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이 망가질 거라는 징조들

작은 거짓말들의 시작

by 강나루

연애를 시작하면서 남편은 나를 너무도 소중히 대해 줬다.

[유리 공주] 나를 바라볼 땐 항상 눈이 부신 듯, 세상에서 이렇게 소중한 건 처음 보는 것처럼, 내 말이 곧 모든 법이라도 된 듯, 혹여 깨지기라도 할 듯, 금이 가기라도 할 듯....

마치 내가 자신의 온 세상인 듯 최선을 다 했다.


자라오면서 오빠에겐 둘째인 내가 항상 양보해야 했고, 동생은 어리니까 무엇이든 내가 받아줘야 했다. 게다가 자존심이 강해 집에서 생겼던 일을 밖에선 입 뻥긋도 안 하셨던 엄마도 내가 조금 자란 후엔 나에게 이런저런 힘듦을 나누셨기 때문에 이렇듯 온전히 나만 바라보고 나만 사랑해 주는 남편에게 정신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편은 작고 마른 나를 보며 항상 얘기했다.

(그때 키가 161에 몸무게는 46kg이 나갔었어요. 그다지 마른 몸은 아니지만 통뼈에다 잔근육이 많아 실제로 보면 허리의 앞뒤가 너무 납작해서 은행 언니들이 항상 "너는 내장은 집에다 두고 다니나 보다"라며 놀리곤 했었습니다.ㅎㅎ)

"이렇게 약한 몸으로 집안일이나 할 수 있겠어?

결혼하면 집안일은 내가 다 할 테니까 너는 나한테 어디, 어디 치우라고 얘기만 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게 해 줄게"

그때 그 개소리가 얼마나 듬직하고 달콤하게 들리던지....




결혼을 하고 처음 신행을 갔을 때 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내 직장에 가깝게, 또 아이를 낳으면 시댁에서 봐줄 수 (형님네와 같이 사시며 형님네 애들을 봐주고 계셨습니다) 친정 가까이 집을 구하느라 무리를 하였으니 은행에서 직원들에게 나오는 무이자 대출 3천만 원을 받아 집값에 보태라는 것이었다.

너무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제가 마음대로 결정할 순 없고 어른들하고 상의하고 말씀드릴게요"

라고 말하며 남편을 쳐다보았더니 남편은 그냥 아무 말 없이 슬쩍 일어나 방에서 나가 버렸다.

남편만 이미 알고 있었던 얘기였다.

그런데 집을 얻고, 혼수가 들어가고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내게 일언반구 언질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나 기가 막히고 화가 났지만 어릴 적부터 어른들에겐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힌 도록 교육받고 자란 내가 거기다 어렵디 어려운 시어른에게 처음 식구가 됐다고 인사를 드리는 자리에선 단 한마디도 반대 의사를 얘기할 수 없었다.

거기에 남편까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니 결혼이고 뭐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눈 아래까지 찰랑찰랑 차오른 눈물을 어떻게든 흘러내리지 않게 막아야만 했다.


남편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내내 낯선 시댁에 날 혼자 두고 보이지 않던 남편은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돼서야 나타났다.

내가 "나중에 집에 가서 자세히 얘기해"라고 했더니 "뭘 얘기해. 더 할 얘기도 없어. 아버지가 말씀하신 게 다야" 이러고는 입을 닫아 버렸다.

가슴 깊은 저 아래쪽 중심에서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며 온몸의 세포가 분노로 차곡차곡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내 결혼생활이 녹록지 않겠다는 선명한 생각이 머리에 , 가슴에 깊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제가 누굽니까. 25년간 친정아버지의 불같은 성미에 단련된 완벽 주의자였답니다. 집에 가자마자 크게 싸웠고 그때 이 글 앞에 썼던 대로 남편이 제게 "입 다물어"를 시전 하는 사건이 있었죠. 그날부터 우리의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시 아버지는 내게 연타를 날리셨다.

"가능하면 매일매일 안부 전화하고 아무리 바빠도 밥을 꼭 해 먹어라.

밖에 음식 자주 먹으면 몸 상한다.

