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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Mar 06. 2024

CRPS환자의 돌발통 후 취침난망(難望)기

환절기를 겪는 만성 질환자의 일상

어느덧 3월. 어김없이 봄은 찾아오고 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이름 붙여진 병명 외에도 이곳저곳 아픈 곳이 많은 만성질환자들의 하루는 그리 화창하지 만은 않을 거라 걱정이다.

한 순간도 멈춘 적 없는 통증에 차마 비명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마르고 갈라져 터진 입술을 앙 다물어 피 비린내 나는 고통을 마른침과 함께 애써 삼키지는 않을지. 




2~3일 간격으로 비가 오가고 매서웠던 바람에 섞여 산뜻하다 못해 코끝을 간지럽히는 훈풍이 묻어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미루어 짐작컨대) CRPS의 통증으로 끔찍한 돌발통만을 떠올리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돌발통이 일어나지 않는 순간에도 몸은 항상 심한 몸살에 걸려 있는 것 마냥 근육 한 곳, 피부 한 조각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 게다가 난 베체트까지 앓고 있어 대관절이라고 명칭 된 곳 하나하나가 다 붓고 뻑뻑해 잠시만 움직이려 해도 이를 악물고 비명과 신음을 삼켜야 한다.


비가 예보되어 있는 을 앞두고 CRPS로 망가진 오른쪽 어깨 위의 뼈가 휴대폰의 진동처럼 울려대기 시작한다. 큰일 났다. 빨리 옥시 코돈을 먹지 않으면 한 번 시작된 통증은 한 시간이 될지 두 시간이 될지, 어쩌면 하루 온종일이 될지  모르는 시간 동안 나를 죽고 싶을 만큼의 극심한 고통으로 몰아가 내던져 버리게 될 텐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통증은 마른논에 불을 놓은 것 마냥  전체를 타고 팔꿈치를 지나 손톱 끝까지, 그리고 쇄골과 어깨뼈를 잇는 견봉을 타고 넘어 어깨뼈의 끝을 말하는 견갑의 끝까지, 등허리를 타고 빠르게 번져 나간다. 온몸이 극심한 통증으로, 뼈가 울리고 부서지며 근육이 터져 나가고 피부는 갈가리 찢겨 나가 불이 붙은 듯 활활 타오른다.

얼굴은 급하게 피가 식은 듯 하얗다 못해 노랗게 질려가고 마약 진통제와 여러 가지 독한 약들의 부작용으로 썩고 삭은, 아직도 제대로 치료 못하고 남은 이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대를 급하게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팔의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발목이 부러져 CRPS가 됐던 왼쪽 다리의 통증도 어느덧 엉덩이를 타고 올라와 허리를 비틀게 만들고 있다. 눈에선 아파서 흘리는 울음이 아니라 조건반사처럼 뜨거운 물이 차올랐다 얼굴 위로 마구 쏟아지는 일이 반복되기 시작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돌발통의 고통에 옥시코돈을 얼마나 많이 삼켜야 했는지는 오직 나만 알 수 있겠지만 마약 진통제 복용으로 치솟은 신경 덕에 내가 듣기에도 '쩌렁쩌렁' 울리는 웅변의 큰 목소리가 돼버다. 하이레벨의 목소리에 덤으로 흔들리는 골은 난치 판정을 받은 혈관성 두통을 향해 마하의 속도로 내달린다.(아싸!! 여기서 두통이 항상 통증지수 8 이상으로 아픈 게 디폴트 값이라는 게 함정^^)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먹은 마약 진통제의 후유증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편하게 쉬어지지 않는다. 날뛰는 신경을 견디다 못해 결국엔 자낙스 한알을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통증 시간이 길면 길수록 더 많은 땀을 흘리고 옷이 꿉꿉해 질만큼 젖어버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추슬려 움직일 수 있게 되면 샤워를 한다.

적당히 따뜻함을 머금은 너무 차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물로 샤워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항상 샤워를 하다 보면 따뜻함을 넘어 점점 뜨거워지도록 물을 틀어 대고 서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통증을 느낄 때 힘을 주느라 뭉쳐진 근육을 풀고 싶은 마음에, 잠시의 선뜻함도 견디지 못하는 아픈 몸에 뜨거운 물로 하는 샤워는 내가 내게 주는 선물과도 같다.

그런데 잠시의 즐거움을 위해 내가 간과한 것 한 가지.

CRPS의 합병증으로 생긴 자율 신경 실조증(자율 신경 기능 이상) 때문 그렇게 내 입맛에 맞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면 닦아낼수록 땀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한다. 옷을 덜 입으면 입을수록 땀은 더 흐르고 발 밑이 아득해지도록 어지러워진다. 이러다 기절하기를...  십 수 번 빼고 백번? 쯤 될 거다.

이럴 땐 최대한 옷을 껴입고 난방은 24'C(올 겨우내 저희 집 난방 온도였어요. 조금 더 추우면 히터 잠깐씩 켜고요. 아파트 난방이 따뜻했어요) 따뜻하게 하고 이불을 턱 끝까지 당겨 덮고 양말까지 신고 얼굴에만 서큘레이터로 약하게 바람이 오게 하면 땀도 식고 어지러운 증상도 가라앉는다.




하지만 그런 날은 더더욱 잠이 들기 어렵다.

9알이나 되는(때로는 9알이 넘는) 수면제를 먹지 못하는 날은 연히 부엉이 마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온 밤과 낮을 지새워야 한다. 그나마 반드시 약이라도 먹어야 낮에라도 잠시 짧은 오수에 들 수 있다. 수면제를 오래도록 안 먹으면 혹시 짙은 피로감에라도 잠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시도했다가 두 번째로 하나님 만날 뻔했다.

통증이 심한 날에 이런저런 약들을 먹고 혹사한 몸과 마음을 침대에 부려 놨을 때 잠을 잘 수 없다는 사실이 일상에서 겪는 통증만큼 고통스럽다면 어느 누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잠을 자는 순간에도 고통을 잊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자는 순간에도 앓는 소리와 신음 소리를 내어 딸과 내 곁을 내내 지키는 강아지 콩이의 큰 걱정을 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수면제를 먹어 램수면에 드는 짧은 시간 동안엔 잠시라도 고통을 내려놓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내겐 무엇보다 그 시간이 귀하고 소중하다.


어느덧 오늘도 새벽 4시를 넘어 아침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밤이 내게서 달아나고 있다.

잠들고 싶다.

되도록 빨리... 되도록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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