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사랑으로만 하는 게 아니더라

지금의 현명함이 그때도 있었더라면

by 강나루

남편과 처음 알게 된 건 일을 하는 거래처로서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그때 난 한 은행 지점의 외환계 업무를 맡고 있었고 남편은 우리 지점을 통해 수출 업무를 보는 거래처의 직원이었다.

그가 자주 은행 업무를 보러 오게 되면서 우린 안면을 익히게 되었고 어느 날 나에게 소개팅을 주선해 주겠다며 남편은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소개팅은 별로 시답잖은 이유로 성사되지 않았고 주선자였던 지금의 남편과 만남을 이어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




은행 창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를 선보고 가는 사람, 은행 일을 보러 오셨다가 선을 보지 않겠냐고 물어보는 어르신들, 중매쟁이를 통해 지점장이나 차장에게 선을 볼지 여부를 묻는 등의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물론 일반화는 아니다. 내가 은행을 다니던 2~30년 전쯤에는 그런 일도 있었다는 말이다.


내가 은행을 다닐 때만 해도 직업군으로 은행원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 때 이기도 했다.

업으로 삼기에 탄탄했고 화이트 칼라의 대표 직종이라는 오랜 인식이 박혀있어 남자 직원들은 어땠는지 몰라도 창구 앞에 나와 앉은 여직원들은 그런 식으로 소개를 받아 결혼까지 진행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 그때만 해도 내가 다녔던 은행에서만 청약 관련 예적금을 취급하며 아파트 접수를 받아 알뜰한 여직원들 중에 아파트 한두 채가 없는 주임 언니들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내가 다녔던 은행 여직원들의 인기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때의 난 크고 똥그란 눈에 넓고 톡 튀어나온, 시원한 이마를 가진 마르고 작은 또랑또랑해 보이는 여직원이었다.

오래전 은행의 창구는 검은색 마블 대리석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온라인 창구는 손님은 서서 일 처리를 하고 직원은 앉아서 일하는 구조였다. 안 그래도 높은 창구에 아무리 의자를 높이고 앉아도 항상 톡 튀어나온 넓은 이마가 대리석에 반사돼서 반짝거리고 똥글똥글한 큰 눈밖에 보이지 않아 일을 처리하고 가시는 손님마다 그런 내 모습을 보시고 꼭 한 마디씩 남기고 가시곤 했었다.

"아이고, 눈은 똥그랗게 뜨고 이마는 시원하게 생긴 아가씨가 일 처리도 시원시원하게 잘해주네. 고마워요."

넓은 이마 덕분이었는지, 똥그란 눈 덕분이었는지 날 기억해 주는 손님들은 늘어갔고 심심찮게 중매를 서겠다는 얘기가 들려왔었지만 난 일찍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아예 결혼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내가 결혼해 버리면 불같은 성미를 가진 아버지 때문에 항상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은 상태로 살고 있는 엄마를 버리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엄마 자존심에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고 나누지 못하고 어느 순간 세상에서 엄마가 없어져 버릴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항상 내 맘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애를 할 때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다.

게다가 남편은 연애를 하는 동안 작은 다툼이라도 생길라 치면 '네 말이 곧 법이야' 라며 무엇이든 내 뜻에 맞춰 주었다. 사랑이 많았어도 무섭고 엄한, 그리고 언제 터질지 몰라 시한폭탄 같은 아버지만을 보며 자란 나는 그런 남편에게 더욱 깊이 빠져 들었고 마침내는 그가 내 운명의 상대라고 여기게 됐다.

그이가 나에게 사랑을 얘기하고 내가 그 사랑을 믿고 받아들인 후엔 한치의 흔들림 없이 한결같은 믿음으로 남편을 사랑했다.

그 일이 내게 생기기 전 까지는.


내가 내 친정 가족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시댁에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열심을 다했다. 비록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한 결혼이었지만 내가 결혼할 무렵까지만 해도 같이 맞벌이를 하더라도 여자가 당연히 육아도, 살림도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시절이었고 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그래야 행복이 내 곁에 오래오래 머물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내가 온 마음을 바쳐 사랑한 내 남자가

내 아이의 아빠가 나를 배신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일로 나는 한동안 사랑도 사람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안 그래도 사람들을 가려 사귀던 내가 더더욱 사람들을 믿는 것이 힘들어졌고 남편과의 사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힘들어졌다.


난 얼굴에 가면을 쓰고 살기 시작했다.

그 일로 인해 심한 우울증이 생겼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남편과의 일로 안으로는 곪아 들고 밖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는 쇼윈도 부부처럼 살아가게 되었다.

밖으로는 웃었지만 안에서는 매일 울고 표정을 잃어버리며 살아가는 나날들이 시작.

이혼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그때는 나나 딸아이보다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고 그저 나하나 만, 나 한 사람만 참고 살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모든 것을 덮고 살기로 마음먹었었다.

내가 나 스스로 내 자존감을 갉아먹게 된 이유였다.




이 일을 겪고 나서야 남편이 나하고 결혼한 후 첫 부부싸움을 했을 때 한참 큰소리를 내며 말다툼을 하던 중에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참 얘기를 주고받던 와중에 남편은 나에게

'이제 그만 입 좀 다물어!'라고 소리쳤다.

다툼 끝에 방으로 들어갔던 나는 다시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와 남편에게 말했다.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나한테 입 다물라고 얘기했다간 죽을 때까지 내 목소리 못 들을 줄 알아."

그렇게 얘기하 방으로 다시 들어 소리 죽여 눈물을 쏟아냈다.

남편과 처음 언성을 높여 말싸움을 했던 날이었지만 지고 살긴 싫다는 마음을 확고히 내 비쳤던 날이기도 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2년을 연애하고 7개월의 약혼기간을 거쳐 결혼한 내가 알던 남자는 더 이상 내 옆에 함께 있지 않다는 걸 그 순간 사무치게 깨달았다.


결혼은 사랑으로만 하는 게 아니란 걸 그땐 왜 몰랐을까?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의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는 나이까지 기다리는 여유가 왜 내겐 없었을까?


본가에서 살며 받던 모든 스트레스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결혼뿐이었던 그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었다는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랄 총량의 법칙을 충실히 지키느라 갖은 말썽과 사고로 부모님을 괴롭히고 있던 오빠 덕에 나는 크게 주목을 끌지 않고 결혼을 할 수 있었다.

모든 일의 짜임들과 그때의 시간 흐름들이 나를 남편과의 결혼으로 이끌었었다.

내가 직업이 탄탄했고 또 주변의 여러 경우를 보아온 바로 항상 늦게 결혼해야겠다 다짐했었는데.


결혼은 사랑한다는 마음 하나 만으로는 안된다는 사실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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