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음식을 만들 수 있다면 2(2020.10)
추석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는다. 백화점에서라면 10마리에 백만 원쯤 호가할 영광굴비를 시장에서는 절반 가격인 50만 원 정도에 살 수 있다. 그리고 20만 원에 20마리인 작은 굴비도 함께 장만한다. 참굴비는 보리굴비처럼 바짝 말린 것이 아니어서 2~3마리씩 나눠 냉동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큰 것은 구워 먹고, 작은 것은 찌개를 만들어 먹는다.
굴비는 구워 먹는 것이 가장 맛이 좋지만 생각보다 몸통이 도톰해서 굽는데 기술이 필요하다.
요즘 유행하는 '에어 프라이기'나 '오븐'같은 곳에 편하게 구우려 했다가는 퍽퍽한 식감으로 망치기 십상이다. 그리고 생선 굽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들러 굽기도 하는데 굴비 자체가 너무 두꺼워 제대로 익히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굴비는 씨알이 굵은 놈을 골라 (알배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번거롭더라도 그릴의 온도를 높여 여러 번 확인을 해가며 구워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익어 하얀 쌀밥 위에 굴비 한 점을 올리고 입안에 넣으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 순간이 되곤 한다.
그리고 작은 굴비는 집에 항상 준비되어 있는 고사리 말린 것과 함께 굴비 고사리 찌개를 한다.
고사리 말린 것은 생수에 하룻밤쯤 불려놓는다. 불리는 동안 한 두 번쯤 물을 갈아주면 고사리의 독기를 빼는데 아주 좋다.
조기가 아닌 굴비는 이미 간이 조금 되어 있기 때문에 지느러미와 비늘 같은 것들을 정리 해준후에 고춧가루, 마늘을 듬뿍(우리 집은 마늘을 항상 듬뿍 넣습니다) 넣고 조선간장과 꽃소금 조금으로 양념장을 만들어 놓는다.
밑바닥이 넓은 냄비에 고사리를 듬뿍 깔고 그 위에 작은 굴비 6마리 정도를 올린 뒤 양념장을 넣고 어슷 썬 파를 듬뿍 올린다. 그리고 소주를 종이컵 반 컵 정도 부은 후 고사리가 자박자박 잠기도록 쌀뜨물이나 생수를 붓고 바글바글 끓인다. 고사리와 굴비를 함께 먹으면 생선의 기름지고 구수한 맛과 고사리의 쌉쌀하고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맛을 낸다.
올해는(2020) 5년 만에 오징어가 풍어인 해이다.
오징어는 여러 가지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많이 있지만 다이어트 음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오징어로 볶음을 해서, 소면을 삶아 참기름을 살짝 소면에 묻혀 섞어 먹어도 훌륭한 반찬이나 술안주가 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오징어 하면 쌀쌀한 저녁 퇴근 후에 오징어 찌개가 가장 생각난다.
싱싱한 오징어를 준비해 내장을 제거하고 오징어 껍질은 제거하지 않는다. 껍질의 질긴 맛을 느낄 때도 있지만 껍질을 제거하지 않으면 오징어 찌개의 풍미가 훨씬 진하게 느껴진다.
내장을 제거한 오징어를 동그랗게 썰어 준비하고 한창 물이 많아지기 시작한 가을 무를 준비한다.
무를 나박 썰기로 썰어 조선간장을 한두 스푼 넣은 물에 먼저 넣어 맛을 들여도 좋고 간장과 고춧가루를 무와 함께 볶다가 생수를 붓고 끓여도 좋다. 오징어가 싱싱하면 따로 육수를 준비하지 않아도 좋다.
무가 한소끔 끓어오르면 고춧가루와 마늘, 양파 애호박 등을 넣고 팔팔 끓이다가 채소가 어느 정도 익으면 오징어를 넣고 오징어가 다 잠기지 않을 만큼 채수를 붓고 오징어가 질겨지지 않도록 후루룩 끓여낸다.
고춧가루와 조선간장으로 간을 하고 불을 끄기 전에 마지막 간은 꽃소금으로 마친다.
코끝이 아릿하도록 쌀쌀한 날 저녁에 가족들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뜨거우면서도 시원한 오징어 뭇국을 한 입 떠먹다 보면 그날의 피로가 모두 풀리는 듯했다.
다음은 또 어떤 음식으로 기억을 떠올려 볼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