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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여행기(4)

문을 열면 보이는 세계

by 정현 Nov 20. 2024

여름을 좋아했다. 여름의 그 푸르름을, 한껏 뜨거워진 정열적인 태양 기운을 좋아했었다.

어느 여름날 아부다비로 훌쩍 떠나왔다. 그 후로 아부다비에 둥지를 틀고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지낼 때에는 계절이 나를 찾아왔다면 이곳 아부다비에 머무는 동안은 여름날에서 가을로, 또 추운 겨울로. 내가 계절을 찾아가는 여행을 했다. 마치 순간이동을 하듯이 말이다. 여름옷을 입고 비행기에 오를 때 한 손에는 겨울 외투를 준비했다. 조지아 여행이 그랬다. 쿠타이시 공항에 도착해서는 긴팔 두꺼운 옷을 챙겨 입고 숙소로 향했다. 비 오는 쿠타이시는 쌀쌀했다. 여행을 하며 생긴 습관 중 하나는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 어느 장소를, 또 어떤 대상을 그저 멍하게 바라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발견을 할 때가 있다.


조지아 여행 첫날 머문 숙소는 생각보다 열악했다. 침대 매트리스는 형편없이 내려앉아있었고 모기도 득실거리고 퀴퀴한 냄새의 침구에는 남의 머리카락들이 보이기도 했다. 잠시 불평을 하다가 ‘하룻밤 묵는데 5만 원짜리 숙소가 이 정도면 됐지.' 하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나는 오로빌 숙소를 떠올렸다. 침대 아래에는 바퀴벌레가, 천장에는 도마뱀이 살던.. 날이면 날마다 정전이 되던, 소로우의 월든 오두막을 떠올리게 했던 그 숙소. 그에 비하면 쿠타이시의 숙소는 아주 좋은 숙소라며 위안을 삼았다.

다행히 모기들은 우리를 물지 않았고 꺼진 침대는 약간의 허리 통증만을 느끼게 했을 뿐, 하룻밤 지새기에 투덜거릴 만큼은 아닌 그런 공간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공용 주방에 가니 블랙티가 있었다. 블랙티를 한잔 우려 탁자에 홀로 앉으니 맞은편으로 문 하나가 보였다. 나무로 된 문, 가운데 불투명 유리 창이 하나 있었다. 얼마나 오래된 문인지 손잡이는 이미 떨어진 지 오래고 손잡이가 있던 구멍 사이로 굵은 끈을 매달아 아직도 쓰고 있는 문.  그 주변은 새까맣게 손때가 타있었다. 지난 바르셀로나 여행 때 나는 하루종일 문 사진만 찍었었다. 몬세라트 수도원으로 가는 길목 집들의 각양각색의 문들. 이번 조지아에서는 쿠타이시 숙소에서 만난 오래된 문을 보며 문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지 했던 바르셀로나 여행을 떠올렸다. 블랙티를 마시며 한참 동안 손때 묻은 나무문을 바라보았다. 문은 경계인 동시에 연결이며 한 세계와 다른 세계의 분리, 보호이며 존중, 문을 닫는단 건 차단, 연다는 건  환대의 의미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문에 대한 영감으로 여행 중 대비되던 두 세계들을 바라보게 될 줄이야!

누군가가 오래토록 사용하던 문. 내게 영감을 주었던.


이제는 어딜 가도 자연 그대로의 야생만 존재하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자연만 존재하는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여겨진다.

자연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여정에서도 우리는 기계의 힘을 빌려야 하고, 자연 속에 머무는 동안에도 전기를 사용하게 된다. 또 여행지에서 냉장고와 가스레인지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들이다. 그렇게 자연과 인위는 섞여 있다.

