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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들려준 이야기

그믐, 낙타, 은하수

by 정현

그믐

이름도 예쁜 그믐날. 나는 밀키웨이라 불리는 깊은 사막 한가운데에 있었다.

딱 1년 전 이때쯤 처음 사막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뜨거운 모래와 시원한 바람이 어우러져 있던 곳이었다. 무엇이든 첫 만남은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사막을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찾게 되었다. 작년 대비 아주 쌀쌀한 날씨였다. 바람은 세차게 불어왔지만 아이들은 신나게 모래 언덕 위를 뛰어다녔다. 나도 덩달아 신나 함께 뛰며 소리를 질렀다. 대자연 속에서는 언제나 대자유를 누린다. 자연이 주는 쉼, 선물이다.

작은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었다. 바람결에 쏟아지는 모래가 눈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이미 들어간 모래들을 어떻게 뺀담... 나는 그저 괜찮다고, 더 울라고 했다. 눈물을 흘려야 모래들이 흘러나올 테니 말이다.


엄마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큰 아이. 부는 바람에 맞서 해를 바라보다 나도 그만 눈에, 입 속에 모래가 왕창 들어갔다. 부는 바람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나도 따라 눈물을 흘리며 바람 부는 방향 반대로 고개를 돌리고 등으로 모래 바람을 맞았다. 엄마를 따라 아이들도 등을 돌려 고개를 숙이고 앉는다. 우는 엄마 곁에 우는 딸들. 누가 보면 초상이라도 난 것 같은 장면이다. 황량한, 광활한 사막의 모래 언덕에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

'바람에 맞서지 말아라. 그저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맡기고 눈이 아프면 눈물을 흘려보내라. 곁에 함께 울어주는 이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사막은 말없이 가르친다.

자연의 아이들.



야생 낙타

모래 언덕에서 저만치 멀리 보이는 낙타. 분명 주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려가 보니 주인은 없고 그저 자유로워 보이는 그야말로 야생의 낙타 두 마리를 만났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 도망가고 나는 낙타 곁을 맴돌았다. 긴 다리, 불룩한 등의 혹, 큰 눈. 그리고 그 눈을 감싸고 있는 긴 속눈썹… 모래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할 속눈썹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낙타도 세찬 바람은 힘든가 보다. 낙타의 눈 아래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큰 눈으로 눈물을 흘리는 낙타를 오래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며칠 전 내셔널데이 행사장의 체험용 낙타를 떠올렸다. 사막이 아닌 축제장에서 만난 낙타는 몹시 힘들어 보였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태우고 또 태워주던 낙타는 입마개가 채워진 채 두 눈만 껌뻑였다. 앉은 낙타의 머리를 쓰다듬다 낙타의 무릎을 보았다. 뒤로 완전히 젖혀 무릎을 꿇은 낙타. 오랜 전부터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하루를 보내고 일을 마칠 때쯤이면 휴식을 위해 무릎을 꿇고 아침이 되면 다시 주인이 얹어주는 짐을 싣기 위하여 무릎을 꿇는다고 한다.


낙타의 양무릎에 폭신한 혹 같은 것이 있다. 자주 무릎을 꿇어 생긴 것이라고 하는데, 성경 속 야고보 사도가 떠올랐다. 낙타 무릎이라는 별명을 가진 ‘작은 야고보’. 날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그 야고보. 낙타의 무릎을 바라보다 ‘기도’하는 사람이 떠올랐다.

나는 얼마나 자주 무릎을 꿇는 사람인가. 어지러운 세상 앞에, 연일 이어지는 나라의 혼란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가 아닐까?

야생 낙타. 바람을 가르며 묵묵히 길을 간다.


은하수

이날 사막은 은하수를 보겠다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간 사막의 이름이 밀키웨이인 이유도 깊은 사막 안에서 만날 수 있는 은하수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사람들이 가지고 온 갖가지 조명들, 그것이 밤하늘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별은 어둠 속에서 더 빛난다는 사실을 잊은 사람들 같았다.

나는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잠시 드러누웠다. 얼마나 먼 곳인지.. 저 멀리 빛나는 별, 또 그 곁 옅게 보이는 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보는 지구도 아주 작은 하나의 별이겠지?

내가 작은 존재라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조용히 자연 속에 머무를 때 그렇다. 오직 바람의 소리만이 귓전에 들리는 고요한 시간,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에 홀로 있는 시간. 지구 바깥에서 보면 우리는 그저 점 같은 존재일 테다. 바쁘게, 치열하게, 당위로 둘러싸인 것들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어둠이 내린 사막 한가운데에서 또 한 번 나의 작음을 느낀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의 말을 빌려 내 마음을 대신 전하고자 한다.


지루한 지구에서부터 한참 높이 올라가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대자연이 과연 한 점 먼지에 불과한 이 지구에
자신의 아름다움과 온갖 가치를
다 퍼부어 놓았는지 가늠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고공에서 지구를 내려다볼 수만 있다면
집을 떠나 먼 나라로 여행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집안 구석구석에서 이루어진 일들의
잘잘못을 더 잘 판단할 수 있을 것이며,
더 공정하고 올바른 평가를 내려서
결국은 모든 것들에 합당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구만큼이나 사람들이 잘 살고 있고,
잘 꾸며진 세계가 한둘이 아니라
여럿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위대하다 일컫는 것들에
찬미를 보내지 아니하게 되고,
또 일반 사람들이 정성을 쏟아 추구하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오히려 하찮게 여기게 될 것이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천상계의 발견> 1690년경



사람 은하수

쏟아지는 별들을 카메라에 담기 힘들었다. 눈에 담고 가슴에 담아 온 그믐날의 별.

집으로 돌아와 휴대폰 사진을 보니. 아이들이 찍어놓은 사진 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사진 한 장.

사막의 모래를 가까이도 찍어놓은… 아이들의 시선 안에 들어온 빛나는 모래. 어쩌면 은하수는 하늘이 아닌 땅에 있는 건 아닐까. 멀리 있는 것을 우러러보기보다 가까이를 살피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작은 모래 사진을 보며 우리 곁의 이웃들이 떠오른다. 점처럼 찍혀있는 하나하나의 모래들. 어두울 때는 보이지 않는, 해가 비추면 비로소 빛나는, 모래알 은하수. 은하수와 닮은 지구별 존재들. 우리들이 아닐까?

자연이 최고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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