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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Apr 19. 2024

남편을 쫓아내던 날

남편에게 우리가 가족이었을까?

쿵쿵 쾅! 퍽퍽! 쿵 쾅쾅! 퍽 쾅 쿵! 쿵 퍽!!


 열어! ! 문 열라고!! 문 부숴 버리기 전에 빨리 열라고 ㅂㄴ아!! 내가 곱게 물러 날 줄 알아? 다 죽여 버리고 끝장을 낼 테니까 문 열라고. ㅆㅂ. 문 열어!!!

벌써 20분이 넘어간다. 남편은 현관문에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대며 온 아파트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진작에 전화를 한 경찰은 아직 출동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태어나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생뚱맞은 폭력에 노출된 강아지들은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몸을 붙인 채 사시나무 떨듯 떨어대고 있다.

곁에서 나를 지켜보던 딸이 내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엄마! 지금이 아니면 내일, 내일이 아니면 모레, 모레가 아니면... 어쨌든 젠가는 일어났어야 할 일이야. 마가 참고 견디는 걸 더 이상은 볼 수 없었어. 이대로 계속 두고 보다가 엄마를 다시 잃을 순 없어.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아. 아! 그런데 경찰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딸도 목소리도 역시 가늘게 떨고 있다. 목소리뿐 아니다. 손과 몸, 떨지 않는 곳이 없다. 조금 전에 나와 통화를 하던 남편이 수화기 바깥으로 들릴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하던 말을 듣다가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며 집의 비밀번호를 바꿔 버렸던 패기는 그 사이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나 보다.

안쓰러운 내 새끼... 네게 결국 이런 꼴을 보이고야 마는구나.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격랑의 30년이었다.

내게 있어 결혼은 쓸쓸하고 고단한 세월이었다.

남편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속내를 속 시원히 드러내 보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차갑고 이기적 인간이다.

연애 기간 내내 어떻게 그걸 감추고 지냈는지 진정 의아할 따름다.


남편에게 진심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진심이 담겨 있는 약속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항상 궁금했다. 그저 그 순간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남발하는 약속들이 너무 많았고 그로 인해 지켜지지 않는 약속도 역시 너무 많았다. 

그 모든 것들이 그를 향한 불신을 키우게 만들었고 점점 그와의 간극을 만들게 했다.

처음 그가 외도를 했을 때에만 해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마음이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갈수록 뼈에 사무치는 상처가 됐던 것은 그의 그런 태도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남편과 헤어질 생각 따윈 눈곱만치도 없었다. 내가 가정을 이루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두 가지는 아이에게 행복한 부의 모습을 보이겠다는 다짐과 설령 그것이 실패할지라도 부모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딸이 어릴 때 남편이 외도를 , 30년을 함께 살아오며 생겼던 수많은 일들을 홀로 감내하며 뎠지만, 내가 희귀 난치병에 걸려 더 이상 내 힘이나 의지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 내 모든 각오와 다짐은 그대로 절망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현실을 회피하기만 하며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방임하기만 하는 남편에게 실망을 넘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 떨치기 어려웠다. 내가 이혼을 입에 올린 이후로 남편은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이나 의지는 고사하고 우리 가정이 무너지는 이유를 내게 덤터기 씌우려 발악을 해댔다.

남편! 네게 나와 지니가 가족이기는 했니? 아니, 애초에 어머니와의 탯줄 끊고 나오긴 한 거니?




1년 9개월 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했었다. 이미 남편과 각방을 쓰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더 이상 남편을 견딜 수 없어 지금 당장 이혼을 못하겠다면 잠시 떨어져 지내보자는 얘기를 꺼내게 됐다. 마침 시아버지의 병세도 심상치 않아 자주 들여다볼 사람이 필요하기도 한때였다. 그날 꺼낸 이야기가 내 마지막 SOS  남편은 짐작이나 했을까? 마지막을 얘기하는 그때 남편이 내게 말했다.

여보, 당신은 그냥 그대로 있어. 내가 거기까지 갈게. 내가 달라지는 거 보면서 그 자리에 있기만 해. 이제 노력은 내가 할게. 정말 미안해. 진심으로 사과할게. 당신이 힘든 순간마다 나만 괜찮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내가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 당신이 같은 말을 몇십 번, 몇백 번 똑같이 하며 화를 내더라도 그때마다 내가 당신에게 최선을 다해 사과하고 바뀔게. 반드시 그렇게 할게. 

사과와 뉘우침에 능하지 못한 남편이 온몸을 떨며 최선을 다했다는 듯 내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잠시라도 떨어져 있을 곳을 구하겠다고 했다. 아주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인간을 조금이라도 다시 믿어준다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30년을 함께 살아온 정?을 생각해서라도 잠시의 시간을 내줘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순 있었다. 하지만 딸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이혼이 됐든, 별거가 됐든 이제 우리 둘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아무런 변화 없는 몇 주의 시간이 흘러갔다. 답답하기 그지없는 시간이었다. 매일 숨이 막히고 매일 공황이 생겼다. 시도 때도 없이 해리증상이 나타나 기억을 놓치고 나 자신을 잃으며 살았다.

남편이 숨 쉬는 소리만 들려도, 산책 한 번 시켜주지 않는 강아지들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만 들도, 입맛을 잃어 죽죽 빠져가는 몸무게에 휘둘리는 나를 보며 노심초사하는 지니의 성화에 억지로 밥을 한술 뜨다가도, 남편의 모습이 보이면 바로 숨이 차올라 물에 빠진 사람처럼 공기 중에서 익사할 것 같다. 숨이 가빠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손이 덜덜 떨리 눈앞이 어른 거렸다. 머리가 핑 돌며 깨질 듯 아파지고 땀이 오듯 쏟아졌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이혼만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고 그동안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앞으로 달라질 것을 약속하고 또 약속하는 남편을 절대 믿지도 또 그런 남편을 절대 용서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남편의 애원을 다시 생각하게 된 이유는 우리 부부 모두 하나뿐인 딸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늘 그랬듯 변함이 없었다.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변화는 둘째치고 살면서 생겼던 모든 문제의 발단과 과정, 결과까지 전부 내 탓을 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퇴근길에 통화를 하던 중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언제 나갈 거냐고 묻는 네게 남편은 전화기가 터질 것처럼 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며 

, 어쩌라고 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가 왜 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되도록 망친건 다  탓이잖아. 네가 제대로 못한 걸 왜 내 탓을 하는데? 네가 똑바로 했으면 되지. 나더러 더 이상 어쩌라고... 지ㄹ...

옆에서 함께 통화를 듣고 있던 지니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전화기를 뺏어서 끊어 버렸다. 그리곤 현관문 쪽으로 달려가 삐비비비 삑~ 소리를 내며 비밀번호를 바꾸기 시작했다.

엄마, 마음 졸이지 마. 저런 못된 말도 더 이상 듣지 마. 엄마 참을 만큼 참고  만큼 했어. 엄마를 병들게 만든 것도, 나를 병들게 만든 것도 아빠야. 아빠는 우리가 아빠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또, 아빠가 있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엔 이렇게 되고 만 거야. 엄마가 끝까지 기회를 줬는데도 아빤 그걸 모르네. 이렇게 어린 나도 보이고 아는데. 언젠간 후회하겠지만 그땐 아빠 자리가 없을 거야.

딸은 조용히 남편의 옷장 앞으로 가 당장 필요한 것들과 옷 몇 벌을 가방에 싸서 문 에 내놓았다.




그렇게 남편은 우리에겐 희생을 강요하며 자신은 반드시 누려 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이 스스로 눈앞에 직시하고 책임져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남편은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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