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일
영원히 쉰다섯 살, 낭만 술꾼 우리 아빠
아빠는 늘 집에 있었다.
어릴 때는 늘 집에 있는 아빠가 좋았다.
매일 아빠와 함께 놀 수 있었으니까.
그때는 아빠가 무엇을 하든 좋았다.
집에서 매일 술을 마시는 것조차.
아빠의 소주를 두 병 사다 주면 나에게는
심부름 값으로 과자 한 봉지가 주어졌다.
그것이 참 좋았다.
아빠는 술이 취하면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나는 아빠의 노래가 좋았다.
기분이 좋아진 아빠는 나에게 용돈을
두둑하게 주었다. 그 시절에 천 원은 크다.
매일매일 천 원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는 아팠다.
그래도 매일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나는 과자 한 봉지를 손에 쥐었다.
아빠의 꿈은 내가 아니었을 것 같다.
과거에 꿈을 두고 온 사람은 안타깝다.
현실에서 도망가기 위해 낭만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술을 마시면 낭만을 노래하던 아빠.
내가 욕을 배우기 시작한 그때부터
아빠는 나에겐 그저 배짱이일 뿐이었다.
무책임하고 무능한 사람.
나에겐 더 이상 과자는 의미가 없었다.
내가 자라는 동안 여전히 아빠는 아팠다.
미움과 증오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동안
아빠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가족들과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었던 날
밥상에 피를 쏟아냈고 그렇게 집에서의
마지막 밤은 정신없이 지나고 있었다.
아빠와의 마지막 대화는 중환자실에서였다.
매주 토요일 정오에 면회를 갔는데
낭만 술꾼이 좋아하는 찹쌀떡 한 팩을
사들고 찾아가 두런두런 대화를 했었다.
너무나 맛있게 찹쌀떡을 먹었는데...
다음 주에 또 사 오겠노라 약속을 남기고
돌아 나오는 길, 반 시체들 사이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던 아빠는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눈물이 났으며.. 그것이 생전 마지막 웃는
모습이 될 줄은 미처 모른 채...
일주일 후 내가 사 온 찹쌀떡은 먹지 못했다.
아빠의 상태는 일주일 사이에 급격하게 나빠졌다.
병원에서는 몇 시간을 버티지 못할 거라 했고
우리는 그렇게 아무런 대책 없이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숨이 넘어갔다.
나의 아빠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가을의 화려한 단풍이 물들어 있던 그 길을 지나던 순간
엄마의 무릎을 베고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영원히 낭만을 노래하고 있기 바랍니다.
못다 피운 꽃도 피워 보시길 바랍니다.
아빠, 미워해서 너무 미안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