 입고 손에는 장갑을 낀 채로 팔 보호대를 두르고 앉아 있는 나를 무심히 쳐다보는 사람들의 칼날 같은 눈빛에 마음이 베였다.

나도 모르는 새 내 맘엔 피가 맺히고, 마음에 고인 핏물은 흘러 어느새 앞을 적시고 한 방울씩 떨어져 발밑에 흥건히 고였다.  무수히 베이고 또 베였다. 무뎌질 날이 오기는 할까 생각했었다.




오늘도 콩이는 부지런히 달려가 누나의 방문을 긁었다. 콩이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누나! 누나! 엄마 침대 앞에서 또 쓰러졌어! 빨리 와. 앞으로 넘어졌단 말이야. 엄마 머리 바닥에 세게 부딪혔어. 누나. 누나...!!!"


내일은 조금 더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할까 보다.

비가 계속 오니 컨디션이 난조다.

콩이와 딸이 애쓸 것이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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