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나루 Aug 30. 2024

나는 이 결혼의 생존자다

나 자신을 구하고 있다

삶을 살아가며 가장 이루기 어려웠던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난 아마도 평범하고 무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세상 어떤 것보다 어려운 것이 바로 평범하고 무난하게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사는 이란 걸 깨닫기 위해 난 오랜 시간 동안 고통받고 상처받았던 것이다.




1994년 10월 6일.

30년 전, 2년 동안 사귀고 6개월의 약혼 기간을 거친 나와 남편이 마침내 결혼식을 올렸던 날이다. 


해리성 기억상실로 많은 기억들을 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던 날의 기쁨과 행복했던 마음까지 모두 잊은 것은 아니다. 예쁘게 사랑하며 알콩달콩 잘 살고 싶었다.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남편 혼자 고생시키지 않고 함께 맞벌이를 했고 야무지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살림과 육아에 진심이었다. 감사하게도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으신 친정 부모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셔서 우리는 시작부터 순조로웠다.


30년 가까이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의견을 맞춰가는 과정이 쉽진 않았지만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 서로 노력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챙겨야 할 것들과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자 남편은 이내 바깥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문제가 생겨 다툼이 생기고 의견 조율을 한 후에, 남편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들이 비일비재 해지기 시작했다.


다툼이 있을 때마다 남편은 장난처럼 미안해~애 연발했고 나는 마음이 상했다 다시 용서해 주기를 반복했다. 내가 풀어주지 않으면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입을 굳게 닫았다. 그리고 결국 끝에는 모두 남편 뜻대로 하고 말았다. 내가 마음이 약하다는 것과 아이 앞에서 싸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남편은 너무 잘 알았다.

그런 일들을 30년 동안 반복하고 되풀이하며 살았다. 실상은 달랐지만 주변 사람들, 심지어 가까이 사는 가족들 조차 내가  결혼의 주도권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일탈과 고집, 무책임과 무관심 고쳐보려 노력했고 그 노력이 빛을 발하길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참고 기다리다 보면 남편도 언젠간 내 마음을 알아주는 날이 올 거라 생각했다. 남편은 나의 그 기대와 배려가, 기다림과 용서가 무한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오랜 시간 동안 참고 인내하며 살았던 이유는 내가 남편보다 더 나은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또, 더 못난 사람이었기 때문도 아니다.

난 그저 우리 가정과 아이를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 지킨 가족과 평범하고 무난한 생을 살아가고 싶었다. 대단한 부자가 되길 바라지 않았고 크게 성공하길 바라지도 않았다.

내가 생각한 미래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남편은 으례껏 그랬듯 고집을 부리기 시작해 사업을 시작했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돈뿐만이 아니라 다른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 사랑과 연민... 기타 등등)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 모든 일들을 겪으며 내게 두 가지의 불치병이 생기고 그 두 가지 병을 포함한 이십여 가지의 병을 앓으며 난 빠르게 나를 잃어갔다. 지난 10년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엄마인 나를 지키려 발버둥 쳤던 딸의 처절하고도 치열한 간병이 없었다면 난 진작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남편이 집을 나간 지 10개월이 지났다.

그간 집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남편은 어느 것 하나도 알은체 하지 않고 있다. 관계 개선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내가 시도하는 일체의 연락도 받지 않는다. 남편이야말로 이제야 해방되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픈 아내와 딸을 저버리고, 30년 동안 사는 내내 도움을 주었던 처갓의 감사함을 잊고 정녕 거두는 게 아닌 검은 머리 짐승이 되고 말려는 걸까?


그나마 다행인 건 1년 가까이 남아 있던 내 개인회생이 잘 마무리되어 면책 결정이 났. 게다가 행정복지센터와 보건소를 통해 나와 딸 지니의 희귀 난치 병에 대한 치료비 일지원받을 수 있 되었다.

연체된 관리비는 아직 다 해결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지만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 그리고 심한 더위가 물러가면 지금 집을 내놓고 지니와 콩이, 리아와 나까지 우리 넷이 오붓하게 지낼 작은 평수의 집을 알아보려 하고 있다. 마땅한 수입이 크게 없는 지금 지출을 줄이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는 걸 알고 있다.


손뼉을 칠 때 한쪽 손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우리의 결혼 생활이 파탄지경에 이른 걸 무조건 남편의 탓으로만 돌릴 생각은 없다. 다만, 남편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려 마음먹었을 때 남들이 사는 것처럼 살면 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 대신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의무에 대해 조금만 더 생각하고 가정과 가족에게 충실했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이 조금은 달라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 브런치 북을 시작할 때 남편과 이혼을 결정 지을지, 아니면 더 오랜 시간 별거를 한 후 다른 노력을 게 될지 알바랐다. 10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남편과 별거를 하면서 남편에 대한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나는 더 이상 남편과 함께하고 싶지 않다.

내가 다시 남편을 받아들인다면 난 영원히 이 결혼의 피해자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난 이 결혼의 생존자이고 싶다.

20년 동안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나를 낮추고 나 자신을 갈아 넣으며 살아왔고 그 후 10년간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었다. 그리고 아마도 죽는 날까지 난 병의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내 의지로 벗어날 수 있는 이 순간에 끔찍하고 잔인한 결혼의 굴레를 벗어나야겠다 마음먹었다. 이제 내게 가족은 오직 딸 지니뿐이다.

복잡한 일들이 정리되는 대로 남편과 이혼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나는 나 자신을 구하고 다.

어릴 적부터 난 세 남매 중에 둘째로 태어나 언제나 나 자신보다 엄마를 먼저 생각하고 오빠는 맏이라서, 동생은 막내라고 그저 참고 또 참으며 살았다. 그리고 맹세코 가족들이 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을 외면해 본 적 없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난 나 스스로를 먼저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결혼 후에도 자신이 우선인 남편을 배려하며 친정 가족들을 챙기며 그것이 내 행복이고 기쁨이라 여기며 살았다.

온전히 나 자신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 스스로 무엇이든 해봤던 일이 있었는지 단 한 가지도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병 걸린 이후로 단 하루도 마음 편한 적이 없었다. 내 병이 불효라 말하는 부모님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남편을 통해 난 죄인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며 나를 돌아볼 수 있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글을 쓰며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 나는 나를 구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결혼의 생존자이다.










이전 18화 내게 생긴 불행을 떠들면 안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