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담긴 소박한 밥상

내가 다시 음식을 만들 수 있다면 3 (2020.10)

by 강나루

우리 집 김치찌개는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결혼 후에는 시댁과 친정 양쪽에서 김치를 가져다 먹었고, 직장을 그만둔 뒤에는 친정에서 김장을 할 때 수육용 고기를 사 가거나 새우젓 값이라도 보태며 김치를 가져왔다.

하지만 내가 많이 아파지고, 가족들이 내게서 등을 돌린 이후에는 김치를 사 먹게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맛이 일정하고 내 입맛에 맞는 김치를 고를 수 있어 좋았고, 생각해 보니 들어가는 비용도 훨씬 적었다.

모든 일엔 양면성이 있기 마련이다.

힘든 일을 겪으며 절대 나쁘기만 한 일도, 절대 좋기만 한 일도 없다는 걸 몸소 체득하고 있다.


아무튼, 우리 집 김치찌개는 좀 특이했는데 원래 친정에서 하던 방식이 아닌, 내가 내 맘대로 편리하게 금방 끓여 낼 수 있도록 찌개와 찜의 중간 방식으로 끓여 먹게 됐다.

커다란 냄비에 김치 두 포기쯤을 큼직하게 썰어 둘러 담고, 가운데 빈 공간에는 기름을 뺀 참치 두세 캔을 가득 채운다. 그 위에 작은 스팸 두 캔을 얇게 썰어 김치 위에 둘러 얹는다. 그리고 꼭 빠질 수 없는 팁 하나. 김치 국물 두 국자를 붓고 고춧가루를 약간 뿌린 뒤, 파를 듬성듬성 올린다.

냄비 뚜껑을 덮고 센 불에 15분, 약불에 40분 정도 은근하게 끓여주면 완성이다.

그러면 참치와 스팸에 있던 기름의 고소한 맛이 김치에 은근히 스며들고 김치의 시원하고 칼칼한 맛이 살아나 둘이 먹다 하나가 없어져도 모를 만큼 맛있고 특별한 김치찌개가 완성된다.


말로 설명하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내가 아픈 후 6년이 넘도록 음식을 만든 딸도 이 맛은 따라오지 못했다.

이렇게 만든 김치찌개는 뜨거울 때 먹어도 맛있지만, 냉장고에 넣었다가 차갑게 식힌 뒤 먹어야 진짜 맛을 알 수 있다.


먼저 윤기가 도는 햅쌀로 새 밥을 짓는다.

하얀 김이 오르는 쌀밥과 먹어도 상상할 수 없이 맛있지만, 우선 그 하얀 쌀밥을 냉면기에 가득 퍼 담는다.

그리고 노른자가 터지지 않고 흰자를 태우지 않게 sunny side up으로 계란을 익혀, 미리 퍼놓은 밥 위에 살짝 올려놓고(이때 절대로 노른자가 터지면 안 된다. 그리고 계란은 무조건 2개!), 여기에 간장과 통깨, 그리고 참기름을 넣고 잘 비벼준다. 그러면 익지 안 았던 노른자와 낭창낭창한 흰자가 뜨거운 밥과 어우러져 적당히 촉촉해진 데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까지 진동하는 간장 계란밥이 된다.

뜨거운 간장 계란밥에 차가운 김치찌개의 김치와 작은 참치 조각, 그리고 스팸 한 조각을 함께 올려 한입 크게 먹으면... 저절로 눈이 감기고 미간이 찌푸려지며, 입으로는 끊임없이 씹고 맛을 즐기며 절로 소리를 내게 된다.




난 코가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다.

아니, 코가 예민하다기보다 냄새에 예민하다고 말하는 편이 옳은 표현인 것 같다.

아프기 시작한 후부터 예민한 코가 원망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두통이 심해서 오심이 있을 때나 식욕이 없어 물 외에는 다른 걸 먹기 어려울 때 조금이라도 음식 냄새를 맡으면 바로 구토로 이어졌고 그날은 먹는 것을 일체 포기해야 만 한다.


심할 때에는 생수나 정수기 물도 냄새가 나서 마실수가 없는데 독한 약 때문에 항상 입안이 건조해 물을 많이 마셔야 하는 나는 한동안 차(tea)를 입에 달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건강했을 때는 이 예민한 코가 도움이 많이 됐었다. 고기를 굽거나 양념할 때 미묘한 냄새를 금세 알아차려 간을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불고기나 돼지고기 요리를 할 때도 크게 실패한 적은 없었다.

불고기를 할 때는 항상 쌈채소를 곁들였다. 상추, 깻잎, 고추, 마늘을 곁들이고, 집에 따라서는 된장이나 쌈장을 조금 얹어 먹었다. 여러 가지 채소와 함께 먹는 쌈밥은 언제나 맛있었고, 우리 가족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 주었다.


처음 불고기 양념을 배울 때는 요리책을 참고했다. 대부분 300g이나 600g 기준이었는데, 마트에서 고기를 사면 딱 맞게 떨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다 보니 간이 짜거나 싱거워 실패하는 날도 있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감이 생겼고, 나중에는 아예 고기를 1kg 정도씩 사서 한 번에 양념해 소분해 냉동해 두었다. 먹고 싶을 때 꺼내 해동해 쌈밥을 차리면 간편하면서도 만족스러웠다.

내가 좋아하던 음식 중 하나는 소불고기를 넣은 김치볶음밥이다.
전날 쌈밥을 먹고 남은 불고기를 신김치와 함께 볶으면 그 맛이 유독 좋았다. 불고기를 먼저 바짝 볶아 불맛을 내고, 잘게 썬 김치를 넣어 함께 볶으면 달큼함과 칼칼함이 어우러졌다.

마지막에 참기름을 두르고 한 번 더 덖은 뒤, 웍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먹다 보면 셋이 먹다가 둘이 죽어도 모를 맛이었다.


점점 더 예민해진 코는 냄새만으로도 얼추 간을 맞출 수 있게 됐고 부족한 간을 무엇으로 해야 하는지 알려 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진심인데 못 믿으시는 분들도 있으시려나요?)




내가 요리 솜씨가 뛰어나 우리 식구들에게 항상 맛있는 것을 해주었다거나 아니면, 끝내주는 상차림으로 매 번 깜짝 놀랄만한 밥상을 내놓거나 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너무 오랜 시간 투병을 하며 입맛을 잃어 가다 보니, 어느 날 문득 볼품없는 솜씨였더라도 내가 차렸던 소박한 밥상 한 번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아직도 혼자 힘으로 서서 라면 하나 끓이기조차 버거운 이 거지 같은 체력을 어떻게 키워 나가야 할지가 내게 주어진 숙제 같다.

지금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혼자서라도 내가 먹을 밥 한 끼쯤은 차려 먹을 수 있을 만큼 몸을 회복하는 것이다.

달려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자리를 떨치고 일어설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오늘도 나는, 아주 조금씩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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