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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Aug 16. 2024

관리비 연체로 단전, 단수를 통보받았다

긴급 생계 지원금 신청

남편이 집을 나가 버린 후 돈을 전혀 보내주지 않은 건 아니다. 그랬다면 사람도 아지. 하지만 그 돈이 지니와 지내기에 충분한 것이 묻는다면 단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대출을 지니의 명의로 받았다. 내 명의로 처음 시작했던 사업을 말아먹고 나를 개인 회생 시켰던 남편은 두 번째 사업까지 어려워지며 지니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니는 불평 한번 없이 아픈 엄마와 힘들어하는(?) 아빠를 도우려 물심양면으로 애를 썼다. 남편이 집을 나가 버린 후 지니는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있던 카드와 대출등으로 꼼작 없이 많은 빚을 떠안게 되었다. 게다가 집 대출금과 통신비, 관리비까지 연체되 우린 사면초가에 빠지고 말았다.


그동안 조금이나마 모아두었던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남편이 집을 나가고 처음 모든 것들이 제대로 윤곽을 드러냈을 때 지니는 살고자 하는 마음을 내팽개치고 내게 말했다.

마, 나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아. 죽고 싶어.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런 일이 계속 생기는 거야? 엄마가 지난 10년  폐인이 될 만큼 아파서 내가 간병에만 매달려야 했던 걸로도 부족한가? 실명이 되고 전신 마비가 되는 그런 불치을 나까지 아프 된걸로도 모자란가? 난 아직 제대로 사회생활을 시작도 못했는데 빚만 넘치고, 심지어 아빠는 아픈 나하고 엄마를 버렸어. 이렇게 미치도록 스트레스 받으면 어차피 뇌에 병변이 잔뜩 생기고 산송장이나 마찬가지로 될 덴데... 살아서 뭐 해? 엄마. 나 이대로 못 살 것 같아. 죽고 싶어!!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모르고 흔들리던 딸은 다행히 마음을 추스르고 신용회복 위원회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일정 부분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딸의 불안한 모습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딸이 어떤 길을 가든지 나는 그 길을 함께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 어려움이 딸의 실수나 잘못이 아닌 나와 남편의 잘못이라는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이 시간들을 속죄하고 보상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려 애쓰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도 남편은 자신의 개인회생만을 신경 썼다. 개인회생 신청한다고 해서 바로 개시되는 것이 아니다. 회생 신청 자체가 통과되지 않을 수도 있고 통과된다 하더라도 개시 결정 공고가 나기까지는 짧게는 1년 에서 1년 6개월의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코로나 이후에 자영업을 하시던 분들이나 우리처럼 개인 사업을 하던 사람들이 회생 신청을 많이 하게 되면서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들어 알고 있다.


남편은 어떻게든 지금의 사업체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듯 보다. 지금껏 부실하나마 사업체를 운영 중에 있고 그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아직도 처음 사업체의 부도 때문에 개인 회생을 끝마치지 못한 내 이름으로 다시 새 사업자 등록을 시도하려 적이 있다. 

내게 했던 말 같지도 않았던 변명으로 그래야만 우리에게 얼마간의 돈이라도 줄 수 있기 때문이라 지만 그건 허울 좋은 사탕발림일 뿐이었다. 사업체를 유지하려 했던 이유는 자신의 회생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 보려는 목적뿐이는 걸 고 있다.

남편은 자신이 벌어오는 돈은 다 자기 돈 이라며 생색을 내기 일쑤였고 집을 나가지 몇 달이 지난 후에야 톡으로 내게 얘기했다. 자신이 주는 돈에 감사하며 살라고. 유세도 그런 유세가 없었다.




남편이 집을 나간 이후로 지니의 재정상태 망이 되고 신용회복 위원회의 도움으로 카드와 일부의 대출을 시간을 두고 갚을 수 있게 됐지만 가장 급했던 건 통신비와 관리비의 연체였다.


이미 바닥을 찍어버린 지니의 신용 점수는 둘째 치고라도 하루에 두세 번이 넘도록 독촉 전화를 하며 차압을 예고하던 통신사와 단전, 단수를 통보하는 관리소와 한의 독촉이 불같았다.

돈이 부족해 그 독촉을 받는 마음이 지옥이었다. 하루도, 한 시도 마음이 편한 순간이 없었다. 나도 나였지만 나와 남편의 잘못으로 고통받는 지니를 바라보는 일이 내겐 더 괴로운 일이었다.

어쩌다 내 인생이 이렇게 까지 곤두박질쳤을까!

프리랜서로 일하던 지니가 정규직을 제안받고 취직을 한 덕분에 조금씩이나마 갚아나가고 있었지만 두 대의 휴대폰 요금과 이미 조금씩 밀려있던 관리비의 체납을 완전히 해결할 순 없었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밖에 깨어 있지 못하고 그나마도 통증 없이 견디기 힘든 내 병든 몸이 지금처럼 답답하 원망스럽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집 밖으로 나가 하다못해 음식점 서빙을 하던, 파출부를 하던, 편의점 알바를 하던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너무 잘 알면서도 당장이라도 일자리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공포에 에 들기 어려웠고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지니에게는 엄마만 믿으라고 큰 소리를 쳐 놓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걸 찾으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보지만 하루에 네다섯 시간도 일어나 있기 힘든 중증 질환자가 숨이나 똑바로 쉬고 있으면 다행이다. 하....

내가 살아있는 게 오히려 민폐 같았다. 

아픈 나만 없으면 지니 혼자 훨씬 수월하게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마저 품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우선 당장 불치병 환자 둘이 어려움을 타개하고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무지막지한 장마와 더위에 맥을 못 추고 통증에 시달리는 나를 살려야 했다. 전화라곤 휴대폰 밖에 없는데 통신비를 못 내면 위급할 때 도움을 구할 수조차 없어진다.

유례가 없는 이 더위에 절대 더위에 노출되면 안 되는 병을 가진 지니를 지켜야 했다. 단전이 된다면 냉장고 한대만 간신히 돌릴 수 있다 하고 선풍기, 에어컨을 쓸 수 없어 지니의 뇌는 열기에 녹아버리고 말 것이었다. 단수가 되면 마음대로 씻을 수 조차 없어져 버릴 것이었다.

미친 듯이 방법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뒤지고 헤매고 찾다가 발견한 것이 보건 복지부에서 주관하는 긴급복지생계지원금 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도움이고 필요였다. 예전의 나라면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차라리 굶어 죽는 것을 선택하겠다고 했을지 모른다. 아니, 알량한 자존심에 반드시 그러고 말았겠지만 지금의 난 자식을 지켜야 하는 후안무치한, 그리고 절실하다 못해 절박한 엄마 일뿐이다.

필요한 서류를 알아보고 준비해 당장 행정복지 센터로 달려갔다. 보완해야 할 서류를 추가로 제출하고 우리를 어려움의 순간에서 잠시 탈출시킬 열쇠가 될 지원금을 기다리고 있다.


비록 남편은 우릴 버렸지만 지니와 나,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 스텝이 무엇이 될지 두려움과 걱정된 마음속에서도 우리의 미래를 기대하고 준비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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