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성 우울증, 생일, 자살의 상관관계
두 번째 희귀 난치 질환인 CRPS(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를 선고받기 이전에 이미 난 오래전부터 첫 번째 희귀 난치 질환인 베체트와 혈관성 두통, 그리고 부정맥, 섬유 근육통, 경추 추간판 탈출증, 퇴행성 척추관 협착증, 위염, 역류성 식도염, 불면증, 거기에 원만하지 않았던 부부 관계로 인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회전근개 파열로 오랜 기간 고생하던 어깨의 수술을 받게 됐고 그 수술 후의 후유증으로 CRPS(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 진단을 받게 됐다. 그 이후로 자율신경 실조증도 생겨 체온을 조절하기가 어려워지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절하는 치명적인 증상에 시달려야 했고 오랫동안 사랑하고 헌신했던 친정 가족들이 내게 등지는 모습을 겪고 보며 극심한 불안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발목이 부러지며 발목 수술 후유증으로 다리마저 CRPS가 돼버린 후에는 산다고 해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죽지 못해서 사는, 겪어보지 않은 이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두움과 불행 그 자체였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게 된 그 순간부터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점점 더 힘들고 어려워져 해결 방법이 없는, 너무 깊고 어두워 바닥을 알 수 없는 우물 안으로 내던져진 듯한 마음과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고 말았다. 아무리 말하고 싶어도 내 옆엔 내 아픔을 귀담아 들어줄 가족이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부모님께서는 그 당시엔 내가 전화를 걸어도 단 한통의 전화도 받지 않으셨고 어쩌다 전화를 받으셔도 지금은 너와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 몸조리나 잘하고 있어라며 전화를 끊어 버리셨다. 평생 우애 있게 살 것 같던 오빠와 여동생은 아예 연락을 끊고 말았다.
우리가 살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던 남편이 이사를 나가는 날까지 정확한 금액을 말하지 않아 이사하는 당일에 돈이 부족하게 되는 일을 겪었고 부족한 돈을 도와주신 부모님께서 나와 남편이 함께 짜고 부모님의 돈을 뜯어내려 했다고 오해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그때 난 이미 CRPS가 발병해 있었고 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사실이 아니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틈도 주지 않았다. 남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난 가족에게 버려졌다.
누구도 절대 상상할 수 없는 통증과 고통, 남편의 잘못으로 일어난 나를 향한 친정 가족들의 오해, 나를 간병하느라 자신의 커리어를 답보시키고 있는 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모든 것을 모르쇠로 만 일관하는 남편의 태도... 그 모든 것들로 인해 생긴 몸과 마음의 병과 숨을 쉴 수 없는 불안감, 두려움 그리고 연이은 불행, 불행, 불행들...
2019년 2월 13일
나는 죽었다.
비록 일주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다시 살아났지만 나의 모든 것이 깨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때 내 일부분은 영원히 죽었고 말할 수 없이 상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후로 난 매년 12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 온몸에 심한 격통과 극단의 감정 변화를 겪는다.
내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겹쳐 생일이 있는 1월까지 극혐 하게 돼버렸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꿈에 나오는 바람에 잠을 자는 게 더 힘든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땐 일어나는 것도 무서울 지경이었다. 무지막지한 통증이 한순간도 날 그냥 두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어도 무섭고 눈을 감고 있어도 무서웠다.
숨 쉬는 순간순간 죽고 싶은 마음이 머리를 뚫고 나올 지경이었다. 죽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가슴이 뻐근하다 못해 온몸의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 말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TV보다 울고 밥 먹다 울고 화장실에서 울고 온 집에 눈물을 처바르며 지냈다. 약을 많이 먹고 취한 채로 지내보면 마음 아픈 것이 덜할까 싶었지만 약에 취해 있는 순간에 자제력을 잃을 것이 또한 두려웠다.
하지만 두 번 다시 나의 죽음이 선택으로 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원하지 않은 죽음, 내몰려진 죽음으로 살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던 나 자신의 노력을 폄하하고 날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더 울고 싶지도 않고, 다시 죽고 싶지도 않고, 더 가슴 아프기도 싫다.
하지만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백지처럼 지워버리고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은 골수에 새겨 넣은 듯 선명하다. 내 몸에 깃든 병들은 잔인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몇 년의, 아니 몇십 년의 세월이 더 흘러야 그 후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를, 아니면 다른 무엇의 이야기라도 편히 나눌 날이 내게 오는 날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손꼽아 기다린다.
내가 실패하지 않고 견뎌내고, 지지 않고 살아남아 그날을 맞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