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나루 Aug 23. 2024

내게 생긴 불행을 떠들면 안 된다?

불행 총량의 법칙

길다면 길고 짧다면 한없이 짧은 53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경험하고 관찰하며 느낀 바로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인간성의 선함과 그렇지 않음을 떠나 사람들 각자에게 정해진 불행의 양은

모두 같다 여겨진다. 

단지 불행을 끼는 시간과 깊이, 그 상처의 모양이 다를 뿐이다. 말하자면 불행 총량의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황과 됨됨이에 따라 불행을 견디는 모습 다를 것이라 생각된다.

불행을 느끼는 깊이와 상처의 모양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불행이 깊고 좁은 그릇에 담겨 있는 것처럼 단 시간에 짙은 어두움 험한 고난으로 경험되고, 어떤 불행은 얕고 넓은 그릇에 담긴 것 마냥 오랜 시간  끊임없이 불행한 일이 겹쳐 일어나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엔 누구든지 일생동안 겪어야 할 불행의 질량은 똑같다. 깊고 좁든, 얕고 넓든 한 사람이 겪어야 하는 불행의 총량은 같다는 의미다.


처음엔 아무리 애쓰고 살아도 불행이 속수무책 벌어지는 현실에서 어떻게 행복하라는 건지, 어떻게 이겨내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에 들기 위해 눈을 감는 순간까지 단 한순간도 고통이 끊이지 않고, 하루가 멀다 하고 돈 문제가 터지며, 가정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하루하루가 지옥 그 자체였다.

두 가지 희귀 난치병을 가진 나로도 부족해 자신의 모든 미래를 걸고 날 간병해 주던 딸아이마저 더 무섭고 어려운 희귀 난치병에 걸리고 말았을 때 내 세상은 무너져 버렸다. 세상이, 삶이 나를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누구나 내게 불평과 불만, 불행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는 조언을 건넸다.

* 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머릿속에 있던 말이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면 그건 진짜가 돼버린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불평이든, 불만이든, 그것이 나의 완전한 불행이든 말하지 않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자신의 불행을 애써 외면하고 잊어버리려 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불행을 외면하려 할수록 자신 상처받기 때문이다.


불행을 경험하는 것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안.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불행을 경험하고 싶 않다. 그리고 내게 일어난 불행으로 글을 쓰는 일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나간 일을 복기하며 글을 쓰는 건 이미 아문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는 것처럼 잔인하고 혹독한 일이다.

내게 벌어진 연이은 불행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고 그러는 사이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불행이 내게 닥쳐온 이상 극복할 수밖에.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난의 세월이었다.

 

그 지독한 불행을 극복하고 상처받은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동안 겪었던 고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내 삶에서 그 고통이 가지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행복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됐다고나 할까!
이제는 불행이 있었던 지난 10년간의 어떤 시간보다 맑고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비로소 옛날 내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썼던 글들을 통해 지나간 내 불행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니다. 그랬다면 평범한 일기장이나 마찬가지였겠지.

가 쓴 모든 글들은 내 기억이 온전히 남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 해리성 기억상실로 인한 기억의 소실과 기억 왜곡이 일어나기 전에, 지난날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에 대한 생생한 기록 될 것이다. 

불행의 편에 서서 세세히 관찰하고 분석하는 기록물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다고 불행의 내용이 바뀌진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잘 표현된 불행은 같은 불행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이정표이자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생각한다. 지나간 내 삶의 편린들을 끌어모아 정리하며 구멍 난 내 기억들을 맞추는 중이다. 이 과정을 통해 난 다시 태어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것은 내가 치유받고 다시 일어서는 기록일 뿐 아니라 비슷한 아픔을 겪는 분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이며 안내문이 되길 바란다.


근거 없는 단순한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내가 부르짖었던 말, 의지를 품은 희망에 대한 얘기이다. 나는 모든 것을 견디어 내고 이겨낼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러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남편 집을 나가기 전, 아니 그 후에도 자신의 사업이 망하고 우리의 결혼생활이 무너진 것은 모두 내 탓이라고 말 왔다.

내가 리베이트를 주지 않아 사업이 망했고 자신을 내쫓았으니 나와 지니 역시 집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처갓집으로 들어가 살라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내 나이 50이 넘어 부모님을 부양해도 부족할 판에 아픈 몸으로 거기에다 아픈 자식을 데리고 친정살이를 하라는 건 내게 죽으라는 말보다 더 가혹한 얘기다. 어째서 단 한 번도 진심으로 문제에 부딪혀 보려 하지 않는지 답답한 마음뿐이다. 

올여름 유례없는 장마와 혹서에 단전, 단수를 예고받고 놀라고 기가 막힌 마음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급한 불을 끄러 다니는 나를 모르쇠로 일관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이 가장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외면한다고 끝이 아니라는 걸 정녕 알지 못하는 걸까? 가장이라면 모름지기 갈등이 생겼더라도 시간이 지난 후 먼저 손을 내밀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게 맞지만 이 남자는 애초에 그른 인간이다.

집을 나간 후 10개월 동안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연락조차 제대로 받지 않는다.

이혼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불행을 이겨낼 의지를 품었다고 해서 당장 내 모든 순간이 행복으로 반짝이며 희망이 넘치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을 만큼 삶이 쉽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브런치 북이 내게 불행했던 사건과 순간들이 인생을 사는 중에 꼭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일깨워 주었다. 망쳐버린 지난 10년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며 앞으로 다가 올 10년을 기대하며 그린다.




To be continued...



이전 17화 관리비 연체로 단전, 단수를 통보받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