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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Jun 03. 2022

효녀라고 얘기하지 말아 주세요

부모 맘을 아신다면

"지니야. 아휴... 우리 지니는 정말 요즘엔 보기 드문 효녀야. 효녀!!

지니 아프지만 엄마를 간병하고 돌봐줄 사람이 지니 너 밖에는 없으니까 가 힘내야지. 지니 너마저 없었으면 엄마 어떻게 할 뻔했니!"


우리 딸을 보는 어른들이 지니에게 자주 하는 말씀이다.

앞뒤 문장만 조금씩 바꿔 같은 내용을 딸에게 주기적으로 들려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분들에게 악의가 없으시다는 것, 그리고 고생하고 있는 딸 지니에게 위로와 응원을 해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시는 말씀이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고 또 이해도 한다.


하지만 난 딸이 효녀이길 바라지 않는다.

내가 효녀 노릇하며 뼈를 갈아 바치고 살이 짓무르도록 노력하며 살아 봤지만 그건 그저 당연한 자식의 도리로 여겨지고 말았고 오히려 내가 벼랑 밑으로 떨어지려 할 때 가족은 나를 붙잡아 주지 않았다. 도리어 등을 떠밀어 버렸다. 그리고 이제와 내 빈자리를 애석해한다.

내가 딸에게 그렇게 하지 않을 거란 건 나도 알고 하나님도 아시지만 운명이 내게 어떤 딴지를 걸진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도 날 지켜주고 있는 딸에게 더할 수 없는 사랑과 고마움을 넘어서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는 순간이 생길 때가 있다. 그리고 딸이 없었다면 오랜 시간 수 많았던 고비와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했으리란 것도 잘 알고 있다. 남편이 해야 할 모든 일들과 모든 순간에 딸이 그 자리를 채워 주었다. 

하지만 이제 딸이 나를 두고도 안심하고 자신의 길을 찾길 바라고 원한다.

원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이든 지원하고 격려하고 잘되도록 응원과 기다림을 아끼지 않을 작정이다.

내 병간호?

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모르면 패서라도 가르쳐야지.

남편 뒀다 에 쓰나. 이러려고 독기를 잔뜩 품어놨다. 정신 좀 차려라 남편!


그리고 좋은 뜻과 마음으로 칭찬하고자 위로의 말을 하고 싶으시다면 차라리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힘들 텐데 지니가 고생이 많았네. 지금은 힘들어도 꼭 네가 하고자 하는 일 하게 되는 날 있을 거고 그게 뭐든 반드시 잘될 거야. 엄마 건강도 지니 건강도 다 좋아지는 날도 금세 올 거고."


딸에게 희망을 갖게 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절망하지 않을 수 있도록 위로와 격려가 함께 있는 응원을 해주기를 바라는 건 내 욕심일까?




어떤 부모가 끝이 정해지지 않은 지독한 병에 걸려, 그것도 뇌에 병변이 생기고 병변이 생긴 부분에 해당하는 운동기능을 상실하는 병을 가진 목숨보다 더 귀한 자식에게 병간호를 시키고 싶어 할까....


엄마의 병간호를 포기할 수 없는 딸에게 효녀라는 프레임을 씌워 안 그래도 힘든 마음을 더 힘들게 하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

다른 친구들이 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하는 내내, 그리고 더 공부를 하겠다고 하는 친구들이나 취업을 해서 커리어를 쌓아가는 친구들이 생기는 동안 딸은 불평 한마디 없이 힘든 내 투병생활을 묵묵히 지켜주었고 그런 딸의 마음을 아는 난 말없이 안아줄 수밖에 없다.


이런 사소한 문제들, 끊임없이 신경을 거스르고 지친 마음에 생긴 거스러미를 잡아떼어 작게나마 생살을 찢는 느낌을 느끼게  만드는 문제들, 감정들....

이런 일들이 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불을 지피고 치료를 중단하고 싶은 마음 간절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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