그리고 내가 가끔 불시에 가서 자고 오기도 할 건데 그때 라면 한 봉지라도 발견되면 불벼락 떨어질 줄 알아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때도 남편은 밥을 먹느라 정신이 없는 건지, 그냥 끼어들고 싶지 않은 건지 입은 밥 먹는데만 사용하고 있었고 듣다 못한 어머님이

"아이고, 새아가 체하겠어요. 고만 좀 하시고 어서 식사하세요"하고 중재에 나서 셨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그냥 밥만 먹고 있는 남편도 기가 막혔지만 똑같이 맞벌이하고 집값과 혼수까지 계산하자면 결혼비용도 더 낸 데다 자기 아들 반만 하게 생긴 작고 소중한 며느리에게 밥순이 노릇까지 다하라 하면 내가 당신 아들 밥해주려고 결혼을 한 건가?

나도 똑같이 초중교 과정을 거치고 대학을 나와 은행에 바로 취직해 쉴 틈 없이 공부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살았지만 어 정규 교육과정 중에 밥하고 반찬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집안 살림하는 것을 여자만 따로 교육을 시키는 것이 있었던가?

내가 붕어 대가리 3초 기억력이라 그것들을 몽땅 잊어버렸나?


그때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이건 사기 결혼입니다. 전 파혼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용기가 왜 내게 없었단 말인가!!!

통탄할 일이었다.



친정 부모님은 시가에서 미리 말씀하지 않은 것에 적잖이 언짢아하셨고 물론 대출을 받게 두지는 않으셨다. 친정아버지께서 마련해 주신 돈은 시댁으로 두말없이 건너가게 되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이 (아니지 잘못한 것이 있었지요.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것. 그것이 잘못이었지요.) 친정 부모님께 '죄송합니다'를 연발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후에 실제로 시댁에 매일 전화를 드려야 했고 시어머니는 내가 저녁 반찬으로 무슨 찌개나 국을 해서 먹었는지 항상 물어보셨다.

그러던 한 날은 내게

"너 그 찌개 해 먹는 거 맞니? 안 해 먹고 해 먹는다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나이도 어린애가 그 많은 음식을 할 줄 안다는 것도 미심쩍고 입 짧은 아범이 그걸 그냥 먹는다는 것도 이상하고..."

말문이 막혔다.

"어머니 그러시면 보름 후에 집들이할 테니까 형님네 식구들 다 데리고 저녁식사하러 오세요.

보시면 맘 편해지시겠죠?

그리고 전 거짓말을 제일 싫어하는데...

그날 꼭 오세요. 맛있는 거 해드릴게요."


내 결혼 날짜가 잡히고 몇 달 동안 토요일 저녁마다 친정엄마는 밑반찬 서너 가지, 찌개나 국 한 가지를 정해서 나에게 장부터 봐오라고 시셨고 모든 요리과정을 지켜보시며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시며 '레시피 북'을 함께 만들어 주셨다.

눈썰미가 있고 다행히 엄마 음식 솜씨를 닮은 데다 대학 전공이 '식품 영양학과'였던 나는 금세 몇 가지 음식을 손에 익혔고 그 '레시피 북'은 대를 이어 지금 나를 간병하고 있는 딸이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집들이를 하던 날, 친정 식구들까지 함께 불러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을 차려냈다.

친정엄마의 도움은 일절 받지 않았다.

동생의 심부름 정도의 도움만으로 상을 차리느라 엄청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그 이후엔 어머니의 말씀 중에 그 음식을 해 먹는 게 거짓말이 아니냐는 말은 쏙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 종종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와 함께가 아니라 혼자 불쑥 찾아오셔서 새로 음식을 만들어 식탁을 차려 식사 준비를 하게 하셨고 작은 방에서 하룻밤을 주무시곤 아침까지 새 밥을 지어 대접해 드리면 돌아가시는 일로 나를 진심으로 시험에 들게 하셨다. 그런 날은 난 꼭 지각을 했다.

남편은 이럴 때 자기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행동했다.

그냥 구경꾼이고 방관자였다.

평소에도 어쩌다 마지못해 도와주던 설거지도 그런 때는 내일이 아닌냥 모른 척했고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두고 커피를 내리고 과일을 깎고 하루 종일 손님과 얘기하느라 지쳐 입도 뻥긋할 기운도 없이 허리가 끊어져라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여보, 배 좀 더 깎아와"

같은 소리를 지껄여 대고 있었다.

마음 같으면 주먹을 힘껏 휘둘러 아래턱을 160°정도 돌려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쩌랴.


이런 일들은 수도 없이 일어났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비하면 사소한 '연습게임'같은 거다.

내가 너무 남편을 만만하게 생각했다.

사소하게 생각하고 넘겨버린 불길한 징조들이 앞으로 파란만장하게 내 인생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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