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배 아파!

베체트 장염

by 강나루

베체트병 진단받은 지는 이미 십여 년이 훌쩍 지났다. 아니다. 처음 진단받은 것이 30대 중반 무렵이었으니 15년도 더 되어가고 있다.

베체트는 내게 애증이 깊은 존재다.


베체트병을 처음 진단받았을 때 다시 아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정말 어려웠다.

이미 갑상선 질환과 심장 질환, 난치에 가까운 혈관성 두통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고 은행을 다니며 긴 견갑거근점액낭염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목 디스크까지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이유, 생전 처음으로 교회를 다니며 이전에 내가 경험하지 못해 본 놀라운 경험들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교회를 다니면서 내가 가진 힘든 것들을 내려놓으며 큰 위로와 사랑을 받았다.

심지어 내가 가진 병들 여러 가지가 치유되는 놀라운 일도 내 눈으로 보고 내 몸으로 겪으며 내가 증인이 됐었다. 그리고 몇 년간 가뿐해진 몸으로 즐거운 교회 생활을 영위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쉽게 피로감을 느끼고 입안이 허는 구내염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개만 생겨도 물은커녕 침도 삼키기 어려운 구내염이 한 번에 네다섯 개씩 생기기 일쑤였고 심할 땐 열개를 넘기는 일도 다반사였다. 입 안에만 생기는 줄 알았던 궤양은 생식기 주변에도 생기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기도 했다.


혀와 입술 안쪽에 생긴 구내염. *사진출처; 네이버,구글이미지


게다가 손가락이 퉁퉁 붓고 관절이 아파 집에 파라핀 치료기를 사다 놓고 아침마다 치료하지 않으면 손가락을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반지를 끼우던 손에 손가락 보호대 열개를 장식처럼 끼우고 다녀야만 했다.


운동 선수들이 손가락 보호용으로 쓰는 텐션있는 재질 입니다.*출처;네이버이미지


날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건 이 병이 희귀 난치 질환이라 평생 동안 약을 먹어도 고칠 수 없다는 불치병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중에 다시 병을 얻었다는 사실이 못내 나를 힘겹게 했다. 가진 병이 다 나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나마 조금이라도 가벼운 몸으로 잠시나마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 잠시의 행복이 나를 더 비참하고 참담하게 만들었다.

절망이 깊었지만 그래도 그땐 일어설 수 있는 힘도 의지도 아직 아 있었고 난 열심히 투병했다.

하지만 자가 면역 질환(갑상선 기능 항진증, 베체트)으로 한 번 무너진 몸은 여러 가지 병들을 불러오기 시작했다.




*베체트병은 구강 궤양, 음부 궤양, 안구 증상 외에도 피부, 혈관, 위장관, 중추신경계, 심장 및 폐 등 여러 장기를 침범할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질환으로 각 증상의 기본적인 특징은 혈관에 염증이 생기는 혈관염(vasculitis)이다.


15년 가까이를 큰 사고 없이 존버하던 베체트병이 기어이 내게 큰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올해(2021년) 들어 가끔씩 참기 힘든 복통이 느껴지며 설사가 이어지는 날들이 잦아졌다. 사실 두 번째 희귀 난치 질환인 CRPS를 진단받고 마약 진통제를 세 가지 종류나 먹게 되면서 잦은 설사와 변비는 이미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기는 했다. 그리고 마약 진통제를 먹으면서 몸에 생기는 다른 통증들, 이를테면 혈관성 두통에 쓰이는 약도 마약성 진통제에 못지않은 약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진통제를 여러 가지 복용하는 날들이 이어지면 설사가 심해지거나 평소 겪어보지 않은 변비에도 시달려야 했다.


그러다가 올봄부터 혈변을 보기 시작하고 아랫배를 쥐어짜는 듯한 복통에 시달리는 이 잦아졌다.

