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독한 '장'의 자리

고라니 가족과 함께

by 이프로

몇 해 전, 갓 차장이 된 이후 현장소장으로 근무했을 때다. 내가 근무하는 현장사무실이 산골짜기 밑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침마다 싱그러운 풀냄새를 맡으며 사무실로 들어가면 축축한 사무실 바닥에서, 오래된 곰팡이 냄새가 났다. 그 곰팡이 냄새만큼이나 무거운 책임자의 자리에 앉아 사무실에 들어서면 저절로 얼굴이 굳어졌다. 나만 바라보던 90년대생 신입사원의 얼굴이 더욱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아침 시간 바쁘게 업무를 정리하다 문득 들려오는 새소리에 아~ 저 새소리를 차분히 들으며 커피 한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루고 미루다 어느 날 행동으로 옮겼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사무실 뒤쪽, 산 밑 배수로에 우두커니 서서 새들의 바쁜 움직임을 보고 듣고 있었다. 새소릴 들은 지 오래됐는데, 이제야 그들 얼굴을 본다.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꼭 날 닮았다. 뭐가 그리 바쁜지, 끝없이 움직인다.


새들을 보다가 문득 고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차장, 중간관리자. 지금은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장! 그러다 보니 나에게 답을 구하려는 사람이 많다. 말을 줄이고 조용히 일만 하고 싶은데, 찾아오는 이들 때문에 시간도 없고, 자꾸 말도 많아진다. 오해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선 정확히 의사전달을 해야 한다. 나를 찾는 이들은 모두 책임자로서의 의견을 들으러 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이 맞는지, 잘하고 있는 것인지, 실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조심스럽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제 갓 차장이다.


과장, 대리 시절엔 잘못해도 덮어줄 선배님이 계셨다. 실수해도 보듬어줄 누군가가. 이젠 홀로 굳건히 서 있어야 한다. 어리바리 후배 사원을 보듬어 주어야 한다. 나의 잘못을 지적도 하고, 의견 교환도 하고 그럼 좋으련만, 하얀 백지 같은 이 친구는 마치 내가 정답인 듯 배우려 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려 한다. 무섭다. 혹시 잘못하고 있는 것까지 배우는 것은 아닐지 부담이 된다. ‘장’이라는 자리의 무게감이 크게 다가온다. 이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고 함께 고민할 누군가가 없음을 알기에 급 고독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이 또한 성장과정이겠지.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거겠지.


우리 사무실 근처에 고라니 가족이 살고 있다. 근데 이 고라니 가족 때문에 민원이 들어온다. 고라니의 출몰로 위협을 느낀다는 인근 공동주택단지의 민원이다. 숲 속에 있는 아파트를 사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쾌적한 숲과 새소리, 싱그러운 풀 향기만 떠올리셨을까? 숲 속에는 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간다. 벌레도 많고 모기도 많고 뱀도 있을 수 있고, 사슴을 닮은 고라니 가족이 살 수도 있다. 원래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침략자는 우리다. 그들이 아니다. 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안타깝다.


고라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 하나 고라니의 삶을 생각하는 이는 없다. 그냥 인간에게 위협을 주는 제거해야 할 존재일 뿐이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일까? 단순하게 고라니 가족을 포획해서 처분하면 되는 민원일 수도 있지만, 인간 중심적인 이 잔혹한 상황에 대한 생각의 끈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머리가 아파진다. 급 고라니 가족의 삶이 걱정이 된다.


그날 산 밑 배수로 옆에 서서 고독과 고라니 가족의 삶과 바삐 움직이는 새들의 생각을 궁금해하다, 곰팡이 냄새가 그득한 장의 자리로 돌아왔다. 산속 울창한 나무들의 위엄을 느끼고, 어두운 출근길을 노랗게 밝혀준 금계국들이 한없이 고맙고 예쁘다는 생각도 하면서 그날의 고독을 삼켰다.

keyword
이전 01화1. 올드한 느낌이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