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잃어버리기 전에... 흩어져 사라지기 전에...

by 영휘

어린 시절의 우리 집은 작고 허름했습니다. 겨울이면 방안에 난로를 설치해야만 생활이 가능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위험한 물건을 방안에 들여놓고 살았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 난로가 없으면 방안 공기가 너무 차가웠습니다. 진한 입김은 기본이고 잠든 새벽 목이 마르면 마시려 준비해 둔 물이 얼어붙을 정도였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난로는 생명의 불씨였습니다.


둥근 바나나 우유병 모양의 황토색 철제 난로 위에는 노란 양은 주전자가 얹어져 있었습니다. 주전자 안에는 보리를 넣어 물을 끓이고 있습니다. 팔팔 끓고 있는 주전자 뚜껑이 딸깍딸깍 소리를 냅니다. 뿜어 나오는 증기에 박자를 맞춰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구수한 보리차 향이 온 집안으로 퍼집니다.


따뜻한 난로 옆에는 배를 깔고 숙제를 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 첫 돌 선물인 내 담요를 덮고 누워 오래된 고물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만화를 보는 막내 동생도 있습니다. 한 겨울 허름한 우리 집은 그래도 따뜻합니다.


난로는 우리에게 많은 먹거리를 주었습니다. 라면을 끓이고, 고구마를 구워 쉰 김치와 함께 먹으면 맵, 단, 짠, 조화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뜨끈한 보리차 한 잔으로 답답해진 목도 축여줍니다.


불량 식품 어포와 쫀드기도 생각납니다. 어린 우리들에게 그 맛은 정신이 맑아질 정도의 충격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느낌은 아니겠지요? 그 난로는 무엇이든 굽고 끓일 수 있었습니다. 허름하고 작은 우리 집은 재미있었고 따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우리 남매는 성장해 차례로 그 집을 떠났습니다. 그 오랫동안 홀로 집을 지키던 우리 엄마. 허름했던 집은 여러 번의 집수리를 하면서 많이 변했습니다. 단정해지고 기름보일러가 설치되고 방은 분리되어 문이 달렸습니다.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집을 찾은 우리들은 분리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습니다. 문을 닫으니 또다시 멀어집니다. 세월의 간격만큼 우리들의 거리도 멀어집니다. 그땐 알지 못했습니다. 멀어진 거리를 좁히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힘들다는 것을...


또다시 세월은 흐르고 집은 낡아 갑니다. 벽엔 금이 가고 바닥은 깨지고 틈이 생겼습니다. 천정과 벽은 색이 바래가고 담도 구석부터 넘어져 갔습니다.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어느새 엄마의 모습도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허름했던 우리 집은 무너지고 그 자리엔 소방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생겼습니다.


엄마는 지금 시내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작은 아파트를 구매할 때 엄마는 우리 남매들과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릴 때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 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슬퍼진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지금도 함께 모여사는 상상을 합니다. 우리를 부족한 환경에서 키워낸 것 같아 항상 미안함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렵고 부족했지만, 우리는 추억이 많습니다. 엄마가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길이 난 그 자리를 찾아가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집은 사라졌지만 집이 있던 자리를 확인할 수 있는 증표가 남아 있습니다. 초등학교 식목일에 학교에서 받아 심었던 대추나무, 세 그루 중 하나가 가로수로 남아 있습니다. 대추나무들이 자라면서 지붕을 망가뜨려 두 그루는 운명을 다했지만 여동생이 심은 한 그루가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를 반겨줍니다. 기특하고... 눈물이 나고... 그렇습니다.


여동생은 한국이 싫어 떠난 미국에서 군인이 되었고, 밝은 성격에 사람을 좋아하던 남동생은 서울로 상경해서 홀로 장사를 하고 있으며, 조금은 낯을 가리기도, 어떨 땐 말이 많기도 한 나는 외딴 동네에서 혼자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소수점으로 흩어져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작은 아파트에 있습니다. 어느새 70세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엄마의 작은 소망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마당에는 한아름 가득한 대추나무가 있고, 작은 텃밭에는 네 식구 먹을 만큼 넉넉한 채소가 있는 텃밭도 있고, 저녁이 되면 밥상을 크게 차릴 수 있는 거실이 있고, 밥 짓는 냄새에 방문을 열고 밥상 앞으로 모여드는 우리 남매가 있는. 그 집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엄마의 환한 웃음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