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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Sep 13. 2021

소원(所願)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람. 또는 그런 일.

내가 겪고 있는 이 서늘하고도 뜨거운 통증들을 하루에 한 시간 만이라도 아니, 그것도 분에 넘친다면 하루에 단 10분만 이라도 재킷처럼 벗어내 내 몸에서 떼어 놓을 수 있다면.


더도 덜도 말고  10분만.


1년 365일 24시간 단 일분 일초도 멈추지 않고 무지근하게 머릿속을 찍어내리며 불로 달군 쇠 젓가락으로 눈알을 관통해 뇌 속을 헤집는 듯한 두통은 모자를 벗듯이 벗어 버릴 것이다.

덩달아 아픈 눈은 안경을 벗듯이 함께 벗으면 되겠지.

두통이 심해져 얼굴까지 번진 안면(顔面)통은 마스 벗듯이 던져 버릴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CRPS로 인한 다리의 통증은 슬랙스를 벗듯이 벗어내고 잠시 주어진 고통 없는 시간을 맘 속 깊이 감사함으로 누릴 것이다.


내 몸과 한 몸이 된 섬유 근육 통증의 동통(疼痛)과 격통(激痛)들은 미지근한 샤워 물로 씻어낼 수 있으리라.

타올로 몸을 닦으며 율신경 실조증의 기절 증세와 망가진 자율신경의 증세도 함께 닦아내 버려야지.


잠이 오지 않는 밤엔 CCM을 자장가 삼아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이고 난 더 이상 내 심장소리를 들으며 불안에 떨지 않게 될 것이다.


하루에 단 10분만 내게서 통증이 없는 순간이 있어 봤으면.


뼈가 부서지고 피부가 찢어지는 통증 가운데, 머리가 아파 구토가 이어지고 죽은 생선의 눈깔처럼 뿌옇게 흐려진 눈으로 눈물을 흘리 순간에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이뤄질 수 없는 내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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