카즈베기로 간 여행 둘째 날부터는 다른 두 가지의 것을 놓고 생각하기를 즐겨했다. 캐리어에 담긴 여름옷과 겨울옷이 며칠사이 두계절을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했다. 통나무집에서 묵던 첫날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라디에이터 곁을 떠나지 못했던 나는 지난 아부다비의 열기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더위란 그야말로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불과 며칠 전에 아부다비에 있었는데도 지금 현재의 추위에 몰두하고 있는 나를 보며 지난날의  덧없음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날마다 왕년을 버린다.'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통나무집 아침 풍경은 그야말로 대비 그 자체였다. 산자락에는 눈이 내려앉았는데 내 발아래에는 꽃이 펴있었다. 또 시선을 돌리니 하늘에 닿은 설산은 눈이 시리게 하얀데 땅아래 나무에는 단풍이 들어있었다. 높은 지대이기도 했지만 스테판츠민다 마을은 해가 잘 들어 마을 안쪽에는 꽃과 나무, 열매들을 쉽게 볼 수가 있었다. 이색적인 풍경 속에서 다름은 늘 함께 하고 있구나 했다.

그림 같던 통나무집 주방 창문 속 풍경은 매일 같은 듯했지만 또 매일 달랐다.

꽃과 설산. 대비의 순간.


나는 적응을 잘하는 편이다. 사람에게도 환경에도...  여행을 다니며 그것에 하나 더 추가된 것이 있다면 낯섦을 즐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낯선 곳으로 가서 그곳만의 태양빛을 받고 바람을 맞고 그곳에서 나는 열매를 먹고 그곳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고 그 땅이 주는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조지아는 어떤 땅일까? 러시아 통치아래 있던 조지아. 포도주가 유명하다 했지만 나는 포도송이를 닮은 조지아어. 그 글씨가 너무도 귀여웠다.  어딜 가도 영어보다 먼저 보이는 조지아어를 보며 러시아로부터 독립해 한나라로 살아가기까지 조지아 인들의 삶의 애환과 현재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아랍어를 배우는 두 딸들이 아무리 아라빅 글씨를 연습해도 관심조차 없었던 나인데...  조지아어는 왠지 필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카즈베기에서 일정을 마치고 트빌리시로 가던 날.

구불구불 산허리를 둘러 내려오며 색색의 조형물 하나를 만났다. 1983년에 세워진 '조지아-러시아 우호기념탑'이었다. 러시아와 조지아의 게오르기옙스크 조약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이라고 했는데, 사실 탑이라기보다 벽화에 가까웠다. 타일 벽화 같은 그림 속에는 총을 든 병사와 항아리를 든 여인이, 비둘기를 날리는 여신과 총과 꽃을 들고 만세를 부르는 군인이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전쟁과 대립에서 화합과 평화로 나가자는 의미로 보였다.

선과 악의 두 세계는 공존할 수 없음을, 서로를 겨누는 악의 시대를 지나 서로 잘 지내보자는 러시아와 조지아의 약속의 기념비였다. 태양이 비치는 타일 벽화는 더욱 빛났다.

<조지아-러시아 우호기념탑>의 우측.


그곳에 잠시 머무르다 다시 내려가는 길. 산 아래로 내려갈수록 기온은 더 올라갔다. 저 멀리 어느 마을에 구름 그림자가 보였다. 구름의 그림자를 본 적이 있었던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건물의 그림자나 사람의 그림자, 나무의 그림자는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평원 위에 놓인 구름의 그림자는 낯설기도, 친근하기도 했다.

추운 카즈베기에서 머물다 여행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두고 따뜻한 트빌리시에 도착했다.


카즈베기의 며칠, 두 세계를 넘나드는 날들이었을까? 여름과 겨울을, 눈과 꽃을, 전쟁과 평화를, 그리고 일상에서 여행으로의 그 다른 두 세계를...

문을 열면 펼쳐지는 낯선 곳, 여행은 내게 닳고 닳은 문을 한번 열어보라고 하는 것 같다. 쿠타이시의 나무문처럼 누군가의 손때 묻은 그 문을 나도 한번 용기 내 열어본다. 문을 열지 않으면 보지 못하지만, 문을 연다 해도 각자가 보는 세계는 다를 것이다. 눈에 보이는 그곳 너머를 보게 되는 것. 여행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문을 열면 보이는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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