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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Jan 01. 2022

몸이 기억하는 슬픈 상처

생일, 그리고 내가 죽던 날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어느 계절의 우열을 따질 수 없을 만큼 사시사철마다 계절 고유의 특징이 두드러지고 산천의 아름답기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사계절이 주는 변화와 그 변화로 인해 생기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잘  있을 것이다.

어릴 적엔 등산을 좋아하시던 아버지 덕에,  다녔을 땐 봄, 가을에 있던 워크숍을 통해, 결혼 후엔 아이를 낳고 가족들과 함께 한 수많았던 국, 내외의 여행들을 통해 느 누구보다 더 우리나라의 계절 변화를 가까이 느끼고 누리면서 살아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됐던 두통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본격적으로 심해지고 베체트를 필두로 여러 가지 합병증 줄줄이 생기 미 심하게 아픈 몸에 새롭게 깃드는 여러 가지 병들로 하루하루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CRPS를 확진받게 된 후에는 가 느끼는 계절의 변화는 오직 통증이 더하냐 덜하냐의 차이로 나뉠 뿐이었다.


봄과 가을은 비록 짧지만 환절기의 느낌이 강해 변해가는 날씨에 몸 상태를 맞추느라 이제는 더 이상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낄 겨를조차 없다.


여름은 덥고 습기가 많아 관절에는 치명적이라 베체트로 인해 생긴 대관절의 통증을 이기기가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심해진 두통을 참아내느라 턱과 안면에도 심한 통증을 동반해 잠시도 통증 없는 순간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한 여름 더위에 맞서 에어컨과 선풍기가 모든 곳에 항시 틀어져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CRPS통증이 생길 수 있는 위험부담을 안고 살아야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언제나 긴장 상태이고 언제나 통증 중 계절이 여름이 버렸다.


계곡과 바다를 모두 사랑했던 나는 이제 봄, 여름, 가을, 세 계절을 모두 두려워한다.




이제 제가 CRPS확진받은 후 매년 12월 중순부터 2월 말 경까지 글도 쓰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음식도 먹고 싶지 않고 몸이 깨질 것처럼 아프 감정 기복이 심해 혼자 눈물도 많이 흘리고 거의 매일 이다시피 CRPS통증에 시달리며 마약 진통제를 입에 달고 살고 불안장애가 심해져 자낙스를 먹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 같은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내게 생일은 그저 평범한 다른 날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런 날들과 같다. 생일이라고 해서 거창한 이벤트를 바란다거나 큰 선물을 원하지도 않다. 결혼 전에도 엄마는 평범한 다른 집들과 다를 바 없이 미역국을 끓여 주시고 케이크를 사서 축하를 해주시는 게 다였고 나 역시도 기념일에 목숨 거는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결혼을 한 후에는 심지어 가족들 모두가(남편 포함) 내 생일을 잊었던 해도 있었다. 살짝 서운하긴 했어도 오래도록 마음에 담지 않았다. 그저 '더 챙기는 사람이 있으면 덜 챙기는 사람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선 가까이 살았어도 엄마는 단 한 번도 미역국을 끓여주지 않으셨고 글을 읽을 분들은 대충 짐작하겠지만 남편은 내가 아파서 반쯤 죽어가도


"몸이 너무 아파서 아무 생각이 없어. 일어나지도 못하겠어."


라고 대답하면 하루 종일 이건 이틀이건 삼일이건 내게 물 한 컵을 떠다 줄 생각을 못하는 위인이었다.

아! 시어머니가 살아계시다면 마구 따지고 싶다. 


"어머니, 요즘에 저렇게 대충 키워서 시집, 장가보내면 반품은 물론이고 정신적 피해보상으로 위자료 듬뿍 줘야 돼요!!!"


이젠 아무리 크게 소리질러 말해도 어머니는 들으실 수 없다. 속상하다.

물론 시간이 지나 딸이 커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후로는 인스턴트 미역국이라도 사와 상을 차려주는 시늉을 해주기  시작했고 지금은 생일 때마다 진수성찬을 차려 내게 자식 기른 보람을 느끼게 한다.

딸이 차려준 생일 밥상 입니다.딸이 20살이 되면서 부터 한해도 빠지지 않고 진수성찬을 차려주네요.

딸이 자신의 커리어를 미뤄두고 내 병간호를 도맡아 하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자신에게 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어필하는 순간과 노력은 말할 수도 없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CRPS를 확진받고 내게 등을 돌린 가족들의 횡포와 남편의 변함없는 무지와 무관심이 내 마음을 병들게 만들었다.

내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고통일 텐데...

1 내 생일이 있었고 2월 내가 죽었던 날이 있었다. 비록 기억을 잃어 머릿속에선 지울 수 있을진 몰라도 몸은 기억하고 있다. 겨울은 고통의 기억이 진하게 남아있는 계절이 돼 있었다. 터지고 부서지고 깨질 듯 아픈 몸과 마음이 내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사계절 중에 내가 가장 사랑했던 계절은 '겨울'이었다. 어릴 적 눈이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좋아하는 책을 펼쳐놓고 엎드려 홍옥을 '와그작'하고 깨물어 먹고 팔꿈치를 따라 흘러 내복을 적시는 달큼한 사과즙의 내음을 맡으며 평안한 하루를 보내곤 했었다.


 생일이, 또 내가 죽던 날이 더 이상 내게 상처를 줄 수 없는 날이 올 것을 믿는다.

지금은 비록 가장 끔찍한 계절을 견디고 있지만 어느 때 부턴가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그 겨울이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다.



ps:제가 1,2월을 잘 견디고 돌아오도록 기도해 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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