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조지아 여행기(5)

강물은 흘러 흘러

by 정현 Nov 27. 2024

그곳에 다녀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조지아 여운을 글로 남기고 있는 날의 연속이다.

나는 왜 조지아에 가고 싶었을까?

무엇을 보고 싶었을까?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여행은 떠나기 전에는 설렘으로, 그곳에 가서는 하루하루 보고 들으며 차오르는 감정들로, 다녀와서는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다.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다가도 순간 멈춰 멍하게 바라보게 되는 장면들이 있다.


여행 마지막 날. 트빌리시에 도착했다.

며칠 머물렀던 카즈베기와는 너무도 다른 곳.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의 도시였다.

해발 1100 미터 높은 곳에서 지내다 내려온 트빌리시에서 처음 만난 것은 강이었다. 이 날따라 유난히도 강을 비추는 햇볕이 눈에 띄었다.

강 위의 윤슬, 그리고 햇볕이 내게 "며칠 추웠지? 따뜻한 트빌리시에 온 걸 환영해." 하고 말하는 듯했다.


카즈베기 가는 길의 진발리 호수도 그랬지만 트빌리시의 강물은 유난히 더 맑은 에메랄드 빛이었다. 어느 도시를 가던 강을 유심히 보게 된다.

파리의 센 강, 런던의 템즈강을 떠올리게 되었다. 트리빌리시를 흐르던 강은 쿠라강이다. 이강은 터키에서 발원하여 조지아를 거쳐 아제르바이잔의 카스피해로 이어진다고 한다. 쿠라강은 강폭이 매우 좁아 보였다.


차를 타고 므타츠민다 산에 올라 조지아 어머니상에 다다랐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높이 20미터쯤 되는 동상은 조지아 전통 복장을 한 여인이 왼손에는 와인 잔을 오른손에는 검을 쥐고 있었다. 손님에게는 우호의 태도를, 외적의 침입에는 칼로 맞서겠다는 조지아 인들의 의지를 표현한 동상이라 한다.

조지아 어머니 상은  트빌리시 전체를 바라보고 있는듯했으나 왠지 도시를 관통하는 쿠라강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동상과 마주 보고 싶었지만 그 아래는 내려갈 수 없는 곳이라 어쩔 수 없이 동상과 나란히 서서 강을 내려다보았다.

조지아의 어머니. 그리고 나.

갈색 지붕들이 즐비한 도시의 나지막한 건물들, 그 사이 흐르는 쿠라강을 바라보며 조지아를 통해 흘러가는 저 강물이 카스피해로 가 바다가 되는구나 싶었다.

멀리서 보면 멈추어 있는 그림 같아 보이는 저 강은 사실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있음을, 흘려보내는 물, 흘러오는 물. 우리들 삶의 과거와 미래를 떠올리게 했다. 찰나에 과거가 되고 또 찰나의 미래를 맞는다.


파리의 센 강에서 석양을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황혼의 나를 떠올려보았다. 런던의 템즈강에서는 흐린 날씨에 무서운 강줄기를 바라보다 순간 겁이 나기도 했다. 인생의 파도를 만났을 때 그러할까?  템즈강의 강물은 성난 파도 같아 보여 심장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며칠 붙들고 있던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강물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인용하려 한다.

이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며,
끊임없이 흐르지만,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며,
언제 어느 때고 항상 동일한 것이면서도
매 순간마다 새롭다!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강이었어요.
우리는 강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지요.
보세요, 당신도 이미 강물로부터,
아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
가라앉는 것,
깊이를 추구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사유보다 경험이 위대한 스승이라던 싯다르타. 길 위에서 만난 사람, 사물, 자연에서 깨우침을 얻었다는 그가 오늘 내게 말한다. 그저 흐르고 흐르며 현재에 머무르라고, 또한 머물러 있지만 흐르기를 멈추지 말라고..

'쿠라'강. 나를 따뜻하게 반겨주던.


이전 04화 조지아 여행기(4)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