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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Jul 25. 2024

가난과 외로움을 견디는 당의정,  당신의 이름

소설가의 산문 16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박준, 을 읽고


  병은 사실 완쾌라는 것이 없다. 감기만 해도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가 진료를 받거나 약국으로 달려가는 이유는 약을 얻기 위해서다. 약은 자주 콜록대던 기침과 줄줄 흐르던 콧물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완전히 회복되진 못하더라도 어지간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앞으로도 재차 감기로 목이 붓고 열이 나겠지만, 어쨌든 약이 있으니 조금 덜 두렵고 조금 쉽게 이겨낼 수 있다.


  시인은 가난하다. 그는 새 옷 한 벌 해 입지 못하고 한 동네 안에서 집을 옳기는, 옷보다 못이 더 많은 파주에서 이삿짐을 나른다. 짐을 나르던 집에서 책을 한 권 훔친 저녁, 한 주걱 더 먹은 밥이 얹혀 새벽까지 잠들지 못한다. (「옷보다 못이 많았다」)

 시인은 외롭다. 그가 번듯한 날들을 모르는 것처럼 냉장고 버튼을 강냉으로 돌릴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맥주나 음료수를 넣어두고 왜 차가워지지 않을까 하는 낯빛의 사람들과 여관에서 지내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와, 가기만 하고 안 오면 안 돼."라고 말하던 여자의 질긴 음성은 늘 그의 곁에 내근(內勤)하는 것이어서 낯선 방들에서도 금세 잠이 들고 매번 같은 꿈을 꿀 수도 있었다.(「나의 사인(死因)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 그러나 여자는 이제 없고, 겨울이 아니어도 그가 혼자 사는 집에는 밤이 이르게 온다. (「당신의 연음」)

  그래서 시인은 자주 아프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을 그는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유서도 못 쓴 그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꾀병」) 그는 매일 병을 얻었지만 이마가 더럽혀질 만큼 깊지는 않았다. 신열도 오래되면 적막이 되었다. 지는 해를 따라서 돌아가던 중에 문득 알게 되었다. 그녀가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녀도 나를 떠난 것이라는 것을. 그가 아파서 그녀가 아프지 않았다.(「용산 가는 길 – 청파동 1」)  

  그러나 시인은 살기로 한다. 지는 그 방 창문 옆에서 음지식물처럼 숨죽이고 있던 그의 일기들은 작은 창의 불빛으로도 잘 자랐지만 사실 그때부터 그의 사랑은 죄에 가까웠다. (「ㅡ」) 소리 없이 죽을 수는 있어도 소리 없이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저녁」)

  아픈 채로 살아가는 시인은 이제 자랑할 게 슬픔밖에 없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도, 폐가 아픈 일도,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지만, 좋지 않은 세상에서 그녀의 슬픔을 생각하는 일은 땅이 집을 잃고 사람이 땅을 잃는 것처럼 아득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슬픔을 흘리며 사는 일은 그에게 자랑이 된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가난하고 외롭다. 돈이 있고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그렇다. 슬픔의 콧물이 흐르고 외로움으로 신열이 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 하나의 이름이다. 아파서 죽을 것 같을 때, 영혼 깊숙이 내근하는 이름 하나 꺼내 며칠은 복용해야 한다. 가진 것 없는 우리에게 그 이름은 아득한 자랑이 된다. 당신의 이름은, 쓰디쓴 세상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당의정이다


***'짓다'의 뜻은 1. 재료를 들여 밥, 옷, 집 따위를 만들다 2.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약을 만들다 3. 시, 소설, 편지, 노래 가사 따위와 같은 글을 쓰다 이다. 시인은 3을, 나는 2의 의미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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