웬만해선 병명을 늘리거나 진료 과를 늘리고 싶지 않은 심정에 죽기로 참아봤지만 점점 심해지는 증상에 더 이상 참는 것은 만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체트를 진료해 주시는 류머티즘 내과 교수님의 도움으로 소화기 내과에서 대장을 주로 진료하시는 교수님의 진료를 볼 수 있게 됐다.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하고.... 베체트로 인해 장에 염증이 생기는 베체트 장염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베체트 장염 검사.

https://brunch.co.kr/@oska0109/201


베체트 장염은 대장에 생기는 상세 불명의 염증이다. 혈관을 통해 생기는 염증이기 때문에 원인을 알 수도 치료 방법을 알 수도 없다.

베체트 환자의 약 5-10%가량은 위장관 문제가 동반되어 나타나고 소장의 끝부분과 대장이 이어지는 부분에서 가장 흔하게 문제가 발생한다. 베체트 장염은 이를 앓고 있는 상태에서 대장이나 소장에 궤양이 관찰되는 경우가 많다. 때에 따라 약물 치료를 하기도 하고 드물게 수술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도대체 인생은 내게 어찌 이다지도 잔인한지.

병이 많아 먹는 약이 많으면 이라도 좋아서 소화도 잘되고 속된 말로 방귀나 '북 북' 잘 뀌고 똥이라도 황금색으로 쌀 것이지!


추석을 5일 앞두고 심한 복통이 시작됐다. 복통과 함께 심한 설사도 시작됐다.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한지 한 달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몸이 자체적으로 다시 대 내시경 검사를 시작한 것 같았다. 앞뒤로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 마냥 "촤악~!" 하며 신나게 쏟아내며 닷새를 버텼다. 철옹성 같던 몸무게의 숫자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음식을 입에 댈 수 없을 정도로 입맛이 떨어졌다. 웬만한 통증은 입을 다물고 참는 내가 30초 간격으로 "아이고 배 아파"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심한 복통에 다리를 펼 수가 없었다. 온몸을 둥글게 말고 땀을 뻘뻘 흘리며 침대에 누워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화장실이 급하면 기다시피 하여 들락거려야 했다. 하늘이 돈짝만 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내 주변을 맴돌며 응급실을 가자고 채근하던 딸을 외면하던 내가 결국에 손을 들게 된 건 체온이 39°C 가 넘게 된 후였다.


명절에 절대 가지 말아야 할 곳 1위는 응급실이다.

급하게 아픈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아무런 처치를 받지 못하고 바깥에서 기다린 시간만 5시간이 넘었다. 거기에 열까지 높아 코로나 검사가 병행됐고 격리된 병동에서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빠르게 혈액검사, CT 검사를 진행했다.

응급실 밖에서 오랜 시간 대기하고, 인턴선생의 부주의로 CRPS가 있는 팔을 함부로 만져 통증이 생겼다. 모르핀까지 투약하게 된 상황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예민하다고 몰아붙이는 인턴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팔에서 혈관을 잡지 못해 결국엔 발등까지 라인을 잡아야 했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한 번에 겪으며 이젠 그러려니 하지만 로운 병이 생기는 일은 항상 나를 지치게 한다.


병명은 베체트 장염이었다.

너무 심하게 염증이 생겨 대장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고 오른쪽에 심하게 퍼진 염증은 맹장까지 두껍게 옮겨가 붙어 통증이 심했던 거였다. 대장이 너무 부풀어 있는 상태라 맹장 수술을 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약물로 염증 수치를 낮추고 그 후에도 맹장에 문제가 지속될 경우 맹장수술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 얘기했다.

대장은 최소 20여 일은 지나야 부기가 가라앉을 거라 말했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이제 8일의 시간이 흘렀다.

통증은 오래도록 남아 나를 괴롭혔고 부풀어 있던 장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으려 애를 쓴다. 입맛은 여전히 집 밖을 나가 헤매고 다니고 있으며 빠져나간 몸무게는 다행히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모든 일들이 편안해질 날이 올지 알지 못한다. 고통에 무감해지는 순간이 올지, 아니면 고통에 메여 나를 버릴 순간이 올지 짐작할 수도 없다.

섣부른 희망을 말할 수 없는 날들이 힘에 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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