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눈동자가 있다.
시골 부모님 댁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다. 흔히 시골똥개라고 지칭하는 종류다. 무슨 종인지도 모르고 어느샌가 부모님이 키우고 계셨기에 어디서 난 강아지인 줄도 모른다. 다만 그 아이가 어릴 때부터 봐왔기에 적당히 3-4살 정도 된 것만 알고 있다. 작은 체구에 까만 긴 털을 가진 암컷이다. 시골개들이 그렇듯이 흙마당에다 쇠줄 하나 묶어두고 키우기에 항상 흙투성이인 아이였다. 털은 정리가 안 돼서 난잡하게 얽혀있고 길게 자란 앞머리가 눈을 거의 다 덮을 정도였다. 누가 품종을 물어보면 삽살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최근 몇 달 만에 녀석을 보았는데 눈에 띄게 미모가 남달라져 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강아지의 눈이 보이더라. 어머니께서 문구용 가위로 얼굴 근처의 긴 털들을 정리해주셨던 거다. 다른 데는 그대로다. 흙투성이인 몸통에, 발은 제 똥을 밟은 자국들이 있고, 낡아빠진 목줄을 차고 있는 건 똑같다. 바뀐 건 딱 하나뿐이었는데, 내 눈엔 아주 다른 강아지가 되어있다. 그동안 마주치지 못했던 그 녀석의 눈동자를 드디어 마주하게 되니 10년 만에 만난 친구를 보는 듯 새삼 낯설다.
녀석의 눈빛이 그렇게 반짝이는지 몰랐다. 새까만 얼굴에 유리구슬 마냥 동그란 눈. 내가 놀아줄 것이라는 걸 아는지 기대감에 찬 눈빛이 아주 넘쳐흐를 정도다. 내가 가까이 올 때마다 매번 이랬을 걸 생각하니 아쉽다는 마음이 일었다.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까지. 저 똘망한 눈빛을 진작에 보았더라면 눈길만 주고 발걸음을 멀리 옮겼던 횟수가 조금은 줄었을 텐데. 이렇게 순수한 눈망울을 그동안 못 보았다니! 눈빛 하나로 사람의 마음이 바뀔 수 있다는 게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난감하게도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에게서 그걸 알아버렸다.
말로 하지 않아도, 읽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움직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건 눈동자뿐일 거다. 예로부터 눈은 정(精)이 모인 곳이며, 신(神)이 생겨나는 곳이라는 말이 있다. 눈에 정신이 드러난다는 거다. 강아지 한 마리에서도 눈동자에서 반짝이는 의지를 볼 수 있는데, 다양한 감정과 정신활동이 있는 사람은 오죽할까. 눈동자를 본다는 게 이렇게나 중요하다. 앞으로도 녀석의 눈동자가 종종 생각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